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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이사갈 때 가전제품을 버려라?
[비즈니스] 이사갈 때 가전제품을 버려라?
  • 김경호 기자
  • 승인 2001.12.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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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분양 아파트 ‘빌트인’ 필수조건으로… '분양가 높이는 주범' 우려도 요즘 이사갈 때 형광등 떼어가는 사람은 없다.
어렵고 힘들던 시절엔 ‘자기 집 형광등도 이사갈 때 가져갔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종종 들렸다.
하지만 앞으로는 새로 분양받은 아파트로 입주할 땐 멀쩡하게 잘 쓰던 기존 가전제품까지 버리고 가야 할 판이다.
이미 웬만한 가전제품은 아파트 안에 모두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최근 빌트인(built-in) 시장이 눈에 띄게 커지고 있다.
요즘 건설업체들은 장롱, 식탁, 주방기구는 물론 세탁기, 가스오븐레인지, 냉장고 등 가전제품까지 모두 갖춘 빌트인 아파트로 소비자의 주목을 끌고 있다.
또한 새로운 수요 창출에 고심하던 가전업계는 이러한 움직임에 환호성을 지르느라 목이 쉴 정도다.
지난 1999년에 등장하기 시작한 빌트인 아파트는 이제 신규분양 아파트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목이 돼버렸다.
업계 전문가들은 2000년 3500억원 정도의 시장규모가 2005년에는 1조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표 참조) 최근 들어 빌트인 가구와 가전제품 가격이 업체간 경쟁으로 급격히 떨어지고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까지 더해져 젊은층을 중심으로 크게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빌트인이란 말이 낯설긴 하지만 요즘 새로 생긴 말은 아니다.
이전부터 강남의 몇몇 고급 대형빌라나 아파트를 분양할 때는 최고급 가전제품과 초호화 대리석으로 집안 곳곳을 장식했다.
하지만 더이상 빌트인이 부유층의 전유물만은 아니라고 업체 관계자들은 말한다.
현대건설 주택사업본부 백용기 과장은 '빌트인 시장은 2000년부터 30평형대 중형 아파트의 틈새도 노리고 있다'며 '고객의 다양한 눈높이를 어떻게 맞출지가 건설업계의 새로운 고민으로 떠올랐다'고 말한다.
이미 건설업체들은 빌트인을 분양률 상승의 주된 요인으로 분석한다.
현대건설은 새로 분양하는 대부분의 아파트에 빌트인을 적용해 예상보다 높은 분양률을 달성했고, 삼성물산은 99년, 서울 길음, 종암, 쌍문동 24평형 ‘래미안’에 대형 냉장고를 붙박이로 제공하며 소형아파트 빌트인 시장에도 눈을 돌렸다.
중견 건설업체인 성호건설도 서울 구로동에 주상복합 빌트인 아파트 ‘메이플라워 멤버스빌’을 분양하면서 한달 만에 70%의 계약률을 기록했다.
닥터아파트 곽창석 이사는 '신규분양 아파트의 80% 이상이 빌트인을 적용하고 있다'면서 '특히 공간 활용도가 강조되는 오피스텔에 빌트인은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목'이라고 말한다.
건설업체에 이제 빌트인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항목으로 여겨질 정도다.
가전 3사 ‘즐거운 비명’ 가전 3사는 모처럼 잡은 황금알을 놓지 않기 위해 구두끈을 바짝 죄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10월24일 서울 논현동에 빌트인 전시장을 개설했다.
160평 규모의 전시장에는 수납장 형태의 냉장고, 드럼세탁기, 전자레인지, 다맛김치냉장고 등 삼성전자의 대표적 붙박이 가전제품이 전시돼 있다.
전시장 개설식에서 삼성전자 생활가전총괄 한용외 사장은 '인테리어 업체, 가구업체 등과 연계해 주거공간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솔루션을 만들겠다'며 빌트인 시장에 대한 삼성의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우선 삼성전자는 홈네트워킹이 가능한 빌트인 가전시장을 적극 공략할 방침이다.
삼성은 현재 식기세척기, 가스오븐레인지, 지펠냉장고 등 단품 위주로 빌트인 시장에 참여하고 있으나 전문영업팀을 조직해 발빠르게 시장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이미 서울 중림동 래미안 아파트에 초기 수준의 홈네트워크 솔루션과 단품을 공급한 바 있는 삼성은 삼성건설과 공동 마케팅을 전개해 올해 1천억원 정도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평형대에 맞는 제품 구성을 이미 시장에 내놓은 상태다.
60평형 아파트의 경우는 2200만원 정도의 가격으로 인테리어 지펠냉장고, 콤비냉장고, 식기세척기, 가스오븐레인지, 후드 겸용 전자레인지, 드럼세탁기, 쿡탑, 김치냉장고 등 8가지 가전제품, 30평형은 600원 정도의 가격에 주방가구, 드럼세탁기, 쿡탑, 식기세척기 등 3가지 종류를 만날 수 있다.
LG전자는 이미 ‘벨라지오’라는 별도의 고급 브랜드까지 만들어 적극 홍보하고 나섰다.
LG는 양문 여닫이 냉장고, 드럼세탁기, 가스오븐레인지 등 기존의 단품 가전제품을 하나의 세트로 묶은 시스템 제품을 가장 먼저 시장에 선보였다.
LG 벨라지오는 독일 ‘밀레’, ‘가게나우’ 등 수입 명품이 장악하고 있는 국내 고급 빌트인 가전시장을 목표로 한다.
일단 고급 빌트인 시장에서 올해 10% 점유율을 기록하고 2003년에는 50%까지 끌어올린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놓았다.
LG전자 벨라지오 박근우 과장은 'IMF 이후 소비 양극화 추세가 뚜렷해진 국내 고급 가전시장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며 '홈페이지에선 3D 시뮬레이션 시스템을 이용해 각 제품을 고객 주방구조에 맞춰 입체형을 볼 수 있다'고 자랑한다.
대우전자는 일단 ‘반찬냉장고’를 앞세워 시장 분위기를 지켜본 후 대응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아직은 빌트인 시장에 맞는 제품 구성을 갖추지 못했으나 향후 프리미엄 모델로 디지털가전, 환경친화 제품, 벽걸이TV 등을 시장에 선보일 예정이다.
대우가 지난 5월부터 판매해온 반찬냉장고는 주부의 작업 동선을 줄여 효율적인 가사노동을 돕는다.
수요가 늘고 있는 소형 고급 빌라나 원룸을 대상으로 판매를 시작했으며 가구업체와 연계해 일단 빌트인 시장의 수요를 키워나가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대우전자 쇼케이스 영업기획팀 박창훈 과장은 '빌트인 가전에 대한 관심을 반찬냉장고의 판매 호조로 확인했다'며 '조만간 자체적인 프리미엄 브랜드로 승부할 것'이라고 말하며 빌트인 시장에 대한 관심을 숨기지 않았다.
소비자 눈높이 맞추기 과제로 빌트인 시장이 이처럼 눈에 띄는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지만 일부 소비자에게서 불만의 목소리가 높은 것도 사실이다.
빌트인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단점은 '소비자들이 쓰던 기존 가전제품은 가지고 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분양가격에 빌트인 제품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일부 소비자는 울며 겨자먹기로 쓰던 제품을 처분하든지 방구석에 처박아둬야 한다.
닥터아파트 곽창석 이사는 '분양가를 높이는 주범으로 보일 소지가 있다'면서 '맞춤형 판매 등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할 때'라며 빌트인 시장에 우려의 눈길을 보낸다.
건설업체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분양률을 높이기 위해 시도한 빌트인 전략이 이제 없어서는 안 될 필수항목으로 바뀌어가면서 나오는 다양한 목소리에 힘겨워하고 있다.
건설업체의 홈페이지에서는 심심찮게 ‘빌트인 반대’ 목소리를 접할 수 있다.
한 건설사 홈페이지에 올라온 의견에는 '가전제품은 하루가 멀다 하고 신형이 나오는데 모델하우스에서 봤던 2년 전 구식 제품을 써야 하냐'며 분양 당시와 입주시의 시간 차이를 문제삼았다.
이에 대해 현대건설의 한 관계자는 '일부 고객은 ‘건설사가 중간마진을 위해 빌트인을 적용한다’는 의심을 하기도 한다'며 '건설업체 입장에서는 ‘빌트인으로 이익을 보기보단 없어도 될 불만을 만든 것 아닌가’하는 의구심까지 든다'고 말해, 앞으로 빌트인을 둘러싼 논란의 여지가 쉽사리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서양의 주거 개념을 따라가기는 아직 무리라는 의견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미국의 경우 이사갈 때 몸만 가서 그곳의 제품을 이용하는 것이 일반화돼 있지만 우리의 경우 결혼할 때 혼수를 하는 것이 상식이고 그런 손때 묻은 제품을 쉽사리 버리기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 게 마련이다.
또 멀쩡한 가전제품을 버리거나 못쓰게 돼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까지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건설업체 한 관계자는 '아직까지 맞춤복이라기보다는 기성복 개념인 아파트에 개개인의 취향에 맞는 빌트인 아파트를 내놓기엔 건설업체가 넘어야 할 벽이 많다'는 어려움을 호소했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빌트인 시장은 날로 커지고 있다.
모델하우스에는 각종 화려한 가구와 가전제품이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편리성과 공간 효율의 장점을 가볍게 보아넘길 소비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빌트인 시장이 점점 더 활성화할 것임에는 아무도 의문부호를 달지 않는다.
하지만 그에 따른 소비자의 다양한 목소리를 업계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일지 점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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