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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TTL신화의 비밀
[기획] TTL신화의 비밀
  • 김윤지 기자
  • 승인 2001.12.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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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텔레콤 ‘아저씨 이미지’ 벗고 20대만의 새로운 이미지 형성에 성공… 철저한 고객분석 작업에서 나온 작품


TTL은 SK텔레콤에나 우리나라의 전체 이동통신 산업에나 그 의미가 각별하다.
SK텔레콤에게는 젊은 층을 고객으로 대폭 끌여들여, 그동안 고연령대에 편중됐던 고객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시켜줘 1위 사업자의 토대를 든든하게 유지하는 데 기여한 일등공신이라는 평가가 어색하지 않다.
이동통신 업계 전반으로 시야를 넓혀보면 최초로 이동통신에 ‘브랜드’라는 개념을 도입해 큰 성공을 거둬, 이후 새로운 브랜드 상품을 꾸준히 낳게 한 견인차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동통신에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에서도 TTL만큼 성공한 브랜드는 드물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TTL은 상품기획과 브랜드 전략이 제대로 맞아떨어진 예로 꼽힌다.
브랜드 마케팅 에이전시인 브랜드스톡에 따르면 TTL은 이동통신 문화브랜드 부문에서 인지율 97%, 호감률 64.4%를 기록하며 다른 브랜드와 차이를 큰 폭으로 벌리고 있다.
브랜드 가치를 점유율로 환산하면 TTL은 이동통신 문화브랜드 부문 가운데 무려 75%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무엇이 TTL을 이렇게 빛나는 브랜드로 자리잡게 했을까? 일단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011, 아저씨 이미지 탈피가 중요하다
97년 8월 이동통신에 PCS가 처음 등장하기 시작하자 SK텔레콤은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SK텔레콤과 신세기통신 둘만이 셀룰러폰만으로 이동통신 시장을 지킬 때엔 무려 90%의 점유율을 차지할 정도로 시장을 독식했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더군다나 PCS 진영은 기존 셀룰러폰과 차별성을 두기 위해 일제히 20대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상대적으로 젊은 이미지를 강조하며 새 고객에게 다가갔던 것이다.
98년 12월이 되자 SK텔레콤의 시장점유율은 43%까지 떨어졌다.
전체 시장규모는 엄청나게 커진 상태였지만 SK텔레콤의 고민은 더 깊어져 있었다.
전체 고객 가운데 20대층 고객의 비율이 10% 미만을 밑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20대 고객이 적다는 것은 SK텔레콤의 장기적인 성장 전략에서 볼 때 매우 위험한 징후였다.
20대는 이동통신계에서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당시 이동전화 최초 가입연령이 주로 20대였는데 첫 구매자일수록 로열티가 높거든요. 좀처럼 상품을 바꾸지 않기 때문에 성장의 디딤돌이 되지요. 시장규모에서도 이들이 가장 큰 성장시장이고요. 그래서 PCS사들도 이들을 집중 공략한 거였지요. 또 무선인터넷이나 IMT-2000 등 신규 서비스에 대한 수용도가 가장 높은 게 이들입니다.
미래 핵심 타깃층을 잡는 게 중요할 수밖에요. 무엇보다 통화량이 가장 높은 고객들이 이들이었고요.' SK텔레콤 마케팅전략본부 세그먼트마케팅팀 조현준 과장은 SK텔레콤이 20대 시장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특히 20대가 소비지출이 가장 많은 계층이라는 것은 기존 예상을 벗어나는 분석이었다.
'원래 가처분 소득이 가장 높은 게 30대 중반 남성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들 용돈이 30만원에서 35만원 선이거든요. 주부는 평균 12만원 선이고요. 그런데 대학생 평균 용돈이 35만원이에요. 게다가 이들은 소비지향적이라 미래를 위해 저축을 한다든가 이런 생각이 없어요. 이동통신 요금도 그래서 평균 4만4천원으로 30% 이상 높았습니다.
' 조현준 과장은 ‘20대는 돈이 없다’는 고정관념이 데이터웨어하우스 분석결과에서 여지없이 깨졌다고 말한다.
분석결과가 잘못 나온 것 같아 몇번이고 다시 데이터를 뽑아보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20대들은 SK텔레콤에 대한 인식이 별로 좋지 않았다.
20대들을 모아놓고 조사를 해보니 ‘잘 터지지만 비싸요’를 비롯해 ‘좋은 건 알지만 단말기 값이 너무 비싸고 촌스러워요’, ‘제 친구들은 모두 PCS 써요’와 같은 의견들이 쏟아졌다.
무엇보다도 ‘아저씨들이 쓰는 것 아니에요?’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요금, 단말기가 비싸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20대에 어울리지 않는 제품’이라는 상품 이미지가 굳게 자리잡혀가고 있었던 것이다.
SK텔레콤은 PCS보다 최고 30만원 이상 비싸던 단말기 가격을 5만~6만원 정도 비싼 수준으로까지 낮추었지만 20대에게 별반 효과가 없었다.
이미 그들의 브랜드가 아니라는 인식이 뿌리깊었기 때문이다.
단순한 가격 조정만이 아닌 종합적인 상품기획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른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99년 3월 SK텔레콤은 20대를 위한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특별팀을 구성했다.
회사 안의 유통, 단말기, 마케팅, 이벤트 전문가들이 모여 18살에서 23살까지 20대 초반을 주 타깃으로 한 새로운 상품 개발에 들어갔다.
일단 이들의 특성을 파악하는 게 중요했다.
이들의 특성을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말이 '튀고 싶지만 외롭기는 싫다'는 것이었다.
또래문화에 대한 지향이 매우 강하면서도 개성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20대를 만족시키기 위해선 기존 011이 아닌 ‘20대만을 위한 새로운 브랜드’라는 것을 부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부딪친 것이 브랜드 이름에 ‘011’을 붙여야 하는가, 떼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기존의 ‘디지털011’, ‘스피드011’과 같은 식으로 이름을 붙이면 품질 좋은 011의 속성을 이어받을 수 있지만 여전히 ‘아저씨 이미지’를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러나 기존 011의 좋은 이미지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라 결정이 쉽지 않았다.
'많은 논란 속에 앞으로 품질은 이야기하지 말고 슬로건으로 해결하자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나온 게 ‘스무살의 011’이라는 슬로건인데, 이게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봅니다.
이 슬로건 덕에 품질, 인지도를 설명하지 않고도 이미지만으로 승부할 수 있었거든요.' 마케팅전략본부 프로모션팀장 이시혁 부장은 ‘스무살의 011’이라는 슬로건이 011에서 독립한 브랜드지만 011의 인지도를 유지하고, 스무살이라는 타깃층에게 확실하게 어필할 수 있는 느낌까지 줘 성공적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스무살의 시각으로 스무살에게 다가가기
이런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에 ‘TTL’이라는 의미없는 문자로 구성된 브랜드가 탄생할 수 있었다.
‘That´s The Life’, ‘The Twenty´s Life’, ‘Time To Love’ 등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는 TTL은 처음부터 그런 개방성을 염두에 두고 만든 무의미한 브랜드다.
TTL이라는 이름 뒤에는 20대에 대한 다양한 분석결과가 있었다.
20대들은 자신들을 불완전한 자아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런 자신들의 모습과 동일시할 수 있는 것을 원하고 있다는 분석이 기본으로 깔렸다.
이들에게는 논리와 이성보다는 비논리적이고 감각적인 이미지 커뮤니케이션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기성 가치보다는 새로운 가치의 제시를 선호하는 20대들에게는 이미지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결론이 TTL이라는 모호한 브랜드명을 탄생하게 한 것이다.


기본 전략이 이렇게 잡히자 그에 따른 세부적인 광고전략도 뻗어나왔다.
문화적이고 감성적인 스무살에게 그들만의 브랜드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선 광고도 그런 방향으로 제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의미의 다중성, 모호성을 강조해 호기심을 극대화하자는 것, 기존 광고의 틀에서 벗어난 전혀 새로운 형태여야 한다는 것, 신인모델을 써 신비감과 호기심을 유발해야 한다는 것, 여기에 이국적이면서도 세련되고 환상적인 느낌까지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등이 그런 배경에서 나온 결론이었다.
'이미지로 승부해야 하니까 광고의 영향력이 더 중요할 수밖에 없었어요. 지금 평가해도 TTL 성공의 70% 정도는 광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이시혁 부장은 기본 전략에 맞춰 잘 만든 광고 덕분에 TTL의 브랜드몰이가 가능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런 결정이 간단치만은 않았다.
타깃 고객층에게 밀착한 브랜드를 만들어 그들의 언어로 접근한다고는 하지만 모호하기 이를 데 없는 브랜드명, 광고 전략 모두 SK텔레콤이 받아들이기엔 모험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당시 부사장이던 표문수 사장님이 과단성있게 수용해주셔서 가능했습니다.
그분이 힘을 실어주지 않았다면 그런 식으로 밀어붙이기 어려웠을 거예요.' TTL브랜드를 만들었던 관계자들은 이 부분에 대해 모두 입을 모아 당시 광고 최고책임자였던 표문수 사장에게 공을 돌린다.
브랜드 전문가들도 '그런 식의 브랜드와 광고전략을 실제로 구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SK텔레콤의 저력을 느꼈다'고 평할 정도로 TTL브랜드 전략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던 것이다.


99년 7월 약 5개월의 논의과정을 거쳐 만든 TTL이 세상에 공개되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일단 저 광고가 도대체 무얼 의미하냐는 논란이 빗발친 것부터가 성공이었다.
그런 가운데 주 타깃인 18~23살 층에선 광고에 대한 자기들만의 다양한 해석을 내놓으며 광고에 열광했다.
광고비에 190억원을 투자하는 뒷심까지 받쳐줘, 50만 가입자 유치 목표를 훨씬 뛰어넘어 6개월 만에 백만 가입자를 유치했다.
신규 가입의 70~80%를 TTL에서 유치한데다, 현재 290만명의 TTL 가입자 가운데 80%를 타깃층인 20대로 채울 수 있었다.
그 다음해 3월에 나온 LG텔레콤의 카이나 5월에 나온 KTF의 Na에서 20대 구성이 절반 이하라는 것에 비하면, 타깃에 대한 분석과 공략이 정확했다는 이야기다.



브랜드력, 상품기획력, 판매력 모두 조화 이뤄
물론 TTL의 성공을 브랜드의 성공만으로 이야기하기는 힘들다.
'상품이 제대로 자리를 잡으려면 상품기획력과 브랜드력, 판매력 이 세가지가 골고루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TTL은 상품기획력과 판매력에서도 다른 상품들과 확연히 차이가 났어요.' 조현준 과장은 TTL이 20대만의 브랜드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 7가지 혜택이라는 상품구성과 20대에게 밀착할 수 있는 판매방식을 고안한 것이 20대만의 독자 브랜드 형성에 큰몫을 했다고 이야기한다.
할인 멤버십 개념인 TTL카드, 최초로 오프라인 엔터테인먼트 유통채널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TTL존, 학교생활에 밀착한 할인요금인 TTL스쿨요금 등 20대에게만 어필할 수 있는 새로운 혜택들을 만들어냈다.
'다른 가입자에 비해 TTL 가입자 1명에게 3만원쯤 더 쓴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층보다도 통화량이 많고 중요한 층이라 실제 얻는 수익은 그 이상이었습니다.
' 조현준 과장은 비용대비 효과가 철저히 검증됐기 때문에 그런 기획이 가능했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실제 판매에서도 20대 성향을 최대한 반영한 전략들을 구사했다.
다른 층에 비해 20대들은 재미있고 기발한 소재들을 좋아한다는 것을 충분히 활용한 이벤트를 만들었다.
'수요일에 비가 오면 현금을 준다거나, 이번에 <화산고> 영화펀드 이벤트 같은 것들이 그런 예입니다.
돈이라는 혜택을 주면서도 18-23 문화라는 이미지를 충분히 살려 새롭고 감성적으로 접근해야 해요.' 영업본부 판매기획팀 이정환 대리의 설명이다.
최근엔 심리적 공유감을 높여야 브랜드 확산이 크다는 판단 아래 브랜드 기획에 20대들을 참여시키는 방법을 많이 활용한다.
올초 브랜드 개선작업에서 ‘made in 20’이라는 새로운 슬로건도 그래서 나왔다.
인턴제를 응용한 TTL글로벌, 실제로 브랜드에 의견을 내고 실행하는 커뮤니티인 TTL클럽 등 실제로 브랜드를 만들고 즐기는 데 20대들의 참여를 높여 ‘그들만의 브랜드’라는 느낌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브랜드 역사에서 TTL이 차지하는 위치는 크다.
부가서비스가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요금제’ 가운데 하나인 TTL을 20대를 하나로 묶는 키워드로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브랜드 성공사례로 꼽을 수 있다.
'통화품질 등 이동통신에서 가장 중요한 상품속성은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단지 의미만 부여해 완전히 다른 상품인 것처럼 만들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는 것이 넷밸류코리아 황부영 사장의 평이다.
여기에 이동통신 시장에서 이런 식으로 나이를 전면에 내세운 세그먼트(고객 세분화) 마케팅은 세계적으로도 유일무이한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 이동통신 사업자들의 마케팅력을 한단계 올려놓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일부에서는 그 정도의 막대한 자금력과 통신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가 없었다면 과연 TTL이 그토록 성공할 수 있었겠느냐고 깎아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브랜드는 단지 ‘돈’만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TTL 브랜드를 지닌 SK텔레콤을 부러워한다면, 진짜로 부러워해야 할 부분은 그런 브랜드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뒷받침할 수 있었던 기업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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