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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을 버리고 스무살을 잡았다'
1.'011을 버리고 스무살을 잡았다'
  • 이희욱 기자
  • 승인 2001.12.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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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브랜드와 저가정책 과감히 선택… ‘스무살 끈 놓칠라’ 경계 목소리도 얼마 전 벤처기업을 운영하는 김 사장은 고객사 이사를 만나러 갔다가 곤혹스런 일을 겪었다.
늘 하던 대로 의례적인 인사를 나누고 명함을 내민 김 사장은 고객사 이사에게 핀잔 아닌 핀잔을 들어야 했다.
김 사장의 명함에 박힌 휴대전화 번호 때문이었다.
별다른 생각없이 PCS를 줄곧 이용해오던 김 사장은 '명색이 사장인데 아직도 PCS를 사용하느냐'는 고객사 이사 말 한마디에 그날로 SK텔레콤 대리점에 들러 휴대전화를 교체했다.
‘선택된 자들이 사용하는 고급 브랜드’라는 011의 위력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그런데 이런 ‘이동통신 명가’ SK텔레콤이 불쑥 ‘돌연변이’를 세상에 내놓았다.
‘스무살의 011’이란 기치 아래 선보인 ‘TTL’이 그 주인공이다.
그리고 TTL은 탄생 28개월 만에 29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하며 SK텔레콤의 ‘빅 카드’로 떠올랐다.
이는 SK텔레콤의 철저한 브랜드 전략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TTL은 TTL일 뿐이야' 'TTL은 011도 SK텔레콤도 아닙니다.
그냥 TTL일 뿐이죠.' SK텔레콤 마케팅전략본부 조형준 과장은 TTL의 독립 브랜드 전략이 성공의 열쇠라고 말한다.
차세대 주요 고객층인 20대를 확보하기 위해 SK텔레콤이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던 지난 99년 초, SK텔레콤의 011 가입자 중 20대 비율은 20%가 채 넘지 않았다.
하지만 2001년 11월 현재 290만 TTL 가입자 중 80%가 19~24살의 ‘젊은 피’로 채워져 있다.
'이들이 ‘011’이란 식별번호에 매력을 느꼈던 것은 아니다'라고 조 과장은 말한다.
‘TTL은 아저씨들이 쓰는 상품’이란 이미지가 젊은층에게 거부감을 주었던 것이다.
고심끝에 SK텔레콤이 내린 결단은 ‘011’이란 고유 식별번호를 과감히 버리는 것이었다.
사실 국내 이동통신의 특성을 보면, 브랜드명보다는 식별번호가 이용자에게 깊이 각인되어 있다.
SK텔레콤 조형준 과장은 '어떤 제품을 쓰느냐는 질문에 대해 SK텔레콤이나 KTF를 쓴다고 대답한 사람은 없다.
011, 016을 쓴다는 식의 대답이 일반화해 있다.
게다가 휴대전화 사용자가 일부 부유층에 국한돼 있던 시절부터 시장에 먼저 뛰어든 011의 위력을 감안하면, 브랜드명에서 011을 배제한다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다.
‘스무살의 거부감’과 ‘프리미엄 서비스’란 두가지 문제를 놓고 저울질한 끝에 SK텔레콤은 20대의 손을 들어주기로 한 것이다.
TTL을 선보이면서 SK텔레콤이 내세운 마케팅 전략은 한마디로 ‘20대를 대표하는 문화 브랜드’로 정의된다.
이를 위해 SK텔레콤은 주 공략 고객층을 재정비하는 일에 착수했다.
당시 19~24살 고객의 잠재시장을 23만명으로, ‘스무살’이란 세계를 동경하는 12~17살 고객층을 38만명으로 규정하고 이들의 생활과 사고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결론은 20대만의 세계에 맞게 눈높이를 낮추자는 것이었지요. 우리나라 20대는 단순히 놀고먹는 세대가 아니라 나름대로 사회참여 의식이 강한 세대입니다.
또한 다른 세대에 비해 호기심이 강하고 또래문화와 소속감을 중시한다는 걸 알게 됐죠.' 이에 따라 20대 문화상품을 중심으로 많은 혜택을 주는 서비스를 구성하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무의미한 브랜드명을 선택했다.
‘TTL’이란 이름이 처음 공개됐을 때, 이 브랜드에 대해 해석을 내린 집단도 20대뿐이었다고 한다.
또한 또래집단의 소속감을 고취시키기 위해 오프라인 공간을 제공하고, TTL 로고를 부착한 전용 단말기를 내놓았다.
올해 5월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장점유율 제한 조치가 내려지기 전까지 TTL은 202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하며 단숨에 20대의 화두로 떠올랐다.
TTL이 선택한 두번째 전략은 젊은층에 맞게 가격을 낮춘 ‘저가정책’이었다.
'011은 비싸다는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면서 PCS보다 우수한 프리미엄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목표를 세웠고, 그것이 주효했습니다.
' SK텔레콤의 주력 브랜드인 ‘디지털 011’을 내세우지 않으면서 PCS보다 고급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를 위해 TTL 전용 단말기에 1만~3만원의 보조금을 추가로 지급했다.
또한 멤버십 카드를 만들어 20대가 즐겨찾는 공간을 중심으로 할인 서비스를 실시했다.
위기감을 느낀 PCS 업체에서 뒤늦게 유사 상품으로 추격에 나섰지만 이미 사회적 충격이 한차례 휩쓸고 지난 뒤라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SK텔레콤이 ‘TTL 출범’이란 모험과도 같은 결단을 내린 이후 2년이 조금 지난 현재, TTL은 SK텔레콤 그늘에서 벗어나 스무살을 위한 대표 브랜드로 자리잡고 있다.
브랜드 마케팅 대행사 브랜드스톡 www.brandstock.co.kr이 지난 5~6월에 걸쳐 1만64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TTL은 국내 이동통신 브랜드 중 인지율이나 호감도, 만족도 등 모든 면에서 경쟁업체를 압도적 표차로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국내 이동통신 5개 브랜드를 중심으로 실시한 이 조사에서 TTL은 인지율과 호감률이 모두 높은 브랜드 파워를 지닌 최고 그룹인 ‘제1그룹’ 상층부에 유일하게 올랐다.
‘스무살 브랜드’ 끝까지 고수하라 그동안 TTL의 가공할 성공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성장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은 'TTL이 20대만을 위한 상품으로서 특성이 희석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애초 19~24세대를 위한 ‘해방구’를 자임했던 TTL이 요즘 들어 30대 고객까지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유투(UTO)와 같은 25~35살 직장인을 위한 새로운 브랜드가 이미 출시돼 있다.
하지만 TTL 가입자의 80%를 차지하는 19~24살 회원을 제외한 나머지 20%가 TTL이 주는 ‘스무살 브랜드’의 카리스마를 감안할 때 적은 비중은 아니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넷밸류코리아 황부영 대표는 'TTL이 ‘19~24살 세대를 위한 브랜드’라는 외길을 고집하지 않고 판매 대상 연령층을 확대한다면 브랜드 이미지 손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TTL 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조심스레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외부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SK텔레콤은 TTL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10대와 30대 이후를 위한 차별화 브랜드를 꾸준히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브랜드의 성패에 따라 TTL이 SK텔레콤의 ‘외아들’로 끝날지 또다른 성공신화를 낳을지 판가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동통신 브랜드 소비자 조사결과] (자료:브랜드스톡) 브랜드/ 최초인지율(%)/ 인지율(%)/ 호감률(%)/ 만족도 점수(7점 만점) TTL/ 43.0/ 97.0/ 64.4/ 5.26 Na/ 15.4/ 89.2/ 22.4/ 4.93 khai/ 7.8/ 85.6/ 9.7/ 4.34 드라마/ 0.7/ 71.3/ 3.6/ 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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