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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특집] "컴퓨터는 이제 우리 가족이에요"
[한가위특집] "컴퓨터는 이제 우리 가족이에요"
  • 김윤지
  • 승인 2000.09.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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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가족사이트에서 살며 화해하며 사랑하며…심규용·조용신씨 부부
요즈음 심규용(30)씨와 조용신(30)씨 부부는 예전에 연애할 때처럼 가슴이 설레인다.
결혼한 지 3년째. 맞벌이를 하다 보니 서로 얼굴을 맞대는 시간도 부족했다.
하루에 몇마디 말도 못하곤 했다.
8개월 된 딸 지우에게도 마음만큼 손길이 닿지 않았다.


이 부부를 처녀·총각 시절로 돌아가게 한 타임머신은 인터넷에 숨어 있었다.
어느날 남편 심씨가 인터넷을 쏘다니다 무심코 씨타운 www.ctown.net에 들렀다.
회원으로 가입해 가족까지 등록하면 가족게시판과 가족앨범, 가족홈페이지, 가계부를 준다고 했다.
심씨는 아내 조씨와 딸 지우, 캐나다에 가 있는 처남, 대구에 사는 장모 등 가족을 한꺼번에 회원으로 등록했다.
그리고 게시판에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를 올렸다.
“오늘 일찍 들어오렴. 오랜만에 같이 저녁먹자.”쑥스럽지 않게 사랑을 전할 수 있어요 “연애를 7년이나 했는데 편지를 보낸 게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예요. 영 어색하더라구요. 그런데 컴퓨터 자판으로 치니까 금방 지울 수 있어서 그런지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더군요. 대부분의 사무직 남자들이 저처럼 썼다 지웠다 하는 데 익숙하지 않을까요?” 심씨는 쑥스럽지 않게 아내에게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점이 마음에 든다고 한다.
얼마 전엔 대수롭지 않은 일로 다투고 나서 서로 말도 않고 어색하게 지내다가 아내가 게시판에 올린 글을 읽고 금세 화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규용씨, 어제 일 때문에 기분이 풀리지 않은 채 출근하는 모습에 많이 미안했어요. 나 때문에 화 많이 났을 텐데, 내가 차려놓은 아침밥 꾸역꾸역 다 먹고 나가줘서 고맙구…. 어제 일은 내가 100% 잘못한 것 같아. 용서해줄 거지? 내가 사과하는 뜻에서 저녁에 재미있는 비디오랑 수박 사다놓을게.”(천사아내) “나도 잘못한 게 있는 것 같아. 널 충분히 이해해주지 못해 오히려 미안해. 지우 보느라 많이 힘들지? 맨날 지우 때문에 피곤하리란 걸 알면서도 내가 괜한 투정을 부린 것 같아서 미안해. 우리 서로 용서해주자. 이따 집에서 보자.”(천사남편) 조씨는 가족게시판을 통해 어머니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데도 익숙해졌다.
딸 지우를 낳으면서 대구에 계신 친정 엄마 생각을 더 자주 하게 됐다.
지우가 꼼지락거리는 걸 보면 엄마가 날 이렇게 키워주셨겠구나 하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기도 한단다.
“엄마, 지우가 드디어 뒤집었어. 이건 사건이야, 사건! 뒤집다가 다른 한쪽 팔이 바닥에 끼어서 낑낑대는 게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몰라. 나도 어렸을 때 이랬어?”(용신) “지우가 벌써 뒤집기까지 하니? 그녀석….보구싶구나. 서툴기만 한 니가 그래도 애를 키우긴 키우는 모양이구나…. 아침 꼬박꼬박 챙겨먹고 다니고 심 서방도 꼭 아침 챙겨줘라. 아침에 늑장부리지 말구.”(지우 할머니) 요즘은 지우를 대구에 있는 친정집에 맞겨놓아 늘 떨어져 있는 지우 생각을 많이 한다.
지우할머니가 보내준 지우 사진들을 가족앨범에 올려놓고 지우 얼굴을 보면서 그리움을 달랜단다.
캐나다에 있는 남동생과도 게시판을 통해 이야기한다.
게시판에만 들어오면 멀리 있는 가족들과 함께 있는 느낌이 들어 푸근해진다고 한다.
“작은방의 컴퓨터에 사람 냄새가 나요” 심규용씨와 조용신씨는 이제 하루에 한번 이상 게시판에 들르지 않으면 허전하다.
오늘은 무슨 글이 올라왔을까 기다리는 마음이 생겨 가족을 더 애틋하게 느끼게 된 것 같다고 한다.
작은 방에 있는 컴퓨터는 이제 사람 냄새가 폴폴 나는 그런 컴퓨터가 되었다.
그 컴퓨터로 딸 지우의 얼굴을 보고, 멀리 계신 어머니를 느낀다.
부부의 사랑을 전하고 가족을 하나로 이어주는 이 컴퓨터는 이제 한식구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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