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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특집] 나의 고향 아들딸의 고향
[한가위특집] 나의 고향 아들딸의 고향
  • 이윤기(작가/번역문학가)
  • 승인 2000.09.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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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살던 고향>이라는 노래는 좋아하는데 노래 제목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의 살던 고향>이라는 말은 일본어를 직역한 것이거나 일본어로 사고하는 사람만이 쓸 법한 말이다.
우리 문법대로 하자면 <내가 살던 고향>이어야 한다.
‘내가 먹던 꽁보리밥’이어야지 ‘나의 먹던 꽁보리밥’이 가당한가?
그렇거니, 내가 열한살 때까지 산 나의 고향은 동요 <나의 살던 고향>이 노래하는 것과 너무 비슷한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다.
고향 집에서 겨우 200미터 떨어진 곳에 선산이 있다.
조부모님, 부모님 묘소가 거기에 있다.
맏형님도 벌써 거기에 가 계시다.
장조카도 벌써 거기에 가 있다.
이 작은 선산은 변하는 세상의, 변하지 않는 내 우주의 중심이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곤고해질 때마다 ‘그 속에서 살던 때’를 그리워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갖게 된 추억 대학생인 아들딸들에게는, 지금 살고 있는 과천의, 우리가 16년 전에 마련한 아파트가 고향이다.
아들딸은 이 아파트에서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다녔다.
아들딸이 각각 중학교 1학년 때, 초등학교 5학년 때 우리 가족은 미국으로 건너갔다.
5년 뒤, 아파트로 다시 돌아왔을 때 아들딸이 처음으로 한 일은 아파트에 붙어 있는 모교 초등학교 운동장을 한바퀴 도는 일이었다.
아들딸은, 몰라보게 달라진 교정 나무들의 몸피를 대견스러워했는데 나는 그것이 아들딸에게는 세월이 안기는 적막의 체험이겠다 싶어서 마음이 짠했다.
나는 고향을 사랑한다.
하지만 나는 아내와 아들딸에게 조상들 무덤이 있는 내 고향과 고향 선산을 사랑해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마음에는, 거기에서 발생한 추억이 한자락도 없다.
아내와 아들딸에게는 그들의 고향이 있다.
아내의 마음 갈피갈피는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 마을에서의 추억을 소중하게 간수하고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이기적인 내 고향 사랑으로 그 추억에 상처를 입힐 권리가 없다.
아들딸에게 ‘나의 살던 고향’은 과천의 아파트, 그 아파트를 둘러싸고 있는 산과 들이다.
아들딸 마음의 갈피갈피는 과천의 추억을 소중하게 간수하고 있을 것이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가 ‘꽃피는 산골’만 고향인 것은 아니다.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만이 고향인 것은 아니다.
나에게는, 이기적인 내 고향 사랑으로 아들딸 추억에 상처를 입힐 권리가 없다.
내가 과천을 떠나지 않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우리 가족에게 내 고향을 그들 고향으로 승인하라고 요구할 권리가 나에게는 없다.
다만 우리 가족의 추억이 서린 공간, 우리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만나 공유하게 된 물리적 공간에서의 추억을 지킬 의무가 있을 뿐이다.
그러던 우리에게 또 하나의 공간이 발생했다.
컴퓨터가 제공하는 공간이다.
새로 발생한 또 하나의 공간에도 추억이 발생할 것인가? 우리 가족은 자주, 그리고 오래 떨어져 살았다.
아들은 미국, 우리 세식구는 과천, 이렇게 떨어져 산 세월이 3년 가까이 된다.
나와 딸은 과천, 아내와 아들은 미국, 이렇게 떨어져 산 기간도 몇달씩이나 되고 아내와 딸은 과천, 나와 아들은 미국, 이렇게 떨어져 산 기간도 몇달씩이나 된다.
또 하나의 가족, 사이버 공간 뿐인가? 딸은 과천, 아들은 미국, 우리 부부는 유럽, 이렇게 떨어져 산 기간도 몇달씩이나 되니 헤쳐 모이기를 수시로 하는 이산가족이 바로 우리 가족이다.
서로 많이 보고 싶어했다.
하지만 보고 싶어했을 뿐이다.
사실 우리는 떨어져 산 것이 아니다.
우리 네가족이 제각기 사이버 공간에서 때로는 밀회하면서 때로는 근접 감시하면서 보낸 세월이었으니. 3년 전, 아들만 미국에 떼어놓은 채 우리 세식구가 귀국하면서 우리집에는 비로소 찬란한 인터넷 시대가 열린다.
미국에 혼자 떨어진 아들이 자동차를 구입했다는 우편이 뜨면, 나는 아들에게 전자우편을 보낸다.
얘야, 어떤 자동차를 샀는지 궁금하다, 사진찍어서 올려라, 이런 내용의 전자우편을 보내면 다음날 내 컴퓨터에는 자동차 사진이 여남은 장, 총천연색으로 떠오른다.
너, 학교 아파트 어떻게 꾸미고 사니? 이런 우편을 보내면 아파트 내부가 동영상으로 떠오른다.
영화를 전공하는 아들은 인터넷에 코를 박고 산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면 빠뜨리지 않는 일 중의 하나가, 인터넷을 통하여 정보를 주고받은 친구들을 만나는 일, 사이버 공간에서의 만남을 실물로 확인하는 일, 물리적 만남을 통하여 구체적인 추억을 발생시키는 일이다.
철학을 공부하는 딸은 전공과 음악을 넘나든다.
딸은 인터넷을 통해, 고전음악 동호회를 접속하더니, 2년 전에는 ‘필넷 동아리’, 즉 ‘인터넷을 좋아하는 동아리’에 드는 것을 보았다.
여느 동아리가 아니었다.
프로페셔널에 버금가는 교향악단이었다.
딸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정식 연주회를 가진 이 필넷 오케스트라의 악장이자 수석 바이얼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내는 은행에 다니지 않는다.
컴퓨터 앞이 은행이고, 자동이체가 아내의 중요 업무 중 하나다.
은행 업무에 관한 한 아내는 우리집의 독보적인 존재다.
아들과 딸은 정보검색의 도사들이다.
가령, “글 쓰는 데 필요해서 그러는데 보잉747에 관한 자료 좀 검색해줄래” 이렇게만 말하면, 우리집의 인쇄기는 스무장 가량의 인쇄물을 줄줄이 토해낸다.
아들과 딸은 세계의 도서관을 내 서재 드나들 듯이 한다.
현실과 가상의 따뜻한 공존을 바라며 나는 전쟁 전후의 석기시대적으로 가난했던 세월과, 세번째 밀레니엄의 전지구적으로 숨가쁜 세월을 두루 체험하니 행복한 일이다.
우리 부부는 아들딸의 마음속에서, 그들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물리적 공간인 고향 과천과 그들이 편리의 체험을 서로 나누는 사이버 공간인 인터넷이, 어느 한쪽으로 가파르게 기울어지는 대신 따뜻하게 공존하기를 희망한다.
* 이윤기 중견작가이자 번역문학가. 1947년 경북 군위 출생. 197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1991∼97년에는 미국 미시간주립대 종교학 연구원과 비교문화인류학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소설집 와 장편소설 , 산문집 등이 있다. 번역서로는 움베르토 에코의 를 비롯, (M.엘리아데) (K.융) 등 150여 권을 헤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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