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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1 | 대표업종 찬바람, 대안을 찾아라
사이드1 | 대표업종 찬바람, 대안을 찾아라
  • 이경숙 기자
  • 승인 2001.12.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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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귤산업 경제성 없고 중국산에 밀려 위기, 관광객 증가도 소폭에 불과 감귤을 따고 있는 장여선(37)씨 입에서 한숨이 새어나온다.
여느 때보다 풍작이지만, 올해 농사는 손해를 볼 것 같다.
올 겨울 도매시장 평균 경락가격은 15㎏ 한상자에 7천원대로 떨어졌다.
지난해 1만~1만2천원에도 훨씬 못미치는 수준이다.
여기서 귤 세척비, 포장비, 배송비를 빼고 나면 재배자한테 떨어지는 몫은 3천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귤 1㎏을 생산하는 데 200원 남짓 드니, 생산원가도 건지지 못하는 셈이다.
귤나무 아래엔 제주도청이 1㎏당 72원에 수매한 감귤이 썩어 뒹군다.
감귤 가격 안정을 위해 제주도청이 폐기 처리를 지시한 것이다.
또 제주도청은 연말까지 60억원의 예산을 들여 1㎏당 180원에 감귤 2만톤을 수매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올해엔 사과, 배 등 다른 과일까지 풍작이라 귤 수요는 도통 늘지 않고 있다.
감귤 가격은 3년 내리 하락하고 있다.
그래도 장씨는 가위질을 멈추지 않는다.
'열린 것이니 따야죠. 그냥 놔두면 내년 농사를 못 짓잖아요.' 12월초, 제주 경기는 스산하다.
제주의 2대 산업 중 하나인 관광업 역시 감귤산업과 함께 찬바람을 맞고 있다.
제주 관광객의 93%가 내국인인데, 국내 경기가 침체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게다가 강원도, 인근 해남 등 국내 다른 지역이나 해외로 나가는 관광객들이 많아져 제주로 오는 관광객 성장률은 정체하고 있다.
1993년과 지난해 관광객 수를 비교해보면, 해외관광객은 242만명에서 551만명으로 127.7% 늘었다.
반면 제주관광객은 346만명에서 411만명으로 18.8% 증가하는 데 그쳤다.
외국인 관광객 증가세는 더욱 낮다.
28만명에서 29만명으로, 7년 동안 1만명, 3.9%밖에 늘어나지 않았다.
제주도민은 국제자유도시 기획에 은근한 희망을 걸고 있다.
경기가 부양되고 일자리가 늘어나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택시기사 김성범(54)씨는 자신은 국제자유도시 방안에 찬성하는 쪽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내용이 슬프다.
'골프장이 많이 생기면 캐디 자리가 많아지겠죠. 외국업체들이 들어오면 청소라도 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는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어 육지로 나가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한다.
제주의 산업구조는 기본적인 취약점이 있다.
건설교통부 용역으로 제주국제자유도시 개발 타당성 조사를 실시한 존스 랭 라살(JLL)은 첫째 약점으로 1차산업의 비경제성을 꼽는다.
1차산업 비중이 높은 데 비해, 재배 활동 대부분이 소규모라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 탓에 제주도민은 다른 어느 지역보다 WTO, 뉴라운드 바람을 더 많이 탄다.
김상근 제주주민자치연대 대표는 '제주에서조차 중국산 감귤 통조림이 유통되고 있다'고 한탄한다.
더구나 2004년에 농산물 관세 규제가 철폐되면 값싼 중국산 농산물은 엄청난 기세로 제주 농산물을 밀어낼 것이다.
해외시장에선 이미 제주와 중국이 대표 농산물인 감귤로 한판 승부를 벌였다.
결과는 중국의 승리. 제주도가 개척한 캐나다 감귤 시장의 경우, 중국이 최근 몇년 사이 낮은 가격으로 물량 공세를 펴 수출시장을 상당 부분 잠식했다.
귤 가공상품도 브라질, 미국 상품에 밀려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처리 능력, 상품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제주 감귤은 전체의 1%가 수출되고, 1%가 가공될 뿐이다.
54만명밖에 되지 않는 인구나 ‘섬’이라는 지리적 조건도 원천적인 제약이다.
이 때문에 제주는 제조업 수요가 적고 수출입·유통 활동에서도 한계가 있다.
3차산업 종사자들은 전문성이 떨어진다.
뛰어난 인력은 육지의 대도시로 가버린다.
관광상품의 가격 경쟁력은 점차 떨어지고 있다.
내국인 관광객조차 괌, 사이팜, 푸켓보다 제주 관광비용이 비싸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고충석 제주발전연구원장은 '지금은 제주 사람들이 뭘로 먹고 살아야 하나를 논의해야 할 때'라고 우려를 나타낸다.
그러나 기회는 있다.
제주는 지정학적으로 동아시아 주요도시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다.
2시간 비행거리에 도쿄, 베이징, 상하이, 톈진 등 인구 1천만 이상의 대도시가 5개나 있다.
500만명 이상인 도시도 13개가 있다.
남다른 기후도 강점 중 하나. 일교차가 적은 제주에선 화훼, 축산, 양식업의 경쟁력이 뛰어나다.
제주 돼지는 피하 밑에 지방이 적게 축적돼 맛이 단백하다.
이 고기는 육지산보다 값이 30%나 비싼데도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잘 팔린다.
양식장의 물고기들은 수온 차이가 적어 잘 먹고 잘 큰다.
꽃 재배는 전체 경작지의 1%밖에 차지하지 않는데도 농산물 생산액의 9%를 생산할 정도로 생산성이 높다.
존스 랭 라살은 이들 산업이 마케팅력, 기술력, 고부가가치 상품 생산력을 강화하면 충분히 국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진단한다.
이것만으로 제주도민이 다 먹고 살 수 있을까? 김창희 제주도국제자유도시 추진본부장은 제주의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는 세가지 방안을 더 내놓는다.
제주는 지리적으로 접근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이 고립성 때문에 세금, 외국인 체류기간, 무관세 등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정책을 펼 수 있다.
이 약점은 정보화로도 보완된다.
항공료가 든다는 단점은 제주 내에 면세지역을 설치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
제주는 다른 지역보다 인구도 적고 문화·생활 수준이 떨어진다.
하지만 이런 특성을 거꾸로 이용해 외국인학교나 외국 전문인력의 연구단지를 설치하면 남다른 언어환경을 가진 곳으로 변신할 수도 있다.
국제자유도시 구상은 이런 인식에서 출발했다.
김 본부장은 '한국과 다른 한국을 만들어보자는 의도'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비판론도 만만치 않다.
제주 고유의 환경과 정서를 거스른다는 것이다.
송재호 제주대 관광개발학과 교수는 ‘좀더 화끈하고 명쾌한 방안’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외국인학교 설립, 골프장 확대 같은 방안은 명분도 약하고 실리도 적다.
이재수난과 4·3항쟁으로 이어지는 제주민의 평등주의와 저항정신은 이런 방안을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환경 파괴 논란도 피해가기 어렵다.
송 교수는 ‘평화’를 테마로 한 일본 오키나와처럼 명분이 명확하고, 기업의 투자내용이 경제의 발전방향과 맞으면 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중국 상하이처럼 화끈하게 개방해야 한다고 말한다.
제주도의 대안 찾기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인터뷰 |하동만 / 제주국제자유도시추진기획단 단장
제주는 국가경제 개방의 거점

'제주는 단순한 시험 케이스가 아닙니다.
우리나라 국제화, 개방화의 선발자입니다.
' 하동만 제주국제자유도시추진기획단 단장의 발언은 다분히 제주도민 특유의 정서를 염두에 둔 것 같았다.
그는 지난번 공청회 때 제주에서 제주의 시민, 농민, 사회단체 인사들한테 표현 그대로 ‘혼쭐이 났다’. 현재의 특별법안이 계층간 소득격차와 환경오염 문제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비판이 쏟아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제주민의 그런 정서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재수의 난, 4·3항쟁으로 이어지는 역사는 제주민 특유의 자부심, 평등의식과 함께 패배의식도 심어주었다는 것이다.
'이번 기획안이 교육을 강조하고 있는 건 그 때문입니다.
영어학교나 호텔학교 등 전문학교를 제주에 설립하면 누가 가장 많이 입학하겠습니까. 제주도민 아니겠습니까. 제주도민을 세계민으로 만드는 것, 제주도민의 소득을 향상시키는 것이 이 기획안의 중심입니다.
' 그는 지금이야말로 제주를 국제자유도시로 키울 수 있는 기회라고 말한다.
64년 이후 4번의 시도가 있었지만, 그때만 해도 한국 경제시스템 자체가 개방되지 않은 때여서 특정구역만 열어놓을 수가 없었다.
그 이후 OECD와 WTO 가입, IMF 구제금융이라는 구조조정은 한국 경제의 많은 부분을 세계에 개방했다.
'자본 부분은 더 개방할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이제 남은 건 사람과 상품 부분인데, 제주 국제자유도시는 그 부분을 열기 시작할 겁니다.
' 제주는 자유무역지대 안으로 제한되긴 하지만 상품거래 제한을 풀고, 전문인력을 중심으로 외국인력 유입도 활성화할 예정이다.
국무총리실 경제조정관을 겸임하고 있는 그는 한국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는 시발점이자 국가경제 개방의 거점으로서 제주의 역할을 강조한다.
'4500만명 인구로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작은 경제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개방입니다.
' 제주는 부산, 광양, 인천과 함께 한국 경제의 창구로 활약하게 된다.
부산, 광양은 올해 안에 비관세지역으로 선정됨으로써 항만 물류의 중심지 역할을 맡는다.
SOC와 공항시설에 총 4조7천억원이 투입될 예정인 인천은 동북아 허브공항으로서 항공 물류의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된다.
제주는 관광·무역중심지로서 복합기능 도시의 역할을 맡는다.
그는 95년부터 3년 동안 베이징에서 재정경제관 참사관으로 지내면서 한국 경제가 거대경제에 결코 눌리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키웠다.
중국인들이 한국의 산업 인프라를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봤던 덕분이다.
'제주는 오키나와보다 인프라가 좋습니다.
제주 개발계획이 진행되면서 SOC가 상당히 잘 갖춰지게 되었죠. 앞으로도 정부는 투자를 아끼지 않을 겁니다.
이제 성패는 내외 민간자본을 얼마나 유치하는가에 달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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