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7:03 (금)
사이드2 | 카멜레온을 닮은 홍콩의 변신
사이드2 | 카멜레온을 닮은 홍콩의 변신
  • 박한진/ KOTRA 중국팀
  • 승인 2001.12.1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각종 위기 딛고 ‘동양의 진주’로 거듭나기까지 1070제곱킬로미터의 좁은 땅에 매년 4천억달러어치의 상품과 1300억달러의 투자자금이 넘나든다.
1만3천여개의 외국기업이 모여 있고 해마다 1천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온다.
제조업의 국내총생산(GDP) 기여도가 10%를 밑돌면서도 시민 한사람이 한해 2만4천달러씩 벌어들인다.
자타가 인정하는 아시아 최고의 국제도시 홍콩. 그러나 이 도시가 ‘동양의 진주’로 우뚝 서기까지 홍콩은 네차례의 큰 위기를 겪었고 그때마다 예외없이 발빠르고 통큰 변신을 해야 했다.
변신1 중계무역으로 전쟁 피해 극복 근대 이후 중계무역으로 부를 일군 홍콩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었지만 전후 2~3년 만에 국제 중계무역항의 지위를 회복할 수 있었다.
이는 당시 홍콩을 지배하던 영국이 서방국가 중에서는 가장 먼저 공산화된 중국을 승인했고 이로 인해 홍콩기업들이 중국과 외국을 잇는 중계무역을 독점할 수 있었던 덕분이다.
실제로, 47년부터 51년까지 홍콩의 중국무역은 해마다 60% 이상 신장했다.
그 덕분에 홍콩은 연평균 35%라는 기록적인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었다.
변신2 수출 드라이브로 산업화 진전 그러나 1차 변신의 효과도 잠시뿐이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서방국가들이 중국에 대해 금수조치를 내리면서 중국을 활용한 홍콩의 중계기능이 크게 위축된 것이다.
홍콩은 또 한번의 변신에 나선다.
산업화를 통한 수출 드라이브 정책이었다.
상하이 등지로부터 밀려온 중국의 자금과 인력을 이용해 구미시장 개척에 나섰다.
그리고 그 선두에 섬유업종이 나섰다.
50년대 말에 이르러서는 자체 생산한 경공업제품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0%에 달할 정도로 산업화가 진전됐고 수출 드라이브 정책에 관한한 홍콩은 대만보다 6~7년, 한국과 싱가포르보다 10여년 이상 앞서나갔다.
57년과 67년에 각각 구미지역의 불경기와 중국의 문화대혁명이란 혼란을 겪기도 했지만 홍콩으로선 경쟁상대가 거의 없었던 독주 시대였던 셈이다.
변신3 다원화로 경쟁국과 차별화 70년대 들어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실시하는 신흥공업국들이 속속 나타나면서 홍콩에서도 위기감이 고조됐다.
설상가상으로 73년의 세계 석유파동으로 수출이 급감하면서 기업도산이 이어졌고 증시폭락으로 자산가치가 30%로 주저앉는 충격에 빠졌다.
이때 홍콩은 다원화정책으로 변신했다.
경쟁국들이 서로 엇비슷한 상품으로 경쟁할 때 홍콩은 고부가가치 상품을 개발해 구미권의 보호무역주의에 대응하는 한편, 제조업 외에도 금융, 관광, 부동산업을 집중 발전시켰다.
70년대 말부터 때마침 배후기지 중국에서 개혁개방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것은 홍콩의 다원화전략에 결정적으로 큰 힘을 실어줬다.
변신4 금융·서비스형 경제로 변신 변신의 백미는 단연 80년대 중반 이후 나타난 제조업 대이전이다.
60~70년대에 걸쳐 고성장을 지속한 노동집약 산업이 80년대 들어 급격한 코스트 상승에 직면하자 홍콩기업들은 제조업 시설의 90% 이상을 중국 광둥성 등지로 옮겼다.
당시 산업공동화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됐지만 홍콩은 재수출(Re-export) 등 중계무역 기능을 좀더 발전시키고 금융업과 서비스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해 이후 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수위에 꼽히는 국제도시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변신 5 광둥성과 경제일체화 추진 지난 50년간 홍콩의 성공비결은 뛰어난 기술력이 아니었다.
금융과 서비스업도 처음부터 강했던 것이 아니었다.
차별화를 위한 변신의 지혜가 오늘의 국제도시 홍콩을 있게 한 것이다.
중국이 세계경제의 큰 축으로 성큼성큼 다가서는 지금, 홍콩은 또 한번의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비즈니스-물류-하이테크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아시아 허브 도시 건설이 그 목표다.
과거, 기업을 중국으로 옮겨 위기를 극복한 홍콩이 이번엔 아예 광둥성 주장강(珠江) 삼각주와 경제일체화를 추진하고 있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사람들로 북적대는 국제 장터, 인터내셔널 마켓플레이스가 되겠다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