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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세계사이버기원 성기수 대표
[피플] 세계사이버기원 성기수 대표
  • 유춘희
  • 승인 2000.08.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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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반상’으로 간 컴퓨터계의 거목 성기수(66) 박사는 요즘 벤처기업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서울 도곡동의 한 사무실로 출근한다.
머리칼은 세월을 닮아 하얗지만, 얼굴만은 아직도 해맑다.
정부출연연구소와 대학에서만 40년을 보냈으니 일도 할 만큼 했고, 이제 손자들의 재롱을 보며 산책이나 즐길만 한데도 출근길 발걸음이 젊은이 못지않다.
성 박사는 한국기원과 프로바둑기사들이 주축이 돼 만든 세계사이버기원 www.cyberkiwon.com의 사장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많은 닷컴기업 경영자일 성싶다.
‘성기수’라는 이름을 빼놓고 한국의 정보통신과 컴퓨터를 얘기할 수 없을 정도로, 그는 ‘살아 있는 한국 컴퓨터의 역사’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AIST)과 시스템공학연구소에서 28년 동안 길러낸 제자들이 지금 한국의 IT산업을 이끌고 있다.
서울대 공대를 졸업한 뒤 미국 유학을 떠나 2년1개월 만에 하버드대에서 석·박사 학위(기계공학)를 따낸 것은 아직도 하버드 300년 역사의 신화로 남아 있다.
미국 여러 대학과 대기업에서 ‘보장된 여생’을 제안했지만, 그는 고국으로 돌아와 줄곧 정보화의 전도사를 자임했다.
그가 해낸 일들은 일일이 늘어놓기도 힘들다.
한글입출력시스템, 중학교입학 컴퓨터 추첨, 대학입시 및 각종 고지서 전산화,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정보화시스템, 일한 자동번역시스템, 지문인식시스템, 기상예보시스템 등 시대의 흐름을 바꿔놓은 프로젝트를 도맡았다.
KAIST에 있으면서 프로젝트를 허공에 날려버릴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에 단 한차례도 연가휴가를 내지 않은 일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성 박사가 바둑계와 인연을 맺은 것은 92년 후지쯔배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나눠 가진 유창혁과 조훈현이 개선하는 자리에 참석하면서다.
그때 윤기현 9단은 참석자들에게 그를 ‘컴퓨터계의 조남철’이라고 소개했다고 한다.
조남철 9단은 해방 직전 일본에서 돌아와 한국 바둑의 씨앗을 뿌린 사람이니, 한국 정보화의 토대를 마련한 그와 비길 만도 하다.
이젠 정말 ‘사이버바둑의 조남철’로 첫돌을 놓은 셈이다.
성 박사는 주변의 일 가운데 “바둑이 제일 좋다”고 한다.
“사람으로 태어나 가장 고상한 일이 바둑 두는 것”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할아버지에게 한자와 바둑을 배웠는데 바둑이 훨씬 재밌었어요. 우리 사이트에서 가끔 사람들과 붙어보는데 랭킹이 5급입디다.
한자공부만 같이 안 했어도 훨씬 늘었을 텐데….” 그의 바둑은 싸움을 즐기는 기풍으로 웬만한 젊은이 못지않은 전투력을 지녔다고 한다.
사무실의 한 직원은 윤기현 9단과 5점을 놓고 1승1패를 거둔 실력이니 3급 정도로 봐야 한다고 귀띔한다.
세계사이버기원의 목표는 반상에서 이룬 바둑 종주국의 위상을 사이버 세계에서도 이어가는 것이다.
일본과 중국은 인터넷 바둑에 이제야 눈뜨고 있다고 하니 일찌감치 선수를 둔 셈이다.
바둑 콘텐츠, 대국실 운영, 바둑 강좌, 기보 감상, 기력 측정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수익은 대국 중계권 영업, 바둑 쇼핑몰, 아마추어 단급 인허 대행, 주요 콘텐츠 유료화 등으로 얻는다.
콘텐츠 중에는 한국기원이 소장한 45년 이후 100만건 가량의 기보도 들어 있다.
슈퍼컴퓨터와 대국할 바둑프로그램도 만들 계획이고 사이버 바둑월드컵 개최도 기획하고 있다.
성 박사는 인터넷 바둑이 제2의 바둑 중흥을 몰고 올 혁명이라고 말한다.
“사이버바둑이 활발해져야 합니다.
바둑을 두고 싶어도 상대가 없거나 급수가 맞는 사람을 찾기 힘들고, 더구나 몸이 불편한 사람은 기원가기도 힘들어요. 지금 우리 사이트에 지구 반대쪽 사람들만 1천여명 이상 들어옵니다.
시공을 뛰어넘어 언어의 장벽없이 즐길 수있는 게 얼마나 될까요. 바둑은 정신스포츠입니다.
노인과 어린이, 남자와 여자가 함께 할 수 있는 스포츠는 바둑밖에 없지요.” 이제 그의 관심은 컴퓨터가 아니라 바둑으로 옮아갔나보다.
가만, 그렇다면 우리나라 슈퍼컴퓨터는 이제 누가 지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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