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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경제] 세계화가 빈곤, 불평등 줄였다
[국제경제] 세계화가 빈곤, 불평등 줄였다
  • 박종생/ <한겨레> 국제부
  • 승인 2002.0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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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은행 실증연구 통해 반세계화 논리 반박… '빈곤층 인구 감소 시작' 세계은행이 최근 주목할 만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세계화, 성장 그리고 빈곤>이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전지구적 현상인 세계화가 빈곤 국가들에게 미친 영향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국가간 경제통합으로 상징되는 세계화는 부작용도 일으켰지만 빈국들의 소득을 증대시키고 국가간 불평등을 감소시킨 만큼 ‘잘 조절된 세계화’를 지속해야 한다는 게 이 보고서의 논지다.
이 보고서는 1999년에 미국 시애틀에서 벌어진 세계무역기구(WTO) 반대시위를 시작으로 지구 곳곳에서 벌어진 반세계화 시위에 이론적으로 반격을 가하려는 의도를 다분히 내포하고 있다.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기구의 주요 간부들이 반세계화론자들의 주장에 개인적으로 반대하고 경고하는 견해들을 표명한 적은 많지만, 이번처럼 소속 경제학자들을 동원해 실증분석을 통한 논문 형태로 반박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데이비드 달러와 아트 크레이 등 세계은행 소속 경제학자들은 <포린어페어스> 2002년 1~2월호를 통해서도 이 보고서의 주요 내용을 전하면서 반세계화론자들을 논박했다.
개도국 성장률 선진국 앞질러 이 보고서는 세계화 물결을 역사적으로 3단계로 나눈 뒤 각 단계마다 세계화가 빈국들에게 미친 영향을 설명하고 있다.
‘제1의 세계화 파도’는 1870~1914년 사이에 일어났다.
이 시기는 수송수단의 발달과 개방으로 상품·자본·노동의 이동이 급격히 증가한 시기다.
수출규모는 이전에 비해 두배 증가했고, 외국인 투자는 세배나 증가했다.
또 유럽인 6천만명을 포함해 이민이 대거 늘어났다.
이 시기 노동의 이동은 세계 인구의 10%에 달했다.
전지구적으로 1인당 소득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증가했지만 빈곤층 인구가 증가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하지만 제1의 파도는 제1차 세계대전과 미국의 대공황,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원점으로 돌아왔다.
보호주의가 팽배하면서 1940년대 말의 세계 교역규모는 1870년대 수준으로 다시 감소했다.
‘제2의 세계화 파도’는 1950~80년에 주로 부국들 사이에 벌어진 경제통합 현상을 지칭한다.
유럽과 북미, 그리고 일본은 관세무역일반협정(GATT) 아래 일련의 다자간 무역자유화 조처를 실행에 옮기면서 교역관계를 회복시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선진국들은 이 시기에 전례없는 속도로 성장을 지속했고, 그 결과 부국과 빈국간 격차는 크게 벌어졌다.
80년부터 시작된 ‘제3의 세계화 파도’는 기술진보와 통신혁명, 중국·인도 등 빈곤 대국들의 세계화 동참 등으로 세계화 현상이 전지구적으로 확대된 시기를 일컫는다.
빈국들은 이때 처음으로 1차산품보다는 제조업과 서비스업에 특화를 하면서 세계시장에 참여한다.
제조업부문은 80년에 개도국 수출의 25% 미만이었으나 98년에는 80%로 급상승했다.
브라질, 중국, 헝가리, 인도, 멕시코 등 24개 개도국(인구 30억명)은 이 시기에 선진국들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로 성장을 했다.
이 국가들의 성장률은 평균적으로 60년대 1%, 70년대 3%, 80년대 4%, 90년대 5%로 계속 높아졌다.
반면 이 시기에 오히려 더 가난해진 빈국도 적지 않다.
이 보고서는 약 20억명이 사는 빈국들이 90년대에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고 지적하면서, 그 이유로 세계화에 동참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이들 빈곤국에는 아프리카의 국가들과 옛소련 소속 국가들, 아프가니스탄 등이 속한다.
'무역이 성장에 기여한다'는 이런 주장은 사실 기존 국제무역 이론들이 계속 주장해온 바여서 크게 새로울 것은 없다.
물론 세계화의 진전을 단계별로 구분하면서 무역이 주요 빈국들의 성장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실증적으로 분석해낸 것은 이 보고서의 공이다.
이 보고서의 논점이 좀더 두드러지는 것은 세계화가 빈곤층을 감소시키고 더 나아가 불평등을 감소시켰다는 주장이다.
반세계화를 주창하는 비정부기구(NGO)들은 세계화 반대의 주요 논거로 세계화가 빈곤과 불평등을 확대시킨다고 주장해왔기 때문에 이 보고서의 이런 주장은 충분히 논쟁적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제3의 파도’ 시기에는 사상 처음으로 하루에 1달러 미만을 버는 빈곤층 인구가 증가하는 것을 멈추고, 오히려 약 2억명 가량 줄었다고 한다.
이는 중국, 인도 등 인구대국들의 경제발전 속도가 증가한 데 따른 것이다.
또 경제성장을 달성한 개도국 내 계층간 불평등도 대부분 감소했다고 한다.
물론 세계화 과정에서 계층간 불평등이 증가한 개도국도 있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서는 이전의 극심한 교육수준 차이로 인해 세계화가 임금 격차를 더 벌려놓았으며, 중국에서는 도시 중심으로 성장을 하면서 도농간 소득격차가 발생했다.
그렇지만 대부분 국가들에서는 불평등이 줄어들었다는 게 이 보고서의 주장이다.
‘빈국들의 성장’에 걸림돌 많아 세계은행은 이 보고서에서 세계화 과정에서 승자와 패자가 공존하고 있으며, 개도국이 선진국의 무역장벽으로 말미암아 커다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는 등의 내용들도 내놓고 있다.
또 국제 금융자본의 횡포가 금융시장이 취약한 개도국을 위험에 빠뜨릴 가능성이 크다며 금융위기 초기에 충분한 유동성이 공급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세계은행은 빈국들이 비교우위를 갖고 있는 농업과 노동집약적 제조부문 등에 대해 부국들이 수입제한 조처를 취하고 있다며, 이런 수입제한 조처가 빈국들에게 연간 1천억달러 이상의 비용 부담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비용부담 규모는 부국들이 빈국들에게 연간 제공하는 원조자금의 두배 이상에 해당한다.
따라서 선진 부국들이 농업과 섬유부문 등에서 시장보호와 보조금 형태로 관행화돼 있는 무역장벽을 낮춰야 한다는 게 이 보고서의 주장이다.
이런 내용은 세계은행이 국제통화기금(IMF)과 함께 세계화 첨병 노릇을 하는 국제기구이기는 하지만 국제통화기금과 견줘 상대적으로 빈국들의 개발에 더 관심을 쏟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세계은행이 진정으로 빈국들의 성장에 관심이 있다면 세계화의 부작용을 완화하는 대책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앞장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세계화의 부작용에 대한 대응책들이 다각도로 논의돼왔지만 선진국들의 반대로 아직은 제대로 실행에 옮겨진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세계은행이 행동으로 보여줘야만 비로서 이번 보고서가 제대로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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