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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놀로지] 입는 컴퓨터
[테크놀로지] 입는 컴퓨터
  • 장미경/〈과학동아〉 기자
  • 승인 2002.01.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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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으로 말하고 반지로 검색 모자·보석 등에 입출력 장치·센서 부착… 전자파 차단 등 대중화 갈길 멀어 “내가 기계가 되는 꿈을 꾼 것일까, 기계가 내가 되는 꿈을 꾼 것일까?” 장자는 꿈과 현실의 구별이 없는 세계를 나비의 꿈에 빗대 이야기한 바 있다.
장자가 현 시대에 다시 태어난다면, 이런 심정을 기계의 꿈에 빗대 표현하지 않을까? 기계와 자아의 구별이 모호한 세상, 사람과 기계 사이의 장벽이 점차 허물어지는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
실제로 세계 도처에서는 책상 위에 놓인 모니터나 키보드를 버리고, 자신의 몸을 커뮤니케이션 장소로 활용하려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인간의 몸에서 결코 떼어낼 수 없는 패션의 현장에서도 이런 변화를 적극 수용하려는 움직임이 거세다.
의복을 넘어선 새로운 개념의 의복이 신체의 일부가 됨으로써, 가상세계의 자유를 거침없이 누릴 수 있게 된다.
의복이나 액세서리 등의 패션에 최첨단 컴퓨터 기술을 적용해 하나로 일체화한 제품을 ‘입는 컴퓨터’(wearable computer)라고 부른다.
이는 컴퓨터 시스템을 몸에 두르고 다닌다는 뜻이며, 더 나아가서는 컴퓨터를 인공적으로 확대된 신체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신체와 밀착돼 의복과 컴퓨터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입는 컴퓨터의 탄생은 컴퓨터 인터페이스의 새로운 변혁을 뜻한다.
컴퓨터와 패션의 첫만남은 1997년 MIT대학 미디어랩의 알렉스 펜틀랜드 교수가 시도했다.
그는 ‘뷰티 앤 더 비츠’(Beauty & the Bits)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모자, 신발, 보석, 의류에 입·출력장치와 센서 등의 기능을 부가한 ‘테크놀로지 패션’을 선보였다.
IBM은 2000년 12월에 액세서리와 컴퓨터 기술을 접목한 ‘디지털 주얼리’의 시연회를 열어 관심을 모았다.
심장박동 소리에 따라 반짝이는 귀걸이로 혈압을 측정하고, 반지를 문질러 웹사이트를 검색할 수 있다.
이런 액세서리 컴퓨터는 불의의 사고로 시력을 잃은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에서는 시각장애인의 눈에 인공망막칩을 이식하고 특수 안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시력을 갖도록 도와주는 연구를 하고 있다.
이 안경은 실제 생물학적 구조와 유사한 집적회로인 인공망막칩을 통해 작동한다.
즉 안경에 달린 소형 카메라가 포착한 영상신호를 전기신호로 전환하면 안테나를 통해 눈 안쪽에 이식된 인공망막칩에 전기신호가 전달되는 방식이다.
해마다 열리는 최첨단 테크놀로지의 향연장에서도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입는 컴퓨터의 다양한 자태를 볼 수 있다.
2000년 8월 필립스와 리바이스가 공동 개발해 출시한 첨단 재킷 ‘ICD+’나 2001년 4월 독일 하노버 세빗 행사장에서 선보인 프랑스 기업 알카텔의 ‘블루투스 재킷’이 대표적인 사례다.
재킷의 팔목에는 전화와 컴퓨터 기능을 통합한 슬림형 컴퓨터가 달려 있고, 모자 안쪽에는 헤드셋, 지퍼에는 마이크 기능이 내장돼 있다.
모양과 무게도 보통 재킷과 비슷해 입고 다니기에 불편함이 없다.
SF영화에서처럼 옷깃을 올려 전화를 걸거나 단추를 눌러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한마디로 ‘폼 나는’ 옷이다.
음성인식칩이 내장돼 있어 목소리로 조작되기도 한다.
이런 제품이 한단계 발전하면 자신의 왼팔에 실리콘칩을 부착했던 영국 레딩대 케빈 워릭 교수의 전망처럼 인간의 사이보그화가 조만간 실현될지도 모를 일이다.
입는 컴퓨터가 우리를 설레게 하는 테크놀로지임은 분명하지만, 대중화와 상용화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유해성 전자파의 차단이다.
각종 전자장치를 몸과 밀접하게 부착시켜야 하기 때문에 전자파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배터리의 안전성과 용량도 자주 거론되는 문제다.
인간의 몸에 부착하기 때문에 배터리 폭발의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사용하려면 항상 전원이 켜져 있어야 하므로 안전하면서도 고성능을 갖춘 배터리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MIT 미디어랩 연구실에서는 발을 내딛을 때마다 가해지는 충격을 에너지원으로 전환해 자체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신발을 고안하고 있다.
옷의 소재와 스타일 속에 첨단 테크놀로지가 숨어 있는 패션의 개발이 계속되면, 앞으로 최신 컴퓨터를 장만하기 위해 패션숍을 찾게 될 날도 멀지 않았다.
세계는 지금 기술과 감각이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사이보그 패션’을 탄생시키기 위해 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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