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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지역경제 현장을 가다③/ 경기도
[특별기획]지역경제 현장을 가다③/ 경기도
  • 이미경 기자
  • 승인 2002.01.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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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는 꽁꽁 묶여 있다.
” 경기도청 경제투자관리실 황준기 실장은 상황을 한마디로 요약했다.
수도권정비계획법, 공장총량제, 군사시설보호법, 도시계획법에 의한 개발제한구역, 팔당상수원 특별대책권역 등 각종 규제로 인해 손을 못 대는 지역이 경기도 곳곳에 ‘지뢰’처럼 포진하고 있다는 얘기다.
황준기 실장은 ‘경제 도지사’를 자처한 민선 2기 임창열 지사의 지난 3년간 경제정책이 “안으로는 기업하기 좋은 곳, 투자하기 좋은 곳을 만들기 위해 인프라를 구축하고, 밖으로는 지나치게 엄격한 규제를 풀기 위해 중앙정부와 끊임없이 협의하는 과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서쪽으로는 세계경제의 가장 큰 변수가 될 중국을 향해 열려 있고, 북쪽으로는 남북한 경제교류와 통일시대를 준비할 접경지대가 펼쳐지며, 수도 서울을 품고 있는 경기도는 산업 경쟁력에서 다른 어떤 지역보다 우위에 있다.
국내 중소기업의 28%, 첨단산업의 37%가 경기도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교통과 인력, 배후 소비시장 등 경기도의 산업 인프라와 입지조건이 기업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라는 점을 상기시켜준다.
다른 지역으로 갔다가 한달 전 성남에 있는 벤처빌딩으로 돌아왔다는 한 벤처기업 사장은 “우수한 인력이나 협력업체를 찾기 힘들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 예상했는데, 금융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다시 경기도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조심스럽게 털어놨다.
“대한민국은 수도권 공화국”이라는 서글픈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지만, 경기도에 1조1천억원에 달하는 중소기업 지원자금과 100억원대의 벤처펀드들이 조성돼 있고, 각종 에인절 클럽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기업하기 좋은 곳을 만들겠다’는 경기도의 의지가 결실을 맺었다고도 볼 수 있다.
경기도청 경제항만과 심기보 사무관은 “전통 제조업의 비중을 낮추고, 부가가치가 높은 지식기반 산업에 역점을 둘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기도는 국내 반도체 산업의 65%, 바이오 산업의 70%, 첨단 전자산업의 50%가 밀집돼 있을 정도로 첨단 신산업의 집적도가 높은 곳이다.
삼성전자, 하이닉스, LG전자 등 국내 대기업들의 연구소와 공장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데다 수원과 고양, 성남 등지에 있는 벤처빌딩의 입주율이 평균 90%에 이를 정도로 벤처기업 설립이 활발하다.
각 시의 특성을 살린 지식기반 테마사업도 추진중인데, 광명시는 13만평 규모의 음악·문화 산업단지를 갖춘 음반유통 물류기지로, 부천은 디지털 종합 지원센터 등이 들어서는 디지털 아트 하이브로, 수원·성남은 15만평 규모의 게임 개발단지를 갖춘 게임산업의 산실로 자리매김할 예정이다.
경기도의 재정자립도는 78%로 전국 평균 57.6%를 훨씬 웃돈다.
심기보 사무관은 “정부지원금, 경기도와 해당 시의 예산, 외국인 투자 등을 통해 지역 개발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했다.
현재 경기도가 가장 역점을 두는 사업은 2011년까지 3조원이 투입될 것으로 알려진 평택항 개발, 그리고 고양시에 국제전시장과 외국인 전용 숙박단지를 건설하는 일이다.
현재 공사중인 4개 선석을 포함해 총 10개 선석을 운영중인 평택항은 지난해 국내 28개항 가운데 수출실적 3위, 물동량 신장률 1위를 기록하며 잠재력을 과시했다.
경제항만과 신종일 계장은 “부산항을 이용하는 수도권 물동량을 평택항으로 변경하면 연간 물류비가 7500억원 가량 절감된다”며 “부산, 광양과 함께 국내 3대 수출항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경기도쪽은 컨테이너 전용부두 건설이 끝나는 2003년을 기점으로 평택항 일대를 관세자유지역으로 지정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공사가 끝나는 2011년에는 총 84개 선석을 갖춘 “대 중국 수출과 여객 수송의 1등 관문”으로 우뚝 세우겠다는 각오다.
오는 4월부터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는 고양시 국제전시장은 총 23만평 부지에 대규모 전시장과 호텔, 쇼핑센터 등 부대시설을 갖춘 국내 최대 규모의 국제컨벤션센터다.
정부가 30%, 고양시와 경기도가 각각 35%씩의 건설비를 부담해 건립되는 이 전시장은 “국제적인 규모의 산업전시를 상시 유치해 국내 전시산업에 새로운 가능성을 연다”는 취지로 출발했다.
전시장 건립 업무를 맡고 있는 박종갑 사무관은 “전시장 옆에 들어설 동양 최대규모의 수족관과 관련해, 스페인 기업인 아스프로와 4500만달러의 투자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상태”라며 전시장 부대시설에 관심있는 민간·외국 자본들이 적지 않음을 시사했다.
인근에 건설하는 고양시 국제 관광숙박단지는 호텔은 물론 중·저가 숙박시설과 테마파크, 각종 문화공간 등을 두루 갖춘 외국인 전용 관광단지다.
그렇다면 이처럼 탄탄한 산업기반을 바탕으로 시도별 지역총생산 실질 성장률이 해마다 20%에 달하는 경기도가 ‘꽁꽁 묶여 있다’고 불만스러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투자관리실 황준기 실장은 “그동안 발벗고 뛴 결과 지난해 말까지 경기도 외자유치 규모가 100억달러를 넘었지만, 수도권정비계획법(이하 수정법)상의 권역별 행위제한 등 각종 규제로 인해 정작 대규모 투자를 놓치는 일이 많았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세계적 기업인 레고가 이천에 18만평방미터 규모의 테마파크를 건설하려고 했다가 ‘자연보전권역에 6만평방미터 이상의 시설물을 지을 수가 없다’는 법규로 인해 독일로 부지를 변경한 일을 대표적인 예로 꼽았다.
경기지역경제인연합 김영일 사무처장은 “공장총량제로 인해 지난해 11월말을 기준으로 446개 기업 526평방미터의 건축허가가 유보됐다”며 “공해유발 시설물도 아닌데, 창고를 짓지 못해 야적했다가 상대 회사로부터 컴플레인이 들어오면 누가 책임지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페어차일드 부천 공장은 1억달러를 들여 생산라인을 증설하려다 ‘성장관리권역은 3천평방미터 이상 되는 시설물을 짓지 못한다’는 공업배치법 때문에 증설을 포기했다고 한다.
IMF 이후 공장설립을 희망하는 기업이 총량제 규모를 넘어서면서, 경기도에 공장을 비롯한 각종 시설물을 새로 짓거나 증설하는 일이 좀처럼 쉽지 않게 된 것이다.
김영일 사무처장은 “공장신축 허가를 받은 토지에 대해 프리미엄을 붙여 팔아넘기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며 “경기도에 있는 회계사무소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이러한 공장부지 투기 사례”라고 말했다.
경기도 행정관료와 지역구 의원, 지역경제 전문가와 기업가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목소리로 “규제 철폐”를 외친다.
지나치게 엄격한 규제 때문에 기업활동이 자유롭지 못하고, 경제성장에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경기개발연구원 노춘희 원장은 “공장 건축이 가능한 허용량을 미리 고시하고 한도를 넘으면 건축이 불가능한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며 “경쟁력 있는 지자체의 성장을 막는 것은 전체적으로 하향 평준화하라는 이야기나 같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기도의 이러한 ‘독주’는 충청과 강원 등을 비롯한 다른 지방자치단체들로부터 꾸준한 견제를 받아왔다.
비수도권 시도들은 지난해 입법이 무산된 지역균형발전특별법을 올해 안에 입법 추진하려고 준비중이고, 올해 초에는 지역균형발전포럼을 만들어 정책과제를 공동 개발하고 지역간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등 본격적인 ‘공동대응’에 나섰다.
이러한 움직임은 지난해 산업단지와 사설건축물, 불법 건축물 등이 총량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수도권 공장총량제가 상당부분 완화됐는데도, 재정경제부가 올해 또다시 수도권 규제완화를 골자로 하는 관계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욱 가속화됐다.
청주 경제정의실천시민운동연합(이하 경실련) 이두영 사무처장은 “정부가 수도권 집중을 해소한다고 하면서 한편으론 꾸준히 규제완화를 해주는 바람에, 경기도는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무분별한 개발로 ‘블랙홀’이 되고 타 시도는 먹고 살 일이 막막해졌다”고 말했다.
“개발의 블랙홀인 경기도를 살리자”는 주장은 경기도 내부에서도 터져나오고 있다.
경기 경실련 김필조 정책부장은 우선 “총량제 완화를 추진하기 전에 총량제 때문에 정말 필요한 공장을 못 짓는 것인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공장 신축·증설 신청을 받아 ‘양’에 맞춰 선착순으로 허가해주는 데 그칠 게 아니라, 경기도에 필요한 산업시설을 제대로 짓고 운영하는 것인지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총량제가 투기를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사후감시 없는 안일한 행정이 투기의 원인이라고 믿는다.
지난해 불법 건축물이 총량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그동안 경기도 논밭 곳곳에 불법으로 들어서있던 가건축물들은 사실상 면죄부를 받은 셈이 됐다.
염색업을 하는 한 사업자는 “총량제로 인해 충청도 등 인근 시도로 옮겨간 염색공장들이 다시 경기도로 들어와 가건물을 짓고 있다”며 “염색은 수도권과 가까울수록 생산비가 덜 드는 업종이라 이런 일이 아마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현상은 “전통 제조업보다 지식 정보산업에 역점을 두겠다”는 경기도의 장밋빛 포부와도 거리가 먼 일이다.
경원대학교 이창수 교수는 “장기적인 비전과 전망이 없다면, 경기도 개발은 오히려 도민의 삶의 질을 낮추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산 신도시 건설 과정에서, 경기도는 파주에 대규모 출판단지를 건설하면서 그 배후지역에 주거지역을 건설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출판단지가 무산되면서 일산은 ‘베드타운’이 되고 말았다.
이 교수는 20만평 규모의 벤처타운과 주거지역을 함께 개발할 것으로 알려진 판교 역시 비슷한 처지가 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수도권 인근에 이처럼 베드타운이 양산되면 현재 1년에 약 10조원에 달하는 교통혼잡 비용은 눈덩이처럼 더 불어날 것이고, 주민들의 삶의 질은 꿈같은 얘기에 불과하다.
올해 실시될 지방선거에서 후보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수정법을 완화하고, 공장총량제를 폐지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이창수 교수는 “유권자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이 ‘개발된다’는 사실에 흥분하기보다 주거환경이 얼마나 개선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춰 후보자들의 정책을 꼼꼼히 비교했으면 한다”고 충고했다.

경기도의 세가지 숙제

“수도권 문제는 나라 전체의 문제”라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경기도 개발을 둘러싼 갖가지 논란들은 대부분 경기도 내부에서 불거지기보다 인근 지자체나 중앙정부 부처와의 ‘대외적인’ 갈등인 경우가 많다.
현재 경기도가 탁월한 협상력과 묘수로 돌파해야 할 현안을 정리했다.
▶당진항 분리 문제: 경기도는 인근지역을 2003년까지 관세자유지역으로 지정한다는 목표로 평택항 개발을 추진 중이다.
평택항은 충청북도 당진항과 연결돼 있는데, 최근 당진군쪽에서 “당진항을 분리해 개발하겠다”며 완강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당진군으로서는 내 집에 내 문패를 달겠다는 것이지만, 경기도로서는 난감한 일이다.
관세자유지역으로 지정되려면 하역능력이 1000톤 이상 되어야 하는데, 하역능력이 170톤인 당진항이 평택항에서 분리되면 관세자유지역 지정이 적어도 2년은 늦춰진다.
경기도는 “항만은 집적이익이 높은 산업인데다 분리 개발하면 중복투자 가능성이 있다”며 당진군과 꾸준히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 북부지역을 낙후지역으로 분류하는 문제: 비수도권을 중심으로 지역균형발전 특별법안 입법 움직임이 활발한 가운데 강운태 의원 발의로 경기 북부지역을 지역균형발전 특별법상의 ‘낙후지역’으로 분류해 개발해야 한다는 입법안이 마련됐다.
“경기 북부지역과 남부지역의 격차가 심한데, 같은 기준으로 규제하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는 것. 비수도권에서는 “경기 북부보다 훨씬 개발이 안 된 지역도 있는데, 경기 남부와 차이가 난다는 이유로 낙후지역으로 분류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올해 지자체선거는 물론 대선에서도 특별법 관련 공방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신도시 건설계획 관련 문제: 건교부는 수도권의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 화성 동탄지구와 파주 운정지구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기로 했다.
경기도는 “더이상 베드타운을 양산할 수는 없다”며 산업 기반시설이 함께 갖춰진 도시를 건설해 도시의 자생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그러나 경기도 입장이 관철되더라도, 경쟁력 있는 산업 기반시설을 갖추지 못한다면 개발부지를 확보해도 별 실익이 없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교통난 등 예상되는 문제점을 최대한 고려해, 현실성 있는 개발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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