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7:03 (금)
[비즈니스] 광고와 영화가 만나다
[비즈니스] 광고와 영화가 만나다
  • 최우성 기자
  • 승인 2002.01.2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광고기획사에 다니는 남편과 연예부 기자인 아내. 일 때문에 아기 갖기를 거부하는 아내와 아기를 원하는 남편은 매일밤 다툰다.
두사람을 화해시키는 주인공은 바로 남편이 기획한 태교용품. 영화 '애 낳는 남자? 돈 버는 여자!'의 스토리라인은 이렇게 흐른다.
‘서로 바라만 보는 청춘남녀 사이의 사랑 만들기’를 다뤘다는 영화 '그녀는'에서 생머리 여학생은 한 외식업체에서 일한다.
그녀는 옷에 밴 식당 냄새를 없애기 위해 늘 냄새제거제를 뿌려댄다.
그녀를 바라보는 해맑은 청년은 늘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드는데…. 탄탄한 줄거리에 예쁜 영상이 더해진 두 영화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두 영화의 뼈대를 이루는 주요 모티프는 바로 특정 회사들의 상품이다.
대양이앤씨가 내놓은 태교용품 ‘아가소리’, 외식업체 ‘베니건스’, 매일유업의 음료 ‘카페라떼’, P&G의 냄새제거제 ‘페브리즈’는 두 영화 속에서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영화를 끌고가는 실질적인 주인공이다.
영화 같은 광고? 광고 같은 영화? 영화와 광고의 경계를 넘나드는 ‘광고영화’가 주목을 끌고 있다.
광고영화란 광고의 대상이 되는 특정 상품을 모티프로 삼아 시나리오를 쓰고 그것을 영화화한 것이다.
상영시간이 보통의 단편영화처럼 평균 15분 안팎이라는 점에서 TV CF와 구별되지만, 특정 상품에 대한 광고 자체가 영화의 목적이라는 점에서는 보통의 영화와도 다르다.
영화라는 틀에 광고의 메시지를 담은 이 새로운 광고영화는 현재 ‘무버셜’(Movercial)이나 ‘애드무비’(Admovie)라고도 한다.
제작사에 따라 서로 다른 이름을 갖다 붙였기 때문이다.
영화와 광고가 처음으로 만나게 된 계기는 특정한 상품을 영화 속의 소도구로 이용해 일종의 광고효과를 노리는 일명 ‘PPL(Product Placement) 광고’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영화 속에 특정 회사의 제품을 노출시켜 소비자 인지도를 손쉽게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터미네이터'나 '캐스트어웨이'와 같은 영화를 통해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타고 다니는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와 택배업체 페덱스가 엄청난 광고효과를 본 전례가 있다.
배우 송강호가 오리온 초코파이를 먹는 장면이 삽입된 '공동경비구역 JSA'는 해당 업체에 20% 이상의 매출증대 효과를 안겨준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들어 부쩍 관심이 쏠리고 있는 광고영화는 기존의 이같은 PPL 광고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광고기법이다.
PPL 방식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이미 완성된 상태에서 특정 장면에 특정회사의 상품을 배치해 노출효과를 노리는 것인 데 반해, 광고영화에서는 광고대상이 될 제품을 먼저 결정한 뒤 그 제품을 모티프로 한 시나리오 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특정 상품이 스토리 전개의 필수요소로 등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홍보효과가 커지는 셈이다.
이제 나이키 운동화를 노출시키기 위해 운동화 끈을 묶는 장면을 긴 시간 보여줄 필요가 없다.
광고대상이 극 줄거리 속에 자연스레 녹아들어 있기 때문에 관객은 상업영화 못지않은 재미와 완성도를 갖춘 한편의 영화를 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애 낳는 남자?…'나 '그녀는' 등 현재 광고영화의 주된 상영 윈도는 온라인이다.
이들 광고영화가 이른바 ‘e-ater’(온라인 영화관)를 통해 상영되는 인터넷 영화라는 사실은 광고영화의 매력을 더욱 배가시키는 요소이기도 하다.
지난해 3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무버셜이라는 이름의 광고영화 '애 낳는 남자?…'를 선보인 헬로우닷TV의 차희범 부사장은 “까다로운 심의규정이나 고액 예산은 물론 짧은 시간 안에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한계를 지닌 TV 광고에 비해 인터넷을 매체로 하는 무버셜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새로운 형식”이라고 강조한다.
'그녀는'을 제작한 제미로의 박성현 프로듀서 역시 “애드무비는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북돋울 뿐만 아니라, 제작비용 외에 별도의 매체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제작비 절감효과도 가져올 수 있는 매력적인 형식”이라고 평한다.
광고주들 역시 광고영화라는 새로운 형식에 대해 일단은 긍적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녀는'의 광고주이자 제작지원사인 베니건스 신용준 마케팅팀장은 “작품의 기획단계부터 제작사와 긴밀한 협의 아래 시나리오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기존의 PPL 방식에 비해 두드러진 장점으로 꼽는다.
그는 특히 “인터넷 기반이 발달해 있고 유행에 민감한 한국에서는 큰 힘을 발휘할 것이란 점에서 매력을 느낀다”고 말한다.
온라인 광고영화라는 형식이 특정 타깃 집단을 대상으로 한 광고전략에서 매우 뛰어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영화라는 틀 속에 퀴즈나 설문조사 등 다양한 인터랙티브 요소를 첨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헬로우닷TV는 '애 낳는 남자?…'를 통해 대규모의 알짜배기 고객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한 바 있다.
장차 광고영화가 중요한 eCRM(온라인 고객관리)의 수단으로 자리잡을 수도 있음을 짐작케 해주는 대목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TV 광고처럼 광고효과를 수치화할 수 있는 정교한 기법이 개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단기간에 광고영화가 대세를 이룰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동일한 광고영화 작품을 놓고서도 광고주는 한편의 광고물로 바라보는 반면, 일반 관객은 영화로 받아들인다”는 제미로 박성현 프로듀서의 지적은 광고영화가 처한 어려움을 잘 드러내준다.
설령 상업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더라도 작품의 완성도가 뒷받침되지 않는 순간, 광고효과는 오히려 즉각 반감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광고영화의 출현을 단순히 마케팅 기법이라는 관점에서가 아니라 새로운 문화 장르의 개척이라는 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목소리는 한번쯤 되새겨볼 만하다.
광고영화라는 새로운 실험은 젊은 신규인력들이 영상산업에 성공적으로 진입하는 데 단단한 디딤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제미로 박성현 프로듀서는 “그간 단순한 현물지원 수준에 머물렀던 기업들은 문화 투자를 통한 이미지 제고라는 또다른 광고효과를 얻을 수 있고, 높은 제작비용 앞에서 좌절하던 젊은 인력들은 안정적 제작기반을 바탕으로 소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로 광고영화를 이용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국내의 대표적 영화사인 명필름과 TTL 광고로 유명한 광고회사 화이트가 힘을 합쳐 디엔딩닷컴이라는 새로운 컨셉의 영상제작사를 설립한 데서 볼 수 있듯이, 그간 쉽사리 넘볼 수 없는 독자적 영역을 각각 구축해온 광고와 영화는 어느새 한걸음씩 가까워지고 있다.
“주기가 빠르고 새로운 매체에 대한 적응력이 뛰어나며 젊은층의 트렌드를 잘 읽어내는 광고는 영화산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또한 영화산업의 인프라와 성장잠재력은 광고분야에서도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 디엔딩닷컴 조동원 대표의 이같은 지적은 두 영역의 만남이 가져올 시너지 효과에 대한 기대를 더욱 크게 해준다.
인터뷰| 차희범 헬로우닷TV 부사장
광고 + 영화 = 시너지 극대화

-애드무비라는 이름의 광고영화가 새롭게 등장한 배경은? 기존의 광고와 영화가 각각 갖고 있던 장점을 한데 합쳐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매력적이다.
국내의 인터넷 기반이 상당 수준에 올라 있다는 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실제로 지난해 3월 개봉한 '애 낳는 남자?…'는 왕자웨이 등 유명 감독이 연출을 맡아 전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던 BMW 자동차회사의 인터넷 광고영화 '더 하이어'(The Hire) 프로젝트보다도 먼저 세상에 선을 보인 작품이다.
-애드무비의 매체효과는? 13분짜리 '애 낳는 남자?…'는 80만명이 관람했다.
하지만 단순히 몇명이 영화를 봤느냐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건 애드무비라는 형식의 가능성이다.
예컨대 '애 낳는 남자?…'를 통해 새로운 개념으로 ‘아가소리’ 제품에 대한 테스트 마케팅이 가능했고, 이는 TV 광고로 이어져 광고효과를 더욱 높였다고 할 수 있다.
-인터넷 영화라는 측면에서 애드무비가 부닥친 어려움은 없는가? 지난해 경기침체 탓도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인터넷 매체에 대한 광고주의 마인드 부족이 크다.
TV 광고와 같은 즉각적인 광고효과를 기대하는 건 특히 광고주가 대기업일 경우 더욱 심하다.
그들은 광고효과에 비해 애드무비의 제작비용이 높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또한 지난해 하반기 이후 콘텐츠 유료화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도 새로운 변수라 할 수 있다.
콘텐츠 유료화는 매체비용을 새롭게 발생시킬 수 있지만, 광고주 입장에서는 새로운 투자수익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새로운 온라인 광고 기법으로서 애드무비의 미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인터넷 배너광고의 시장 규모는 대략 연간 1200억원 수준이지만, 클릭률은 현재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애드무비의 주된 공략대상이 1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이고, 이 연령대는 인터넷의 주된 사용자층과 겹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기존 4대 매체가 당장 소멸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분명 매체의 벽을 넘나드는 시대가 올 것이며, 우리는 현재 그 최전선에 서 있다고 자부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