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7:03 (금)
[테크놀로지] 단백질
[테크놀로지] 단백질
  • 오철우/ <한겨레> 기자
  • 승인 2002.01.2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해 2월 인간 게놈(유전체) 지도가 사실상 완성된 이래 ‘게놈 이후 시대’의 총아로 단백질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수십만종의 단백질들이 어떻게 생명을 유지하며, 병을 일으키는 ‘나쁜 단백질’이 왜 생기는지가 바이오 학술행사의 단골주제로 떠올랐다.
단백질 관련 신물질 개발에 나서는 벤처기업도 국내에서만 벌써 수십 군데나 생겨나고 있다.
인간 게놈 지도를 작성한 미국 생명공학기업 셀레라지노믹스 등도 이미 인간 단백질 지도를 그리려는 ‘인간 프로테움 프로젝트’(HUPO)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저명한 과학전문지 <셀> <네이처> 등도 단백질 연구성과를 부쩍 자주 실어 세계 바이오 연구개발의 주된 흐름을 전하고 있다.
바야흐로 ‘단백질 전성시대’가 찾아오는 모양이다.
사실 단백질은 오래 전부터 생물·의학계의 연구대상이었다.
최근 단백질이 다시 주목받는 건 미생물부터 영장류와 사람에 이르기까지 여러 생명체의 DNA 염기서열이 분석되면서, 이젠 유전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단백질의 기능과 상호작용이 유전정보를 바탕으로 빠르게 규명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최근 방한한 세계 유전공학 석학 얼 룰리(미국 반더빌트대학 석좌교수) 박사는 “게놈 분석 이후 과학자가 평생을 바쳤던 연구가 이젠 몇달 만에 끝나는 생명과학의 혁명시대를 맞고 있다”며 “새로운 방식의 유전자·단백질 기능 연구를 통해 질병의 진단·치료에 획기적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단백질은 왜 중요할까. 단백질 연구자들은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귀착지는 단백질’이라고 말하고 있다.
유전자를 ‘생명의 설계도’에 비유한다면 단백질은 그 설계도에 따라 실제로 건축물을 쌓는 ‘블록’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단백질은 유전자의 지시에 따라 20가지 아미노산이 결합해 생성된다.
생체 안에서 단백질은 머리카락 등 생체조직을 만들기도 하고, 생체의 모든 생리 활동을 조절하며, 또 헤모글로빈 단백질처럼 생체물질을 운반하는 구실도 맡고 있다.
단백질은 ‘생명의 기본물질이며 그 자체’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단백질 연구는 만만찮은 영역이다.
사람의 유전자는 3만~6만가지인 데 비해 단백질의 종류는 100만종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
또 초기·말기의 암 환자에서 각각 발견되는 단백질이 다르고, 신선한 고기와 상한 고기의 단백질 구조가 다를 정도로 변화무쌍하다.
LG전자연구원 박제균 바이오일렉트로닉스그룹장은 “이런 이유에서 3차원 구조와 생체 기능이 모두 밝혀진 단백질은 헤모글로빈 등 10여종에 불과할 정도”라고 말했다.
단백질칩은 이런 난해한 단백질의 연구·분석을 도와주는 해결사로 주목받고 있다.
단백질칩은 기능이 규명된 ‘표적단백질’을 유리·금속 등 기판에 미세한 간격으로 미리 빼곡하게 배열해두고, 다른 단백질과 상호반응하는 결과를 분석해 단백질 정보를 얻는 진단·검사용 칩이다.
엄지 손톱만한 작은 크기에 수십~수백종의 단백질을 1ng(나노그램:10억분의 1g)이나 1pg(피코그램:1조분의 1g) 단위로 잘게 나누어 빼곡하게 심는 게 핵심기술이다.
피나 눈물 등 검사물을 칩에 흘리면 검사물 안의 특정단백질과 표적단백질이 상호반응을 일으키는데, 이때 나타나는 반응을 컴퓨터가 분석해 그 자리에서 검사결과를 보여준다.
유진사이언스 바이오텍연구소 김명국 이사는 “이는 항원과 항체 단백질이 열쇠와 자물쇠처럼 짝을 이뤄 반응하는 원리를 이용한 것인데, 마찬가지로 암·치매·관절염 등 여러 질병의 항체단백질을 함께 심어두면 피 한방울로 여러 질병을 한꺼번에 검색할 수 있다”며 “손톱만한 칩 위에 웬만한 실험실 하나가 구현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단백질칩의 이런 활약은 아직까지는 ‘기대’일 뿐이다.
지난 2000년 미국 하버드대학 스튜어트 시레이버 박사 연구팀이 처음으로 수천개의 단백질을 ㎛(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 단위로 미세하게 배열시킨 단백질칩을 처음 개발한 데 이어 세계의 여러 첨단연구실에서 잇따라 단백질칩의 시스템이 개발되고 있지만 아직 상용화까지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시퍼젠·바이오사이트, 스위스·스웨덴의 일부 기업들이 단백질칩 시스템을 특허출원해둔 상태다.
최근 국내에서도 단백질칩 개발이 막 시작되고 있다.
삼성전자·LG전자 등 대기업은 물론이고 프로테오젠·유진사이언스·제네티카·에스디 등 10여 군데 벤처기업들이 이 분야에 뛰어들고 있다.
크게 나눠보면, 단백질칩에 들어갈 검사·진단용 표적단백질을 찾는 분야와 이렇게 찾은 표적단백질을 칩에 미세하게 배열하는 고집적 기술이 핵심으로 주목받고 있다.
단백질칩 제작 기반기술을 특허출원해둔 단백질칩 전문벤처기업 프로테오젠의 이강신 개발팀장은 “정확한 반응을 일으키는 표적단백질을 찾아내는 것과, 단백질의 반응 민감도를 높이기 위해 표적단백질을 칩 위에 한방향으로 촘촘하게 심는 기술이 가장 중요하다”며 “이미 기반기술의 가능성이 확인된 상태에서 앞으로는 반응의 민감도를 더욱 높이고 집적도를 높여 기존 단백질 검사방법을 대체할 만한 싸고 정확한 칩을 만들어내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분리·정제된 단백질은 현재 1㎍(마이크로그램:100만분의 1g)당 수백만원에 거래될 정도로 값비싼 물질이다.
이 때문에 장래에 단백질칩의 가격을 낮추려면 먼저 값비싼 단백질을 ng(나노그램)이나 pg(피코그램) 단위로 잘게 쪼개어 칩에 심을 수 있어야 한다.
“단백질의 집적도를 높일 수 있다면 칩의 값은 낮아지고 반응의 정확도는 높아질 것”이라고 이 팀장은 말한다.
단백질칩에 들어갈 표적단백질을 찾는 데에도 연구경쟁이 불붙고 있다.
100만여종의 인체 단백질들 가운데 쓸 만한 표적단백질을 될수록 많이 찾아내 물질특허를 확보한다면, 향후 단백질칩 시장에서 ‘앉아서 돈을 버는’ 황금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벤처기업 유진사이언스는 식품·환경 분야에 활용할 단백질을 찾고 있다.
식품이나 미생물의 특정 단백질에 잘 반응하는 단백질을 찾아낸다면 식품의 신선도나 오염물질의 독성을 빠르고 정확하게 검사하는 단백질칩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이 회사는 기대하고 있다.
이 회사 김명국 이사는 “현재 진행중인 국책연구개발사업이 끝나는 8~9년 뒤엔 질병 진단과 독성 검사 등에 간편하게 쓸 수 있는 단백질칩이 국산화할 것으로 보인다”며 “단백질의 기초연구에 쓰이는 전문가용 칩은 좀더 이른 시일 안에 상용화할 것”르로 내다봤다.
한편에선 단백질칩 시장이 향후 급신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컴퓨터 업체들도 이 분야에 뛰어들고 있다.
IBM은 이미 단백질 연구를 위해 오는 2004년까지 ‘블루 진’이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단백질 분석 컴퓨터를 개발하는 데 나서고 있다.
1초에 1000조개의 연산을 수행할 블루 진은 지금의 컴퓨터로는 300년이 걸리는 사람의 단백질 분석을 1년 안에 처리할 수 있게 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