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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잡스] 빵집 겸업 “마음부터 단단히”
[투잡스] 빵집 겸업 “마음부터 단단히”
  • 허시명/ 자유기고가
  • 승인 2002.01.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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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강도 세고 오랜 숙련기간 필수… 프랜차이즈 업체·틈새 시장 노려볼 만 고등학교 때 선생님께 들은 얘기다.
노부부가 운영하는 동네 빵집이 있었다.
주로 초등학생이 단골인 그 집은 빵 한개를 시켜도 꼭 쟁반 위에 받쳐서 물까지 갖다줬다.
그 살뜰한 정성과 깔끔함에 엄마들이 믿고 아이들의 한끼를 부탁할 정도였다.
단팥을 넣고 만드는 빵도 꼭 그날 팔 만큼만 만들고 빵이 다 팔리면 언제든지 가게 문을 닫았다.
그리고 노부부가 손을 잡고 다음날 쓸 재료를 사러 시장으로 나란히 가곤 했다.
선생님은 당신도 늙어서는 그런 빵집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우리들도 모두 같은 결심을 했다.
빵집 앞에는 어쩐지 ‘행복한’이라는 수식어가 감춰져 있는 듯하다.
낭만적이고 한가롭게, 넉넉하게 구운 행복을 이웃들에게 봉지 가득 담아주는 ‘행복 가게’로 연상된다.
그래서 빵가게를 자신의 노년 직업으로 점찍어두고 시간이 나면 제빵학원에 다닐 생각을 하거나, 당장이라도 제2의 직업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업종의 전망을 떠나, 빵가게에 대한 대중의 열망이 워낙 뿌리 깊은지라, 투잡스로서 빵가게 문제는 꼭 짚고넘어가야겠다.
오로지 맛으로 판가름 난다 우선 던지고 싶은 화두는 이렇다.
“빵가게는 ‘오리’다.
” 빵가게가 성공하려면 첫째 상권, 둘째 제품력, 셋째 경영능력을 꼽는다.
그런데 제품력, 즉 빵맛이 특출나면 나머지 요소가 약해도 성공할 수 있다.
업계의 현황을 살피러 대한제과협회를 찾아갔을 때다.
협회에서 발행하는 <월간 베이커리> 편집부장인 박종선씨는 “직장인들에게 절대 환상을 심어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참치횟집이나 안동찜닭처럼 단기간에 인기를 끈 업종은 창업 시기의 선택이나 창업자의 태도에 따라 성패의 변수가 많지만, 제빵업계는 역사가 오래된 분야라 오로지 실력으로 판가름난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니까 퇴근하고 제빵학원에 다니고, 제빵기능사 자격증을 따면 되지 않을까? 그러나 이것은 너무 용맹스런 희망이라고 한다.
현재 전국에 제과제빵학원은 100여개가 있다.
제과 3개월, 제빵 3개월해서 주로 실습 위주로 이뤄지는 6개월 수업을 마치면 기능사 자격증을 딸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 된다.
수강료는 재료비 포함해서 월 23만원으로 그리 비싸지 않다.
취업도 쉽다.
초봉 60만원짜리 일자리라면 언제든지 가능하다.
일산제과제빵기술학원 여창연 주임은 “하루에도 사람 좀 보내달라고 빵집으로부터 전화가 20통쯤 온다”고 했다.
이런 높은 취업률 때문에 정부에서 실업자들에게 공적자금을 투자해 제과제빵기술학원을 무료로 다니게 했다.
하지만 그것은 대표적인 탁상 행정이라는 혹평을 받고 있다.
6개월 과정의 제빵학원을 수료한 사람이 빵집에 취직하면 하루 만에 퉁겨져 나오고 만다.
그러고 나서 열흘쯤 지나 두번째 취업하면 일주일쯤 버티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 취업하고 나서야 그 생활에 적응한다.
이유가 뭘까? 노동강도가 세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이제 빵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30대 초반의 최모씨는 “나이 든 직장인들에게 빵가게를 권하는 것은 죄악”이라고까지 할까. 보통 빵가게에는 100개 이상의 상품이 진열되어 있다.
즉석빵 종류만도 50개가 넘는다.
자연히 배워야 할 빵의 종류가 많다.
빵 한개에 들어가는 재료도 다양하다.
동네나 시기별로 그 취향에 따라 신제품을 끊임없이 개발해야 한다.
다품종 소량 생산이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간다.
더욱이 빵은 발효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식빵 한종류 구워내는 데도 3시간이 걸린다.
안쪽 주방에서는 쉴 새가 없다.
그 쉴새 없는 종업원을 거느리고, 아침 일찍부터 주방 일을 시작해 저녁 늦게까지, 일년 열두달 하루도 쉬지 않고 가게 문을 열어야 하는 곳이 빵집이다.
겉에서 보기는 한가로워 보여도, 물밑에서는 숨가쁘게 두발을 움직이는 ‘오리’ 신세인 셈이다.
빵 만드는 데는 천재가 없다.
학원 6개월을 이수하고 초봉 60만원을 받으며, 아침 6시부터 저녁 12시까지 하루 18시간의 노동을 5년에서 7년 정도 견뎌낸 기능공이 비로소 주방을 책임질 수 있는 공장장이 된다.
그러기에 빵기술을 익혀서 빵집을 직영하고 싶다면, 늦어도 25살 전후에 빵 업계에 입문해야 한다.
직장을 다니다가, 30살이 넘어서 빵기술을 배우기 시작하면, 초봉 60만원의 강도 높은 노동을 견뎌낼 수 없다.
일이 고되고 힘든지라 여자 기능공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럼 유능한 기능공을 고용해서 빵가게를 경영하면 될 것이 아닌가? 하지만 어쩌다 좋은 기능공들을 데려와도 다루기가 까다로워 제자리를 잡기 전에 망하기 십상이다.
물론 큰 자본이 있고 사람을 잘 다뤄, 유능한 기능공을 부릴 수 있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노년의 일터로 삼은 빵가게에 그만큼의 자본을 대는 게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뒤늦은 출발엔 프랜차이즈가 최선 그렇다면 직장을 다니다가 빵가게를 하는 것은 무모하고, 노년을 대비해 제빵학원을 다닌다는 것은 시간 낭비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빵가게를 하겠다는 사람은 최소한 6개월 과정의 기술을 익혀두는 게 일단 좋다.
그러고 나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우선 쉽게 접근 가능한 쪽이 프랜차이즈 분야다.
현재 제빵 업계의 프랜차이즈 회사는 파리크라상(직영점은 파리크라상, 가맹점은 파리바게트), 크라운베이커리, 신라명과, 고려당, 뚜레주르가 있다.
이들 회사에 가맹한 업체가 3천개 가량 된다.
프랜차이즈 가맹점은 자영제과점(전국 1만3천여개)에 견줘 제품과 인력 관리가 수월하고,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 단기간에 시장 적응을 할 수 있으며, 인건비 비중 또한 낮출 수 있다.
하지만 프랜차이즈 빵가게라고 땅 짚고 헤엄치기는 아니다.
상대적으로 마진율이 낮고, 지역 특성에 맞는 개성 있는 상품을 개발하기가 어려운 단점이 있다.
게다가 강력한 기술력으로 무장한 자영제과점이 들어서면 백전백패를 각오해야 한다.
빵은 맛으로 승부하는데, 가리봉동에서 먹어본 빵을 압구정동에서도 똑같이 먹을 수 있다면, “꼭 그 집 아니면 안 되는” 여타의 외식업과 미인대회에 나간 쌍둥이 자매인 꼴이다.
이것이 바로 프랜차이즈 빵가게의 태생적 한계다.
하지만 잘되는 빵가게는 돈을 무섭게 긁어 모은다.
어떤 빵가게는 하루 매출이 500만원이어서 그 집 사장은 한달에 불입액이 5천만원인 적금을 들었다는 소문도 들린다.
군침도는 얘긴데, 이런 소문에 솔깃해 빵가게를 열어보겠다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각오가 필요하다.
제과제빵업계에서 도는 이 말을 결론으로 대신한다.
“빵가게를 잘 경영하는 사람은 삼성그룹도 경영할 줄 안다.

꼭 하겠다면, 틈새를 노려라

요즘은 프랜차이즈와 자영 빵가게의 중간 형태를 띤 ‘체인빵집’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빵굽는 작은 마을, 케하우스 엠마, 빠나미, 케하우스 목마, 주재근베이커리 따위가 그런 빵집이다.
상호와 기술력은 공유하되, 본사에서 완제품 빵을 공급하지 않고 매장에서 제각기 빵을 구워 판다.
프랜차이즈의 브랜드 인지도와 자영제과점의 순발력을 결합한 형태다.
하지만 이 체인빵집들은 좋은 상권에 넓은 매장을 차지하는 전략을 택하기 때문에 소자본 창업자는 엄두를 낼 수 없다.
고로 소자본 창업을 하려면 틈새를 노려야 한다.
아파트단지의 상가에 유아용품을 납품하는 김모씨(34살)는 현재 제빵기술을 배우고 있는데, 그의 구상은 이렇다.
현재 신축중인 아파트단지의 상가에 빵가게를 낸다.
1200세대가 되면 웬만한 업종은 하나씩이면 충분하고, 빵가게도 하나면 충분하다.
다만 치킨집은 두개 들어갈 수 있다.
이때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개 선점하면 다른 이들이 피해간다.
만약 멋모르고 들어오면, 두 빵집은 하나가 될 때까지 죽기 살기로 싸워야 한다.
최모씨는 서울 신촌가의 대학교 구내에 빵집을 열 예정이다.
대학생들에게 수익금의 일부를 장학금으로 내는 조건인데, 빵집 이름도 학생들 상대로 장학금 30만원을 걸고 인터넷 공모를 하고 있다.
빵집의 큰 매출은 케이크가 차지하는데, 아무래도 젊은 대학생들은 기념일 챙겨주는 문화에 익숙하니까 매출로 연결이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다.
서울 강남의 대한제과제빵전문학원을 다니고 있는 윤은중(48살, 외국계 건축설계회사에 22년째 근무)씨는 외식업을 하기 위해서 기능을 배우고 있다.
양식 디저트로 손수 만든 케이크나 빵을 내놓기 위해서다.
그는 “봉급 타서 즐기다가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 당장 기술을 배워야 합니다.
늙어서까지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내 사업입니다.
제과제빵기술은 한번 습득하면 평생 써먹을 수 있으니 시간을 내서 배워두면 훗날에도 활용 가치가 있습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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