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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PC와 콘텐츠 사업 '찰떡 궁합'
[경영] PC와 콘텐츠 사업 '찰떡 궁합'
  • 양우성/ 경영전략 컨설턴트
  • 승인 2002.01.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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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10일 코스닥시장에 상장된 게임 유통 회사 한빛소프트는 거래 첫날에 상한가를 기록하면서 시가총액 3356억원을 기록하고 11일에도 4만5900원으로 상한가에 올랐다.
단 이틀 만에 코스닥시장 벤처기업 부문의 시가총액 4위를 차지한 것이다.
IMF 구제금융 시절에 LG그룹이 구조조정을 하면서 문을 닫은 LG소프트 출신의 김영만(43) 사장과 그의 동료들이 생존의 위협 속에서 1999년 1월에 만든 회사가 2년여 만에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이미 설립 첫해에 매출 249억원, 당기순이익 26억7천만원의 성과를 거뒀고, 지난해 추정 매출액이 800억원, 추정 당기순이익은 135억원에 달할 정도로 단기간 만에 급성장했다.
지금쯤 LG그룹의 고위 경영진은 ‘아이고 이런! 저게 다 우리돈이었을 텐데! 이를 어쩐다’ 하면서 무척이나 배아파할지도 모른다.
98년 ‘스타크래프트’ 국내 판권은 LG소프트가 갖고 있다가, 한빛소프트에게 헐값에 넘겼다.
한빛소프트는 이를 200만장 이상 판매하면서 게임 유통 업계에 돌풍을 일으켰고, 연이어 ‘디아블로2’도 260만장 이상 팔아 국내 게임 유통 업계에서 확고한 지위를 차지한 것이다.
LG그룹이 LG소프트를 한 2년만, 아니 딱 1년만이라도 더 두고봤다면 지금쯤 결과는 어떠할까? 아마 오늘날의 한빛소프트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LG소프트라는 상호가 주가상황판의 한빛소프트 자리를 벌겋게 물들였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한빛소프트의 성공에 행운이 작용했다고 볼지도 모른다.
99년부터 인터넷 PC방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자연스럽게 ‘스타크래프트’의 매출이 급격하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럼 LG그룹은 운이 없어서 맛있는 열매를 못 챙겨먹은 것일까? 대답은 분명하게 ‘노’다.
그렇다면 한빛소프트가 게임 개발능력이 뛰어나서 성공한 것인가? 역시 대답은 ‘노’다.
한빛소프트는 우수한 게임 콘텐츠를 기획하고 개발, 제작하는 면에서 강점을 갖고 성공한 것이 아니다.
‘리니지’의 엔씨소프트나 ‘바람의 나라’의 넥슨은 콘텐츠의 기획, 개발 측면에서 강점을 가졌지만 한빛소프트는 경쟁 우위의 출처가 다른 곳에 있다.
한빛소프트는 남의 콘텐츠를 국내에서 효과적으로 유통하고 마케팅했기 때문에 성공했다.
흥행 가능성이 높은 우수한 콘텐츠를 선별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을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게임 유통 업자들보다 선점해 한국 내 판권을 확보한 영업력과 기반이 한빛소프트의 강점이다.
물론 이것은 LG소프트가 김영만 사장과 한빛소프트에게 전수시켜준 것이다.
그러니 LG소프트가 게임 개발능력이 없어서 한빛소프트와 같은 성공 기회를 거두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판단은 잘못된 것이다.
한빛소프트가 인터넷 PC방의 열풍이라는 행운 덕분에 성공했다면 LG그룹은 행운의 여신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행운의 여신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행운의 여신이 들어올 문을 없애버린 것이다.
LG그룹은 자신들이 게임산업에 대한 이해와 장기적 전략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사업기회를 버린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일 뿐이다.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하나로통신을 애지중지하고, 유선통신 서비스에서도 비교우위가 약한 데이콤을 굳이 그룹 계열사로 편입시킨 사실을 상기해보자. LG텔레콤이라는 무선전화, 무선인터넷 서비스를 계속 유지하고, 심지어 3세대 IMT-2000 사업에도 참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LG그룹이 정보통신사업을 장기적 전략사업으로 설정하고 그룹의 미래운명을 걸 정도로 강한 집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LG그룹은 그러나 게임사업을 과소평가한 나머지 다른 계열사들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에는 무관심했다.
장기전략 없이 쉽게 LG소프트를 폐기한 것이다.
그렇다면 게임사업이 LG그룹의 다른 사업들과 무슨 시너지 효과가 있단 말인가? LG그룹이 LG소프트를 문닫은 이유는 단말기 사업과 콘텐츠 사업 사이의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에서 비롯한다.
우선 LG가 제조, 판매하는 PC와 게임 콘텐츠를 생각해보자. LG는 IBM의 브랜드를 빌려와서 PC와 노트북을 제조해 유통하고 있다.
요즘 PC는 엔터테인먼트 도구다.
최소한 가정에서는 엔터테인먼트 장치로서 더 사랑을 받는다.
특히 5살부터 10~20대에게는 게임을 빼놓고는 PC를 상상할 수 없다.
PC를 구입하는 동기가 바로 게임이고, PC 소매상들도 PC를 팔 때에는 게임을 번들로 깔아주거나 패키지처럼 판매한다.
마치 PC와 게임의 관계가 햄버거와 콜라의 관계처럼 보완재의 관계가 되어버렸다.
LG는 전통적인 가전사업 분야에서 국내 강자 중 하나다.
LG는 최근 벽결이TV(PDP), DVD플레이어, 디지털 TV 등 디지털 미디어 분야에도 기술투자와 제품개발, 국내외 마케팅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는 LG의 DVD플레이어 등이 유럽에서 일본의 소니 제품과 동등하게 소비자들에게 사랑받고 오히려 더 비싼 가격에 팔린다는 소식도 언론을 통해 접할 수 있다.
그러나 단말기 시장에서의 경쟁우위는 오랫동안 유지하기 어렵다.
궁극적으로는 가격경쟁으로 승부를 보아야 하는 이 시장의 특성 때문이다.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이미 이마트 같은 대형 할인 체인들이 자기들의 브랜드(private brand)를 TV 수상기에 붙여 아주 저렴하게 판매하는 실정이다.
디지털 TV나 PDP의 가격은 6개월도 유지하지 못하고 가격이 하락하는 추세에 있다.
왜 미국의 가전업체들이 사라지고 있으며 제너럴일렉트릭이 가전사업을 포기하고 기껏해야 브랜드나 빌려주는 신세가 되었는가? 왜 일본의 가전 대기업들이 한국과 대만, 중국의 가전업체들과의 경쟁에서 허덕이는가? 바로 기술에서의 경쟁우위가 빠른 시간에 사라지고 가격경쟁의 소용돌이에 빠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단말기 시장이 쉽게 가격경쟁의 단계에 이르는 것은 기술의 확산과 평준화 속도가 아주 빠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진입장벽이 그리 높지 않다는 얘기도 된다.
기술의 평준화가 빠르게 잔행되면 결국 브랜드도 높은 가격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누가 더 비용을 적게 들여서 제품을 질 좋게 만들고 값싸게 유통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경쟁에 이기는 관건이 되어버린다.
단말기 제조업에서 선두주자로 경쟁우위를 쟁취하고 시장을 넓혀가는 것도 당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익을 가져다준다.
그런데 단말기 산업이 성장하려면 콘텐츠가 필요하다.
콘텐츠 없는 단말기들이란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DVD플레이어 시장의 성장은 전적으로 얼마나 재미있는 DVD 타이틀이 다양하고 풍부하게 공급되는가에 달려 있고, 디지털 TV는 얼마나 많이 재미있는 방송 프로그램들이 디지털로, 그것도 고화질(HD) 방식으로 제작, 방영되는가에 따라 수요가 형성된다.
그래서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PS)1, 2라는 자신들만이 독점적으로 제조해 판매할 수 있는 하드웨어를 개발했고, 이것을 플랫폼으로 삼아서 다양한 게임 콘텐츠를 제작해 판매하면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양쪽에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최근에 들어서는 경쟁이 심해지는 가전제품 분야의 적자를 게임사업 분야의 수익으로 보전하는 단계에까지 들어섰다.
지난해 연말 마이크로소프트가 엑스박스를 출시하면서 시작한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 시장에서의 경쟁은 이제 게임 플랫폼이 기본적으로 DVD플레이어 기능을 포함하게끔 만들었다.
이는 북미와 유럽에서 299달러에 판매되고 있다.
소니도 마이크로소프트의 가격에 맞추었다.
DVD플레이어와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의 가격이 뚜렷한 차이가 없어지고 있다.
이제 LG전자나 삼성전자 같은 순수한 DVD플레이어 제조업체들은 기로에 서게 되었다.
하나의 전략은 소니나 마이크로소프트와 마찬가지로 게임 기능을 덧붙인 다기능 하드웨어로 DVD플레이어를 만들어 경쟁하는 것이다.
다른 전략은 중국에서 값싸게 대량으로 100달러에서 200달러 사이에 제조되는 순수한 DVD플레이어와 가격경쟁을 벌이는 것이다.
어찌할 것인가? LG에게는 선택의 폭이 좁은 것을. LG는 이미 LG소프트를 문닫으면서 게임 콘텐츠 사업에서 일찌감치 철수해, 비디오 게임기와 DVD플레이어 겸용의 하드웨어 시장에는 진입할 처지가 못된다.
왜냐하면 소니의 PS2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는 콘텐츠의 다양성과 질(재미)로 경쟁하고 있어 콘텐츠 없이는 경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엑스박스를 한대씩 팔 때마다 100달러씩 손해를 감수하겠다는 각오다.
이 손해를 게임 콘텐츠의 판매로 만회하겠다는 전략이다.
재미있는 점은 게임기 시장에 대한 공격적인 엑스박스의 전략이 엉뚱하게 단순 DVD플레이어의 가격인하 압력을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남은 길은 선택의 여지없이 단순 DVD플레이어 시장에서 무서운 기세로 다가서는 가격경쟁의 폭풍에 휘말리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LG그룹이 게임사업에서 철수한 아픔은 한빛소프트건에 그치지 않고 DVD플레이어 시장에까지 이어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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