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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공의 적
[영화] 공공의 적
  • 이성욱/ 한겨레21 기자
  • 승인 2002.0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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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고 쫓기는 두 남자의 대결 '투캅스' 이후 ㈜시네마서비스를 이끌며 제작·투자·배급에서 ‘한국영화계 파워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강우석 감독이 모처럼 연출한 '공공의 적'은 부패한 경찰 이야기인 것처럼 시작한다.
강력반 형사 철중(설경구)은 마약거래 현장을 덮쳤지만 범인 검거보다는 거래물품을 챙기는 게 더 큰 관심사다.
직접 마약 판매에 나서기도 하고, 집 마당의 간장독에는 커다란 돈뭉치를 담가두었다.
또 새로온 철중의 형사반장은 감찰반 직원에게 “강력반 형사들은 좀 받아먹어도 돼”라며 되레 호통까지 친다.
‘아마 경찰이란 관료조직의 부패상을 공공의 적으로 간주했나 보다’ 싶은데, 그게 아니다.
펀드매니저 규환(이성재)은 말끔한 신사에다 어여쁜 아내와 딸에게 아주 자애로운 가장이다.
그런데 '아메리칸 뷰티'에 나왔던 장면처럼 샤워하면서 자위하는 그의 첫등장은 몹시 사악한 느낌을 준다.
뜬금없이 자위를 해서가 아니라 자기 물건을 향해 “XX년아, 좀더 잘해봐”라고 내뱉는 말투와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헬스클럽에서 몸을 잘 단련시킨 규환은 그 능력으로 자기를 불쾌하게 만드는 이들을 모조리 황천으로 보내버린다.
심지어 부모까지. 이제 진짜 험악한 인간을 만난 철중은 변하기 시작한다.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할 정도로 근성을 발휘해 규환과 맞서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그에게 숨어 있던 ‘정의감’이 폭포처럼 솟아오른다! 어쩐지 뻔해 보이는 구도같지만 '공공의 적'은 그리 만만한 작품이 아니다.
굉장히 치밀하게 계산된 장면들이 이어지면서 형사물 특유의 남성적 긴장감을 처음부터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게다가 '투캅스'에서 과잉처럼 느껴졌던 익살까지 사이사이 끼어들어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데, 그렇다고 누아르의 본바탕을 흩어놓지도 않는다.
마치 '친구'가 보여준 누아르의 마력을 잠시 빌려와 '투캅스'를 업그레이드시킨 것 같다.
특히 설경구씨의 연기는 '박하사탕'에서 보여준 ‘경지’를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시키며 관객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해 보인다.
그러나 완성도가 높다고 모든 감독을 작가로 대우해줄 수는 없다.
'공공의 적'처럼 상업영화로서 부족함이 없어 보여도 주제, 혹은 형식, 혹은 캐릭터에서 새로움이 없는 경우가 그렇다.
공공의 적은 너무 검증된 적이고, 형식은 익숙하며, 캐릭터는 대중의 맘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언정 과장돼 있다.
캐릭터만 놓고 봤을 때 묘한 아이러니를 느끼는 순간들이 있기는 하다.
철중의 캐릭터가 매력적이나 허구적으로 느껴지는 데 반해, 규환의 캐릭터는 만화적이지만 뜻밖에도 사실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규환이 이따금 보여주는 이중성 때문이다.
누구나 맘 속에 가지고 있을 법하나 겉으로는 짐짓 감춰두고 있는 모습을 툭툭 보여줄 때, 뭔가 들킨 것 같은 서늘함이 순간적으로 획획 지나간다.
감독 강우석/ 출연 설경구 이성재 강신일 기주봉 등 / 개봉 1월25일 / 상영시간 2시간15분/ 등급 18살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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