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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평행선 달리는 ‘공익’과 ‘인권’
[영국] 평행선 달리는 ‘공익’과 ‘인권’
  • 김정원 통신원
  • 승인 2000.10.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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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 침해 법안과 인권보호법 동시 발효…“법원의 합당한 판결을 믿는 수밖에” 인터넷 시대에 들어선 이후 제기된 여러가지 논쟁 가운데 좀처럼 결론을 내리기 힘든 것들이 있다.
그 뜨거운 감자 중 하나가, 공익이라는 명분 아래 법률기관이 요구하는 정보 접근 권리와 사생활 보호를 위해 그것을 거부할 개인의 권리를 절충시키는 일이다.
어느 나라도 이 물음에 속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최근 영국에서 이 두개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안이 제각각 시행되기 시작했다.
영국 정부는 지난 10월2일 ‘조사 권한 규제에 대한 법령’(RIP, The Regulation of Investigatory Powers Act)의 발효를 선포했다.
이 법령은 영국법을 집행하는 경찰에게 영국에 거주하는 개인의 디지털 정보를 정보소유자의 동의없이 강제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예컨대 경찰은 개인의 메일을 사전통보없이 가로채 내용을 모니터할 수 있으며, 만일 개인이 자신의 디지털 정보를 암호화해 갖고 있다면 조사를 위해 그에게 암호키를 요구할 수 있다.
물론 개인은 이러한 경찰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다.
게다가 고용주에게는 직원의 이메일과 접속 내역을 감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이 법령은 이처럼 사생활을 침해하는 요소가 다분해 제정 당시부터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무책임한 정부와 의회의 법 제정 ‘비난’ 그런데 영국 정부는 이틀 뒤인 10월4일 이와는 정반대의 내용을 담은 법안을 공표했다.
개인의 기본적인 인권 보장을 위해 제정한 ‘개인 인권법’(HRA, Human Rights Act)을 발효시킨 것이다.
이 법령은 개인의 기본적인 인권을 다양하고 포괄적인 각도에서 정의하고 있는데, 개인의 사생활 보호에 관한 권리 역시 그 중 하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경찰과 고용주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부여된 권한이 어느 범위 안에서 쓰일 수 있는지 혼란스러워하며, 정부와 법률단체에 유권해석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영국 정부와 법률단체들은 다양한 각도의 권고사례로 대답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RIP 법에 따라 고용주가 직원의 이메일을 감시할 수 있지만, 직원의 사전동의가 없었다면 HRA 법 위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상반되는 법령이 시행됨으로써 많은 부작용이 예상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우려를 자아내는 것이 봇물처럼 터질 각종 소송이다.
영국 정부가 두 법령의 구체적인 해석을 재판부에게 전적으로 맡긴 상황에서 영국의 각 사업장들은 직원의 인터넷 악용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막으려다 소송에 말려 더 큰 경제적 손실을 보게 될 가능성도 있다.
영국 대법원은 두 법령의 해석은 개인의 인권과 영국 사회의 문화, 도덕, 그리고 철학적인 환경이 균형을 맞추는 범위에서 적절하고도 합당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의견을 내놓았다.
구체적인 조항을 법으로 정의하는 것은 어렵고 위험한 일이며, 각기 상황에 따른 영국 법원의 적절하고도 합당한 판결을 믿어달라는 것이다.
이런 대법원의 태도를 많은 법학자들과 인권단체들은 수긍하는 분위기이다.
그들은 두 법령의 제정은 사생활 보호와 공공을 위한 사생활 규제라는 어울리기 어려운 두 주제를 법원에 맡겨 각 개인이 사생활이 침해당했다고 판단될 때는 그것을 법 앞에서 공개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한다.
또 단기적으로는 해석의 혼란이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세부적 해석이 결정되는 각 판례에 따라 충돌되는 두 주제의 합치점을 찾게 될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과연 영국 정부와 국회, 법원이 기대하듯이 조화하기 힘든 두 이슈가 어떤 식으로 법정에서 토론되며 합일점을 찾아나갈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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