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7:03 (금)
[독일] 슈뢰더, 경제로 겨룹시다
[독일] 슈뢰더, 경제로 겨룹시다
  • 베를린=손영욱 통신원
  • 승인 2002.01.3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1월11일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의 주지사 애드문트 스토이버가 드레스덴 전당대회에서 우파정당인 기민련/기사련의 총리후보로 추대되면서, 오는 9월에 실시될 총선거를 향한 정계의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독일 경제는 여전히 경기침체에 시달리고 있고 높은 실업률도 여전하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이번 총선의 최대 이슈는 경제문제가 될 전망이다.
스토이버 주지사는 후보로 지명되자마자 현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를 이번 총리선거에서 따질 것이라며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를 향해 포문을 열었다.
사실 스토이버 주지사의 총리후보 지명 이전까지만 해도 슈뢰더 총리의 재선은 손쉬워 보였다.
하지만 경제문제가 걸림돌로 등장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상승세로 돌아선 실업률은 이달 들어 더욱 악화됐고, 2월에는 실업자가 98년 정권교체 당시 수준인 430만명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경제성장률도 제자리걸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슈뢰더 총리는 4년 전 취임연설에서 “나는 실업률을 현저히 낮출 것이며, 다음 총선 때 그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이 말이 지금 그의 발목을 단단히 잡고 있다.
독일 경제가 수렁에 빠진 것은 슈뢰더 정부의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경제 체질 자체가 구조적으로 허약한 데서도 연유한다고 많은 경제학자들은 진단한다.
지난 몇년간 유럽연합내 최하위권을 맴돈 낮은 경제성장률, 미국의 3%는 고사하고 유럽연합(EU)의 평균치인 2.5%에도 못미치는 2% 미만의 잠재성장률 등을 놓고 본다면, 지난 선거에서 누가 당선됐더라도 크게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그렇다고 해서 슈뢰더 정부가 집권 3년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집권 초기 슈뢰더는 독일 최대 건설회사 홀츠만이 부도위기에 몰리자,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사태수습에 나서 수만명의 일자리를 지켜준 적이 있다.
이로 인해 국민들 사이에서 그의 인기가 치솟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그뒤에도 구조개혁의 큰 틀을 제시하기보다 그때그때 임시방편의 대처방안만 내놓아, 결국 경제를 근본적으로 수술하지는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슈뢰더에 도전장을 낸 스토이버 바이에른 주지사는 각종 정책적 입장에서 지나치게 보수적인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슈뢰더 총리가 “건전한 보수주의를 극단적으로 몰고간다”고 비난했을 정도다.
하지만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에서는 두사람 사이에 차이가 거의 없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스토이버의 지지도가 다소 앞서가고 있다.
그 이유의 한자락은 그가 주지사로 있는 바이에른주의 경제지표에서 읽어볼 수 있다.
스토이버는 96년 주지사에 취임한 뒤 공기업의 민영화를 대대적으로 단행해 재정을 안정시킨 다음 45억유로 규모의 재정자금을 창업과 연구, 정보기술(IT) 분야에 쏟아부었다.
전통적인 농업지대였던 바이에른주가 일약 하이테크의 메카로 등장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다.
최근 바이에른주의 연간 경제성장률은 4.3%로, 다른 주들의 평균치인 3%보다 높다.
바이에른주는 투자유치 실적도 우수하고, 주 재정이 안정적인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같은 바이에른주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스토이버는 ‘40-40-40 정책’을 들고 나왔다.
‘스토이버식 경제개혁 정책’으로 일컫는 이 정책 프로그램은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정부지출 비중을 현재의 50% 수준에서 40% 수준으로 낮추고, 기업의 사회보장비 부담과 최고세율을 각각 40%로 묶는다는 것이다.
만일 이 정책에 대해 독일 여론이 급속히 호의를 보인다면, 슈뢰더 총리가 이번 선거에서 크게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상황이 다급해지자 집권 사민당은 기업에서 월 325~870유로 수준의 저소득 직종에 노동자를 신규채용할 경우 사회보장비의 기업분담금을 국가가 보조해준다는, 이른바 ‘콤비임금’(Kombilohn)이라는 당근을 제시했다.
실업률을 낮추기 위한 또 한번의 임기응변인 셈이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90년 통일 이후 정체를 거듭하고 있는 낮은 가처분소득으로 인해 잔뜩 움츠러든 내수 소비와 성장을 어떻게 회복하느냐가 독일 경제의 최대 과제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독일 언론은 경제에서 정치논리를 과감히 배제해야 한다는 평소 슈뢰더 총리의 말에 빗대어 ‘총리의 조용한 손’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바 있다.
그 손이 총선을 앞두고 조금씩 떨리는 것으로 보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