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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비지니스] 사이버 의과대학 꿈을 엮는다.
[e비지니스] 사이버 의과대학 꿈을 엮는다.
  • 이용인
  • 승인 2000.05.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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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30 “찌르릉 찌르릉.” 신혼 때부터 6년째 귀에 익은 자명종 소리. 하지만 원망스러운 건 오늘도 매한가지다.
꼼지락 꼼지락. 이불 속에서 나온 그의 투박한 손이 자명종 머리를 콕 누른다.
“비가 많이 오는구먼. 서두르게나.” 장모님의 따듯한 재촉이 이어진다.
지난해 8월 벤처를 하겠다고 나선 뒤로 새벽 3시 전에 잠자리에 든 기억이 없다.
하기야 며칠 전까지 회사에서 새우잠을 잤던 것에 비하면 한결 사정이 나아진 편이다.
“회사에서 주무시니까 눈치가 보인다”는 직원들의 성화 탓이긴 하지만 말이다.
네살배기 딸 지수는 유치원 갈 채비를 끝내고 식탁에 앉아 엄마와 아빠를 기다린다.
박 사장과 부인이 지수와 만나는 시간은 이때뿐이다.
그 뒤로 지수와 친구가 돼주는 가족은 외할머니뿐이다.
가슴 한구석이 찡하게 아려온다.
■09:22 서두른다고 했지만 지각이다.
전날 밤샘 근무를 한 직원 2명이 퀭한 눈으로 사장 부부에게 인사를 한다.
나머지 직원들은 벌써 외근을 나가고 자리를 비웠다.
오전 9시 직원회의를 못하게 된 게 못내 아쉽다.
며칠 동안 신경을 괴롭히던 아래층 공사가 오늘 끝난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려 했는데. 아내와 함께 마시는 원두커피 향기가 기분좋게 후각을 간지럽힌다.
8월 출산을 앞둔 아내의 몸이 하루가 다르게 무거워 보인다.
애시당초 아내까지 회사일에 끌어들일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엔지니어 1명이 갑자기 회사를 그만둬버렸다.
사람 구하기가 만만찮은 요즘에 프로그래머 출신인 아내는 손쉬운 대안이었다.
좀처럼 힘든 속내를 내비치는 법이 없는 아내, 그 빚을 언제 갚을 수 있을까. ■09:31 마우스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의료교육 사이트인만큼 수강인원은 회사의 성장 여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다.
하지만 수강신청자를 확인하는 박 사장의 얼굴이 밝지만은 않다.
개강을 한 지 시간이 꽤 흐른 탓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래도 투자의향을 밝혀온 이메일에서 희망의 씨앗을 발견한다.
여기저기서 쌈짓돈을 모아 자본금 5천만원으로 시작한 사업이었다.
그 흔한 벤처캐피털이나 창투사에 손을 벌리지 않고 고생을 자처했다.
벤처하면 붙어다니는 ‘거품’이니 ‘뻥튀기’니 하는 꼬리표가 싫었다.
내로라하는 로터스 노츠의 실력자. 기술력으로 승부를 걸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작용했다.
“수익을 낸 뒤 그 돈으로 첫 월급을 받는다.
” 그의 이러한 ‘결벽증’ 탓에 그와 직원들은 4월달에야 100만원 안팎의 첫 월급을 받았다.
하지만 아무도 그걸 탓하지 않았다.
■10:35 제로&경영컨설팅. 창업 때부터 재무와 회계를 무료로 도와주는 회사다.
호주머니에서 영수증 한뭉치와 입출금 내역이 담긴 통장들을 꺼내 놓으며 경리직원을 구해달라고 부탁해본다.
엔지니어 출신이어서인지 접착제 옷걸이 3천원, 문구용품 2천원 따위를 일일히 기록하는 게 여간 신경쓰이는 일이 아니다.
영수증을 아무렇게 주머니에 구겨넣고 다니다 잃어버린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개발과 마케팅에 매달리는 것도 벅찬데 은행과 세무서를 쫓아다니다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제 일의 효율성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
■13:38 연신 시계를 훔쳐보며 쫓기듯 점심을 먹는다.
한강성심병원 유형준 교수와의 약속이 촉박한 탓이다 “담배는 가면서 피워야겠네.” 창업을 시작하면서 만난 의사만도 100여명. 의사들은 시간약속을 어기는 것을 끔찍히 싫어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터득했다.
대개가 외래환자 진료시간에 잠시 짬을 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상의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다.
평소 자주 얼굴을 맞대며 신뢰를 다져놓고, 운좋게 사이트 개편에 대비한 아이디어를 얻으면 만족이다.
현재의 강의는 의사 1명이 진행한다.
외국출장이 잦은 의사들의 특성상 강의에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유 교수의 지적이 있었다.
이것만 해도 커다란 소득이다.
■15:02 서초동 오흥근 신경과의원. 아로마향 처방전시스템 개발을 의뢰한 곳이다.
이제 막 개발을 끝내고 프로그램 가격만 결정하는 일만 남았다.
해외판매는 개당 700달러, 국내판매는 잠정적으로 80만원을 제시할 생각이다.
막상 가격을 제시하자 오 원장의 반응이 의외로 부정적이다.
“너무 비싸지 않을까. 50만원대면 많이 살텐데.” 개발비용, 라이센스 따위를 따져보면 개발자 입장에서 50만원대는 무리한 가격이다.
몇번의 설득과 협상이 오간 끝에 제시한 가격으로 합의를 봤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회사에서 개발한 프로그램이 해외로 판매된다는 것이 기쁘다.
그것 역시 희망의 단초이다.
■20:29 오늘 하루 모두 4건의 외부 약속. 평소보다 많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교통체증이 워낙 심해 8시 저녁회의에도 제시간을 맞추지 못했다.
“오늘은 1시간 안으로 끝내자.” 사무실 `귀염둥이' 문용현 부장이 딱딱한 회의 분위기를 누그러뜨린다.
하지만 정말로 1시간 안에 회의가 끝나리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저녁 8시에 시작한 회의는 새벽 1시를 훌쩍 넘기기 일쑤다.
게다가 오늘은 메디캠퍼스 사이트의 개선방향이 안건으로 올라온 날이다.
화이트보드, 팩스, 에어콘 구입 따위의 잡다한 안건들이 처리되자, 회사의 전망을 놓고 본격적인 토론이 시작된다.
현직 개원의사이기도 한 임형묵 이사가 웹진 형태로 나가보자고 제안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반론과 재반론…. 머리가 무거워진다.
회사의 앞길을 결정하는 일이 단박에 결론날 리는 만무였다.
새벽 2시, 회의를 끝내고 사무실에서 일기를 쓰며 자신을 다시 한번 담금질한다.
“지금 나에게 가장 부족하고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건 어쩌면 여유아닐까.”
“의료계는 기회의 땅 ”
98년 11월 로터스 노츠에 관심이 많던 한 의사가 박종필 사장을 찾았다.
현재 (주)케이메디칼의 이사로 있는 임형묵씨였다.
당시 유명벤처의 ‘넘버 투’였던 박 사장은 업계에서는 내로라하는 노츠 전문가. 노츠를 매개로 임형묵 이사와 얘기를 나누면서 박 사장은 일반 기업에 비해 의료계가 전산부문의 불모지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지난해 2월 임 이사가 사이버 의료강좌를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해왔을 때는 당황스러웠다.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남부럽지 않은 회사에서 안정된 생활을 누리고 있던 그로서는 선뜻 받아들이기가 부담스러웠다.
자신이 의료분야의 문외한이라는 두려움도 있었다.
결국 6개월간의 기나긴 고민 끝에 지난해 8월 사표를 던지고 본격적으로 회사설립에 나섰다.
화곡동에 있는 14평의 좁은 오피스텔에서 6명의 직원들과 함께 기획 및 프로그램 개발에 들어갔다.
일반인을 의한 무료 의료사이트는 엇비슷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수익성을 장담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초기 투자비용이 엄청나다.
새로운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의료기술, 게다가 국내 병원들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의사나 약사들은 새로운 의료정보에 목말라 했다.
의사나 약사, 특히 의사들은 자체적으로 수많은 학술대회나 증상사례 토론을 열고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환자진료에 쫓기는 의사들이 모든 세미나에 참석하는 것은 무리다.
그렇다면 의사가 의사를 가르치는 사이트는 어떨까. 고혈압, 당뇨병 등 해당 분야의 권위자들을 강사로 초청하기 위해 몇개월 동안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단순한 강의만으로는 의사들의 호응을 얻기가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이트에서도 증상사례 토론을 하거나, 토론을 통해 협업방식으로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에 착수했다.
협업 프로그램은 임상경험이 적은 30대 의사들에게는 절실한 것이다.
오피스텔에서 숙식을 하면서 강행군을 거듭한 끝에 3월부터 첫 수강생을 모집할 수 있었다.
교육과정은 각 분야별로 25개 강좌를 3개월 동안 실시하도록 구성했다.
수강생들은 강의 도중에도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다.
수강료는 3개월에 10만원 안팎. 현재 수강신청자는 100여명을 넘어섰다.
마케팅을 거의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고무적이긴 하지만 수강료만으로 손익분기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많이 부족한 편이다.
수익모델이 수강료로만 한정돼 있지는 않다.
의사들이 증상에 따라 처방을 참고할 수 있는 코드명 `K-FLOW'라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사장을 포함해 직원들이 모두 로터스 노츠의 전문가들인만큼 기업이나 병원전산시스템 구축을 의뢰하는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들도 심심찮게 들어온다.
콘텐츠와 솔루션 개발, 전산시스템 구축 서비스 등을 효과적으로 결합해 수익모델로 삼고 있는 셈이다.
박 사장의 포부는 당차다.
“기술력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의료지식 관리시스템 분야를 석권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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