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7:03 (금)
[리드칼럼] 가치의 혼란, 국가경쟁력 무너뜨린다
[리드칼럼] 가치의 혼란, 국가경쟁력 무너뜨린다
  • 한상진/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
  • 승인 2002.02.2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작년 말 스위스 로잔의 국제경영개발원(IMD)에서 색다른 경험을 했다.
IMD는 매년 49개국의 국가경쟁력 순위를 발표하는데, 2001년 우리나라는 28위였다.
1998년에는 36위, 다음해에는 41위로 밀려났으나 2000년과 2001년은 각각 28위를 차지했다.
나는 IMD가 발표한 순위 그 자체보다는 평가 방법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런 평가가 객관적 자료에 못지않게 바로 우리의 주관적 태도에 의존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새삼 경각심을 느끼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그런 평가에 별로 신경쓸 것 없다고 말한다.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는 식이다.
그러나 세계화 시대에 우리의 위상과 이미지는 갈수록 정보에 의존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과거에는 GDP, 1인당 GNP, 무역, 투자, 국방 등과 함께 국제규범으로 통했던 인권에 관한 국제평가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환경, 부패, 교육, 여성참여 등 많은 분야에서 국제 평가가 유행을 타고 있다.
어떤 사람은 기업의 경쟁력은 평가할 수 있지만 국가의 경쟁력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겠느냐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나 미래지향적으로 볼 때 국가경쟁력은 국정의 모든 분야를 관통하는 키워드임이 분명하다.
기업경영, 정부행정의 효율성은 물론이고 과학, 기술, 환경, 가치관 등 문화적 하부구조도 중요하다.
특히 동양문화를 공유하는 아시아 국가로서 21세기 세계화 시대에 국가경쟁력의 개념을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는 중요하고 야심찬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내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정보가 자유롭게 소통하는 시대가 되고 나서는 ‘우리끼리’의 이야기가 더 이상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를 평가하는 자료로 국제사회에서 활용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누워서 침을 뱉건 말건 국력이나 위상은 객관적으로 규정된다면 그래도 나은 편이다.
그러나 우리의 체질이 되다시피 한 자기부정, 불신, 폄하의 태도가 바로 우리의 경쟁력을 무너뜨리는 자료로 쓰여진다면 상황은 다르지 아니한가? IMD의 평가방법을 보자. IMD는 국가경쟁력을 4개 분야 즉 경제성과, 정부효율성, 기업효율성, 발전인프라로 나누어 본다.
각 분야에 5개 영역이 있음으로 모두 20개 영역에 걸쳐 평가를 하는 셈이다.
자료의 면에서는 각 정부나 국제기구에서 얻은 118개 항목의 통계자료와 함께 경영인에 대한 설문조사로 얻은 108개 항목의 서베이 자료를 쓴다.
그 가운데 경제성과는 객관적 통계자료만을 쓰고 나머지 3개 분야에서는 통계자료와 설문자료를 같이 사용한다.
바로 이 주관적 설문자료가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주범임이 분명하다.
정부효율성, 기업효율성, 발전인프라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장점 30개 항목과 단점 30개 항목을 정밀 분석해보면 놀랍게도 단점의 경우 93%, 즉 28개 항목이 설문자료에 근거한 것이다.
반대로 장점 30개 항목 가운데는 설문에 기초한 것은 20%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통계자료에 근거한 것이다.
이것은 설문조사의 타당성에 관한 수많은 의문을 가능하게 하는 발견이었다.
누가 어떻게 이 조사를 관장하며, 누가 어떻게 설문에 응답하는가의 방법론적인 질문이 제기된다.
몇가지 보기를 들자면 환경보호법이 경제활동에 미치는 영향에서 우리나라는 49위, 즉 꼴찌에 속한다.
민족문화의 배타성은 48위이고, 대학교육의 비경쟁성은 47위, 적대적 노사관계와 성차별은 46위다.
우리에게 이런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실이 과연 그 정도인가? 나는 도저히 믿기 어려웠다.
그래서 IMD를 방문했다.
평가 책임자인 슈테판 가렐리 교수는 설문조사가 불완전하며 개선을 요하는 점들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단호하게 이렇게 말했다.
“국가경쟁력을 위해서는 사람들의 태도와 인식이 부정적인 것보다 긍정적인 것이 훨씬 도움이 됩니다.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 한국인은 부정적 인식이 매우 강합니다.
이것은 당신들의 문제일 뿐 우리가 이 경향을 통계적으로 교정할 수는 없습니다.
” 순간 나는 머리가 띵했다.
우리는 아직 우물 안의 개구리가 아닌가. 우리의 부정적 체질, 주관적 태도가 국제사회에서는 바로 우리를 평가하는 자료로 활용되고 있으니 말이다.
정말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
사실에 입각한 공정한 사물인식, 이것이 또한 국가경쟁력의 조건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