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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남북 IT경협 윈윈 해법은?
[IT] 남북 IT경협 윈윈 해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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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1.05.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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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창구 한정·북한 문화 몰이해 등으로 시행착오 연속… 정부의 체계적 관리 시급
지난 3월 평양 순안공항엔 아직도 차가운 겨울 기운이 가시지 않았다.
그럼에도 기가링크 www.gigalink.co.kr 직원들의 가슴엔 따뜻한 기운이 벅차올랐다.
초고속인터넷 장비를 생산하는 업체로는 처음으로 북한에 발을 디뎠기 때문이다.
기가링크는 한달 전 “3월 말까지 평양정보쎈터 안의 기술봉사소와 프로그램강습소에 PC 100대 규모의 초고속망을 시범구축한다”고 북한과 합의한 터였다.
중국 세관에 장비들을 압수당하기도 하며 어렵사리 북한에 들어간지라 감회는 남달랐다.
하지만 막상 평양정보쎈터에 도착한 기가링크 직원들은 허탈감을 감출 수 없었다.
장비를 가져가기는 했지만 설치할 장소가 없었던 것이다.
애시당초 초고속망을 설치하기로 했던 평양정보쎈터 기술봉사소는 PC 5대밖에는 설치할 수 없었다.
게다가 프로그램강습소는 이제 막 건물을 새로 짓기 시작해 9월께나 돼야 완공된다고 했다.
가져간 초고속망 장비를 평양정보쎈터 이외의 다른 기관에 설치하는 것은 북한체제의 성격으로 볼 때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장비들을 남한에 되가져올 수도 없었다.
기가링크는 결국 9월 이후에 다시 설치를 도와주겠다고 하며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채널 2~3개, 컨설팅 비용 부담 올해 들어 남한 IT 업체들의 북한 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
정보통신부와 통일부 등에 따르면, 지난 1월 이후 5월 초까지 IT 분야에서 북한을 방문한 횟수가 20여건을 훌쩍 넘어섰다.
삼성전자와 한국통신을 제외하면 대개는 중소 벤처기업들의 방문이라고 봐도 지나치지 않다.
통계로만 보면 남북 IT경협의 주도권이 대기업에서 벤처기업로 넘어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벤처기업들의 남북 IT경협이 그리 녹록한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숱한 시행착오를 거듭해왔고, 앞으로 얼마나 더 비싼 수업료를 치러야 할지 장담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무엇보다 벤처기업들이 협상창구로 삼을 수 있는 대북 채널이 2~3개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하나비즈닷컴 같은 컨설팅회사를 통해 간접적으로만 북한과 접촉할 수 있다.
자체적으로 북한과 직접적 협상창구를 갖고 있는 벤처기업은 인터넷 솔루션 업체인 엔트랙 www.ntrak.co.kr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5년 동안 남북경협을 해왔고, 북한에 구두 생산공장을 갖고 있는 엘칸토가 모회사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협상창구가 제한돼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일단 북한의 문턱을 넘기 위한 ‘컨설팅 비용’이 만만치 않다.
벤처기업들은 ‘착수금’ 형식으로 500만원을 컨설팅회사에 낸다.
이어 북한에 들어가 실제 합의서를 체결하면 500만~1000만원, 많게는 2000만원 정도의 ‘수수료’를 컨설팅회사에 지불한다.
게다가 북한과 사업을 시작해 매출이 발생하면 3~5%를 또 떼줘야 한다.
아직 구체적으로 매출이 발생한 회사는 없지만, 이것도 벤처기업들에겐 만만치 않은 비용이 될 것이다.
합의서 체결이 대북 사업의 미래를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북한과 맺은 합의서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말하는 ‘계약서’와는 성격이 다르다.
기껏해야 양해각서(MOU) 정도다.
어떤 법적 강제력도 없기 때문에 합의서는 경우에 따라 휴짓조각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컨설팅회사들은 합의서 체결까지만 이끌어내면 모든 것을 다해준 것처럼 생각한다고 벤처기업들은 불평한다.
북한에 들어가기 전의 준비과정도 거의 컨설팅회사에 의존하기 때문에 벤처기업 처지에선 답답하다.
기가링크의 경우도 평양정보쎈터에 대한 정보를 미리 갖고 있지 못해, 실행할 수 없는 합의서에 서명한 꼴이 돼버린 것이다.
북한에 들어갔다가 사업 파트너를 찾지 못해 뒤돌아선 사례도 있다.
지난 3월 북한을 방문한 산업용 소프트웨어 개발 전문업체 사장은 기술을 이해하는 북한 사람이 없어 합의서조차 체결하지 못했다.
결국 비싼 컨설팅 수수료와 여행경비를 들여 북한을 방문한 이 회사 사장은 ‘관광’을 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물론 북한에 대한 몇몇 벤처기업들의 그릇된 ‘자세’를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북한의 특수한 문화를 배려하지 않고 남한식 그대로 행동해 ‘결례’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4월 북한을 방문한 한 벤처기업 사장은 만찬자리에서 작은 ‘해프닝’을 일으킨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쪽 안내원이 “돈이 없으니 앞으로 도와달라”고 하자 술에 취한 남쪽 기업인은 “걱정마라, 내가 다 알아서 하겠다”고 큰소리를 쳤다는 것이다.
자존심이 상한 북한 안내원은 ‘폭탄주’를 돌리며 술 약한 벤처기업 사장에게 골탕을 먹였다고 한다.
게다가 일부 벤처기업들은 대북 사업 자체보다는 ‘홍보’ 목적으로 북한 방문을 이용하기도 한다.
남한에서 기업의 인지도를 높일 목적으로 북한과 합의서를 체결한다는 것이다.
홍보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극적’이고 ‘무리한’ 사업내용을 담은 합의서를 이끌어내야 하고, 이런 태도는 결과적으로 사업 진행에 방해가 된다.
‘실적’을 당에 보고해야 하는 북한 실무자 처지에선 애가 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근 북한 인사를 만나고 온 한 대북 사업 관계자는 “남한 기업들이 자주 합의서를 뒤집으면서 북한쪽 사람들의 마음 고생이 심하다”고 전한다.
장기적 협력 체제 구축 절실 결국 이처럼 신뢰관계가 깨지면서 북한은 남한 기업들을 서로 경쟁시키는 듯한 모습도 보이고 있다.
남한 기업들과의 ‘합의서’가 미덥지 못한 만큼 가능한 안전판을 확보하려는 전략인 것이다.
예컨대 북한은 하나비즈와 공동으로 지난 5월 초 신의주와 인접한 중국 단둥에 ‘하나프로그램센터’라는 IT 단지를 세웠다.
또한 올 8월께는 엔트랙과 함께 평양에 ‘고려기술개발제작소’라는 IT 단지를 세울 계획이다.
사업방식은 다르지만 성격은 서로 엇비슷한 것이다.
두 사업 모두 남한 기업을 상대로 입주 업체들을 모집해야 하는 만큼 경쟁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남한 기업들도 중복 유치 의혹에선 결코 자유롭지 않다.
북한이라는 미개척지를 먼저 선점해야 한다는 조급증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에 경쟁적으로 북한과 사업을 시작하려는 것이다.
때문에 업계에서도 ‘교통정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소기업들 사이에선 제살 깎아먹기를 하지 말자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이런 암묵적 약속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고백한다.
업계에선 북한과의 IT 경협이 상당한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일단 남한 기업들이 북한에 지급하는 임금은 한사람당 적게는 100달러(임가공 단순노동)에서 많게는 700달러(프로그램 개발)로 남한에 비해 매우 싼 편이다.
게다가 김책공과대학 컴퓨터공학부 학생만 2천여명으로 고급인력도 풍부한 편이다.
북한의 저렴한 고급인력을 잘만 활용하면 윈윈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엔트랙 임완근(50) 사장은 “2~3분짜리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경우 남한에서 7억~8억원 정도의 비용이 들지만 북한에서 제작하면 2억~3억원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게다가 인력이동이 적어 안정적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IT 분야는 임가공 산업에 비해 물류비용도 훨씬 적게 든다.
굳이 원료의 북한 반입, 완제품의 남한 반입과 같은 번거로운 절차가 필요없다.
평양에서 중국, 중국에서 다시 한국으로 CD 몇장만 특송하면 되는 것이다.
게다가 특송을 할 경우 북한에서 한국으로 4일이면 ‘제품’이 도착한다.
IT 분야의 이런 장점를 살려 남북한이 장기적 협력체제로 가려면 지금부터라도 정부나 정부 산하기관에서 체계적 관리를 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해외진출 기업들에게 정부가 정보를 제공하고 사전교육을 시키는 것처럼 북한에 대해서도 똑같은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처럼 대북한 교역의 노하우가 있는 기관이 중소기업들의 북한 진출을 발벗고 도와줄 수가 있다.
경남대 북한대학원 김유향 교수는 “북한과의 교역 분쟁이나 갈등, 중복투자, 결제 따위의 문제는 중소기업이나 민간단체의 힘으로 해결하기는 역부족”이라고 말한다.
정부의 역할이 시급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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