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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경제] “부실기업 처리, 원칙대로 하라”
[거시경제] “부실기업 처리, 원칙대로 하라”
  • 이원재
  • 승인 2001.05.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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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 부문 중 최저 점수… 대기업 구조조정 가장 불신해 금융 및 재벌 구조조정 정책은 그 자체로 디지털 경제정책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 경제의 체질 개선을 통해 IMF 구제금융 위기를 불러온 근원을 제거하겠다는 김대중 정부의 정책 초점이었고 간접적으로는 디지털 경제정책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설문항목에 넣었다.
김대중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기존 재벌기업 및 부실 금융사들은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체질을 개선하고, 그 빈 자리를 IT산업 및 벤처기업 육성으로 메워가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IT·벤처 육성이 새 살을 돋우는 희망의 경제정책이었다면, 구조조정은 아픔을 감내하면서 헌 살을 도려내는 눈물겨운 경제정책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어떤 영문인지 이 눈물겨운 정책들에 대한 거시경제 분야 전문가들의 평가는 그다지 후하지 않았다.
전체 전문가 71명은 거시경제·구조조정 정책에 대해 평균 C학점(1.80점)을 제시했다.
분야별로 비교할 때 가장 낮은 점수다.
설문응답 전문가들의 분야별로 종합하면 벤처분야 전문가들이 D+(1.15점)라는 야멸찬 학점을 줬다.
경제분야 전문가 19명에게 물어본 세부설문 결과를 보면 김대중 정부의 거시경제·구조조정 정책 가운데 어떤 부분이 가장 문제였는지가 드러난다.
우선 부실 대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불신이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건설, 하이닉스반도체, 대우자동차, 쌍용양회, 현대투신 등 5개 부실 대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방안을 평가해주십시오”라는 항목에서 전문가들은 평균 C학점(1.68점)을 내놓았다.
특히 부실기업 처리 가운데 최근 이슈가 됐던 현대 관련 기업 처리방안에서 원칙 문제를 지적하는 전문가가 많았다.
윤건영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현대건설과 하이닉스반도체 지원은 무조건적 성격이 짙다”고 지적했다.
원칙이나 일관성 없이 하루하루를 넘기는 데 급급한 것처럼 보인다는 얘기다.
또 김기원 방송대 교수(경제학)는 “아예 정부가 국회동의를 얻어 지급보증을 서는 것이 옳으며 지금처럼 은행들을 강제로 동원해 부실기업을 지원하는 것은 편법”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부실의 총책임자인 총수들에 대해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여러 전문가들은 “부실기업 처리에서 신속함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내놨다.
전문가들의 생각은 “빚더미에 올라앉은 부실 대기업의 처리는 원칙적으로 어떤 방향이 옳으냐”는 설문에서 더욱 분명히 드러났다.
17명의 응답자 가운데 11명이 “시장원리에 따라 퇴출시키는 게 옳다”고 응답했다.
출자전환 등 채무조정(2명), 해외매각(1명), 공적자금 투입(0명)이라는 답변은 미미하거나 없었다.
그러니 실제로는 채무조정, 공적자금 투입, 해외매각 등으로 이어져온 그간 정부의 부실 대기업 구조조정 정책태도에 대해 전문가들의 시선이 고울 리 없다.
현 정부의 핵심적 경제 구조개선 정책 가운데 하나인 재벌개혁 정책에 대한 평가 역시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전반적으로 현재까지 김대중 정부의 재벌개혁 정책에 대해 평가해달라”는 질문에 대해 전문가들은 평균 C+학점(2.05점)을 매겼다.
부정적 평가를 내린 전문가들의 의견도 입장에 따라 극명하게 엇갈렸다.
이남우 삼성증권 리서치센타 상무는 “재벌개혁 처리속도가 늦고 그 핵심인 기업지배구조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개혁의 방향은 옳으나 실현의 정도가 만족스럽지 않다는 평가다.
하지만 이승명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재벌에 대한 역차별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전반적으로 C~D학점을 준 13명의 전문가 가운데 5명은 “방향은 옳지만 실천이 미흡하다”는 의견을 보였고, 3명은 “방향이 옳지 않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재벌개혁 정책과 관련해 재계는 반대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
박용성 대한상의 회장, 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장, 민병군 자유기업원장 등 재계쪽 인사들은 최근 정부에 대해 기존 재벌개혁 정책의 고삐를 늦춰줄 것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나서기도 했다.
재벌쪽 요구는 30대 대기업집단 지정제도 완화, 재벌기업 출자총액한도 폐지, 집중투표제와 집단소송제 도입 연기, 부채비율 200% 이하 원칙의 탄력적용 등이 핵심을 이룬다.
이런 요구사항들에 대한 전문가들의 생각은 어떨까? 우선 출자총액한도 폐지와 집중투표제·집단소송제 연기에 대해서는 재계 주장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이 많았다.
출자총액한도 폐지는 반대가 11명, 찬성이 7명이었고, 집중투표제와 집단소송제 시행연기는 반대가 11명, 찬성이 6명으로 대체로 재계쪽 의견이 열세를 보였다.
30대 그룹 지정, 찬반 양분 정부가 30대 기업집단을 지정해 관리하는 정책에 대해서는 찬성 9명, 반대 9명으로 의견이 팽팽하게 엇갈렸다.
찬성한 응답자들은 대부분 ‘재벌개혁은 여전히 계속돼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웠고, 반대한 응답자들은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위해서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며, 대기업집단 지정제도는 이에 반하는 것”이라고 현실론을 주장했다.
특히 출자총액한도나 집중투표제·집단소송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보였던 증권가 전문가 중 일부가 대기업집단 지정제도는 국제경쟁력을 위해 없어져야 한다며 재계쪽 손을 들어줬다.
재벌의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맞춰야 한다는 원칙을 완화해 탄력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찬성 16명, 반대 3명으로 찬성의견이 압도적이었다.
지나치게 무리한 재무구조 개선 강요는 기업의 활력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이를 완화해야 하는 이유로 제시됐다.
부채비율 조정은 원칙적으로 채권금융사가 결정할 문제이지 정부가 개입할 일이 아니라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나 김기원 방송대 교수는 “재벌체제를 완전히 바꾸는 정공법이 아니라 대증요법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재벌기업들의 악성 재무구조를 개선할 필요가 남아 있기 때문에 200%라는 수치를 조금 조정하더라도 유지는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은행 대형화 정책 등 금융 구조조정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평균 C+(2.21점)였다.
“은행 대형화라는 방향은 옳았다”는 의견도 제시됐지만 “정부가 가시적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인위적으로 무리한 통합을 감행했다”거나 “은행들은 퇴출이 아니라 국유화됐을 뿐”이라는 냉소적인 반응도 많았다.
“금융 구조조정의 핵심은 부실 제거, 부실 금융사 퇴출, 잔존 금융사 건전화 및 관행 개선 등인데, 현 정부는 부실 제거와 퇴출만 하고 남아있는 금융사들의 건전화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왔다.
김대중 정부 출범 초기 강력한 재벌 구조조정 정책으로 추진됐던 이른바 ‘빅딜’에 대해서는 부정적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빅딜 정책에 대해 전문가들은 평균 D+(1.11점)라는 아주 낮은 점수를 줬다.
“현 정부의 거시경제·구조조정 정책 가운데 가장 잘못한 것을 쓰라”는 주관식 설문에서도 ‘빅딜정책’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이 눈에 띄었다.
반면 가장 잘한 정책으로는 저금리 등 금융정책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이 나왔고, 부실금융사 정리, 기업 재무구조 개선, 소수주 주권 강화 등의 정책도 잘한 정책으로 거론됐다.
전문가들은 현 정부가 임기 말까지 가장 역점을 둬야 할 과제는 “부실기업 정리 및 구조조정 마무리”라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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