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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베이] 고소득층 ‘다단계’로 몰린다
[서베이] 고소득층 ‘다단계’로 몰린다
  • 박형영 기자
  • 승인 2002.03.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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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의사 등 전문직 회원 급증… ‘증’도 힘잃은 무한경쟁 시대 “자유롭고 싶다”

부장검사 출신의 김아무개(48) 변호사는 요즘 다단계판매의 재미에 푹 빠져 있다.
다단계 판매원이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직급인 다이아몬드가 되기 위한 카운트다운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앞으로 6개월간 지금의 매출액을 유지하면 다이아몬드에 오른다.
다이아몬드가 되면 적어도 연간 7천만~8천만원, 많으면 3억~4억원의 수입을 올릴 수 있다.


김 변호사가 다단계판매에 발을 들여놓은 건 2년 전이다.
대기업 차장이던 손아랫동서가 암웨이 제품을 써보라고 권유한 것이 계기가 됐다.
처음엔 도와준다는 기분으로 회원에 가입하고 제품을 구입하기는 했지만, 자신이 사업자가 되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때까지도 다단계판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간 지나자 아내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해보자고 했다.


“검사 출신 변호사로서 당연히 말려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려면 일단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두달 동안 알아봤다.
그 결과 다단계판매라는 게 단순히 그 전에 알던 다단계판매가 아니라 네트워크 마케팅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판매기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시작했다.



20대에서 30~40대 전문직으로 확산

다단계판매에 뛰어드는 전문직 화이트 칼라층이 확대되고 있다.
10여년 전 국내에 처음 도입됐을 때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20대들로 들끓던 다단계 업계에 이제는 30~40대 직장인과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들이 모여들고 있다.


다단계 업계는 IMF 사태를 거치면서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한국방문다단계협회 자료에 따르면 다단계 업계는 1999년 이후 매년 거의 두배씩 성장해, 지난해에는 시장이 3조8천억원 규모로 커졌다.
뉴트리션포라이프 김진구 이사는 “IMF로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실업자들이 다단계 시장에 대량으로 유입됐고, 동시에 불안정한 고용환경으로 화이트 칼라 판매회원이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화이트 칼라층이 다단계판매에 대거 뛰어드는 이유는 구조조정 과정을 거치며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불안한 직장인들에게 다단계판매가 안전한 방패막이로 등장한 것이다.


리스회사에 근무하는 박아무개(39) 과장은 암웨이 회원이 된 지 3년째다.
월 300만원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여름에는 특별 보너스로 호주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직장인에게 네트워크 마케팅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며 “근로소득은 상속이 안 되지만 네트워크는 상속이 되는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다단계 회사에서는 회원들이 자신들의 네트워크를 자손에게 상속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최근에는 의사, 변호사, 공인회계사, 교수 등 전문직 종사자들이 다단계판매를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들이 다단계판매를 시작하는 동기는 일반 직장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격증만 있으면 평생이 보장되던 시대는 옛날 이야기에 불과하다.
이들도 무한경쟁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이들은 아직까지는 고소득층이다.
따라서 이들이 다단계판매를 하는 데에는 생존문제 해결을 넘어서는 또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김 변호사는 ‘자유’를 얻기 위해 회원이 되었다고 한다.
“진짜 하고 싶은 일, 진짜 가고 싶은 곳이 있어도 생업 때문에 못 하고, 못 가는 경우가 많다.
네트워크 마케팅은 그 대안이 된다.
네트워크 마케팅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재정적 안정과 시간, 즉 자유 때문이다.


직업에 따라 소득 차이는 있지만 그 소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일해야 한다.
소득수준은 높아가지만 그에 비례하여 자유시간은 점점 짧아지는 현대인의 딜레마를 해결하는 좋은 방법이 다단계라는 것이다.
그의 말은 이어진다.
“의사는 진료가 생업수단이고 변호사는 변론이 생업수단이다.
만약에 다른 안정적인 수입원이 있어서 이런 진료나 변론이 생업수단이 아니라 봉사수단이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자기 발전에 필요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한다는 측면에서 접근하는 사람도 많다.
소아과의원 원장인 박아무개(40)씨는 “돈을 벌겠다는 욕심보다는 다양한 사람들 사이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그것을 정보교환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어서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다양한 교육을 통해 인간관계론이나 인생론을 배우는 것도 큰 즐거움”이라며 “네트워크 마케팅의 본래 의미는 대형 소비자 클럽”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주로 저녁 8시 이후에 열리는 사업설명회나 축하모임, 세미나 등에 1주일에 서너차례 참석한다.


사실 고소득 전문직들이 다단계판매에 나설 경우 성공확률은 훨씬 높아진다.
주변에 물품을 소비해줄 만한 소비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와 같이 부업으로 해서 2년 만에 다이아몬드가 되는 일이 흔하지는 않다.



인적 네트워크 풍부, 성공확률 높다

전문직 화이트 칼라층이 다단계판매에 나서고 있는 것은 다단계판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몇년 전만 해도 합법적인 다단계 업체와 불법적인 피라미드 업체가 뒤섞여 옥석을 가리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영업활동을 하는 다단계 업체를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IMF 직후 대기업 부회장에서 웨이터로 변신해 화제를 뿌렸던 서상목씨는 최근 SMK 회원이 됐다.
그는 “네트워크 마케팅은 세계적인 추세”라며 “무리해서 올라가려고 하면 부작용이 나타나지만 무리하지 않고 한다면 나쁠 게 없다”고 말했다.
서씨는 지난해 11월 영상물 제작업체를 설립해 경영자의 길로 복귀했지만, 아직도 밤에는 웨이터 일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다단계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간단한 계산이 증명해준다.
이를테면 한사람이 6명씩 회원 가입을 시켰을 경우 10단계만 내려가면 회원은 무려 6천만명이 넘어간다는 계산이 나온다.
결국 대다수는 6명의 회원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김 변호사는 강조한다.
“누구든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시간과 노력, 정성을 들이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다.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이라면 그만한 노력을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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