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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2. 정치 입김서 이젠 벗어나고파!
관련기사2. 정치 입김서 이젠 벗어나고파!
  • 이경숙 기자
  • 승인 2002.03.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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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 1000 시대의 조건들… 성장 지향적 경제정책 가장 큰 걸림돌 우리나라 설비투자율 곡선을 들여다보자. 1985년 이후 88년, 93년, 98년의 세번 바닥을 찍고 가파르게 올라간다.
묘하게도 모두 대통령선거 다음해다.
대통령선거가 치러지는 해엔 기업 부문의 투자가 급격하게 위축되기 시작해 신임 대통령의 임기 첫해부터 설비투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종합주가지수 역시 앞서거니 뒤서거니 설비투자율의 추세를 따라간다.
자, 이런 가정은 어떤가. 올해 기업의 설비투자 예산은 지난해보다 0.1%밖에 늘어나지 않았다.
거의 바닥권인 셈이다.
기업들의 설비투자는 억제되고 세계경제의 여건이 호전되면 기업들의 잉여현금은 막대한 수준에 도달하게 된다.
이 돈이 시중에 흘러들면 증시 수급여건은 더욱 좋아진다.
그렇다면 지수 네자릿수 시대는 정말 머지않아 열리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게 마련이다.
역대 정권은 2~3년 동안은 경기확장과 주가상승을 누리다가 3~4년째부터는 경기 수축, 주가 하락을 겪었다.
정권 초기에 과도하게 실행된 투자에 대해 반작용이 나타났던 것이다.
9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은 신경제 100일 정책을 실행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98년 ‘금융구조조정 종결 선언’을 했다.
그때마다 신임대통령들은 금리를 낮추고 시중에 돈을 풀었으며 기업은 기업대로 숙원사업 진출이라는 명분 아래 설비를 경쟁적으로 확충했다.
이에 따라 역대 정권들은 집권 후반기쯤엔 물가 불안과 기업재무구조 부실화, 경상수지 악화에 시달리곤 했다.
이번 선거 이후에도 같은 주기가 반복된다고 가정하면 우리 주식시장은 2005년 전후에 급락을 경험하게 된다는 시나리오가 나온다.
그러나 주가가 경제논리가 아닌 정치적인 순환에 좌우되어선 지수 1000 시대는 열리지 않는다.
이와 함께 주주 중심 경영은 지수 네자릿수 시대의 필수조건이다.
굿모닝증권 홍춘욱 수석연구원은 주주중심 경영이 정착되어야 장기 투자자본을 안정적으로 유치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기업실적을 높이고 자사주를 소각해 일정 수준의 자본수익률(ROE)을 유지하는 기업, 이익에 대한 배당수익률을 높이는 기업, 기업 경영정보를 주주들한테 투명하게 공개하는 기업이야말로 주주들이 안심하고 장기투자를 할 수 있는 기업이다.
성장보다 이익 분배, 정부 기능도 축소해야 특히 미국의 연기금 등 외국인 자본들은 기업투명성을 저해하는 사건, 정치적 불안을 야기하는 사건들에 리트머스 종이처럼 반응한다.
이들 외국 투자자들이 불확실한 미래 전망에 의문을 품고 장기투자보다 단기 이익실현에 몰두하면 지수는 또다시 1000에서 400으로 윤회하게 된다.
홍춘욱 수석연구원은 지수 1000 시대를 열기 위해선 한국 기업의 이익이 불황이나 선거 등 대외적 충격에 내구성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새 정권을 맡은 대통령이 성장 지향적인 정책목표를 고집하는 순간 다시 한번 과잉투자의 악령이 주식시장의 앞날을 가로막을 위험을 배제할 수 없을 것”고 전망한다.
더군다나 한국 경제는 전처럼 설비투자를 늘리는 만큼 성장하던 고성장시대를 벗어난 지 오래다.
대신경제연구소 김영익 투자전략실장은 “현재로서도 설비는 과잉공급되어 있는 상태”라면서 “이런 상태에서는 설비투자에 자금을 쏟아붓는다고 해도 성장을 늘리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안정성장시대엔 경제성장률이 5%만 넘어도 ‘급성장했다’는 평가를 듣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지금 같은 상황에선 성장지향적인 경제정책은 경제위기를 불러올 위험이 있다.
현재 한국 경제는 내수시장의 소비가 기업실적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내수시장은 낮은 금리와 가계부채가 떠받쳐주고 있다.
그런데 새 정권이 여기에 성장정책을 써서 소비와 설비투자가 동시에 증가하면 수입이 크게 늘어 경상수지가 적자로 반전된다.
경상수지 불균형은 환율, 물가, 금리 등 거시경제변수를 흔든다.
경기과열로 인플레이션이 나타날 수도 있다.
물가가 오르면 금리도 올라간다.
금리가 높아지면 가계부채가 많은 가정은 이자 부담으로 인해 가계파산 가능성이 높아진다.
가계파산의 증가는 내수시장의 기반을 흔들어 기업 실적을 악화시킨다.
기업실적은 설비투자 확대로 인한 경쟁 심화 때문에 악화될 수도 있다.
한국 가정의 가계부채 수준은 이미 우려할 만한 수준에 이르렀다.
반면 부채상환 능력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2월말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1년 말 기준 가계부채 총액(잔액기준)은 전년에 비해 70조원이 늘어난 335조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개인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0%까지 높아졌다.
99년의 66%, 2000년 76%에 이은 엄청난 급등세다.
이처럼 가계대출이 급증하면서 지난해 말 개인신용불량자는 245만명으로 2000년보다 36만6천명이 늘었다.
개인파산신청 건수는 672건으로 2000년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선 오히려 성장보다는 이익의 분배와 정부 기능 축소에 신경써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랜달 존스 한국담당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경제 안정을 위해 한국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에 대해 이렇게 정리한다.
“우선 높아진 노동유연성만큼 사회안전망도 확충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높아지긴 했지만 기업들이 퇴직금 지급이나 고용보험제도 적용을 회피하기 위해 노동 유연성을 높여놓은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또 기업의 생존과 성장에 대해 정부가 지나치게 개입해선 안 된다.
가령 기업채권에 대한 부분적인 정부 보증을 위해 도입된 채권담보부증권(CBO)은 단계적으로 폐지되어야 한다.
이것은 기업이 부채액의 절대 수준을 감소시키지 않고 주식 발행에 의존해 부채비율만을 손쉽게 줄일 수 있게 해 장기적인 부실을 잉태할 수 있다.
” 신용평가기관 무디스가 A급 신용의 조건으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역시 대내외 충격에 대한 경제, 정치, 사회적 내구성이라 한다.
경기 불황, 선거 등 어떤 충격에도 흔들림 없는 경제라는 믿음을 대내외에 주는 것, 그것은 지수 1000 시대뿐 아니라 국가신용 최우량 등급의 선진국시대를 여는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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