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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카드·백화점 분쟁 무얼 남겼나
[초점] 카드·백화점 분쟁 무얼 남겼나
  • 박형영 기자
  • 승인 2002.03.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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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정부 압박에 “수수료 차등” 합의… 추가 수익 환원, 위법행위 처벌 여부 관심 극한 대결로 치달았던 백화점과 카드사들 사이의 분쟁이 끝났다.
롯데백화점과 비씨, 삼성, LG, 국민, 외환 등 5개 카드사 관계자들은 지난 3월15일 카드 수수료율 인하와 관련한 회의를 갖고 슬라이딩 시스템을 적용해 가맹점 수수료율을 낮추기로 합의했다.
슬라이딩 시스템이란 매출액에 따라 적용 요율을 달리하는 방식으로, 매출이 늘어남에 따라 수수료율이 낮아지는 방식이다.
구체적인 수수료율은 업체별 협상에 따라 정하기로 했지만, 대체로 카드사쪽에서 주장했던 2.2%를 기본으로 하고 매출액이 일정액을 넘으면 1.9%까지 떨어지도록 하는 선에서 결정될 전망이다.
이번 분쟁은 지난해부터 카드가맹점 수수료를 놓고 카드사와 줄다리기를 하던 백화점들이 9일 실력행사에 돌입하면서 시작됐다.
먼저 롯데백화점이 삼성카드 결제를 사실상 거부함으로써 포문을 열었고, 이어 신세계가 LG카드에 대해 같은 조처를 취하면서 분쟁이 본격화했다.
현대백화점이 뒤를 따랐고, 이후 갤러리아·동아·대구백화점 등 중소 백화점들에까지 확산되면서 전면전으로 치달았다.
이에 삼성카드는 “최근 3개월간 롯데백화점을 이용한 회원이 다른 백화점을 이용할 경우 결제대금의 5%를 할인해준다”고 맞불을 놓음으로써 분쟁은 한때 극한 대결로 치달았다.
이번 분쟁에서 백화점의 주요 타깃은 삼성카드였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삼성카드가 유독 협상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삼성카드쪽은 “삼성카드가 최근 발매한 기프트 카드가 백화점 상품권 시장을 위협했기 때문”이라고 나름대로 해석하고 있다.
분쟁은 금융감독원과 공정거래위원회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면서 진정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금감원은 백화점의 위법행위에 대해 경고하는 동시에 양 당사자에게 협상을 종용했다.
공정위는 해당 백화점 및 카드사에 직원을 파견해 현장조사에 들어가면서 양쪽을 동시에 압박해갔다.
‘죄없는 소비자를 볼모로 밥그릇 싸움을 한다’는 국민들의 질타 또한 백화점과 카드사 모두에게 분쟁을 지속할 명분을 잃게 했다.
백화점들이 수수료 인하를 요구하며 특정 신용카드를 거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0년 1월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은 당시 3%였던 수수료율을 인하해달라며, 회원 수가 가장 많은 비씨카드 결제를 거부했다.
그 결과 수수료율은 2.5%로 결정됐다.
이번에 백화점들은 이때 결정된 수수료율 2.5%를 다시 대형 할인점 수준인 1.5%로 낮춰달라고 요구했다.
그들은 시중금리의 하락으로 카드사들의 자금조달 금리가 많이 내렸기 때문에 2.5%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신헌 롯데백화점 마케팅담당 이사는 “백화점 매출에서 신용카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확대됐음에도 2.5%라는 높은 수수료율을 고집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카드사들은 지난해 저금리와 카드 장려정책에 힘입어 사상최고의 흑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카드사들은 “백화점 수수료율을 업종별 이익률이 극히 낮은 할인점과 같은 수준으로 낮추라는 요구는 지나치다”고 반박했다.
가맹점 수수료율은 공식적으로는 이자비용에 업종별 이익률, 기여도 등을 고려해 업종별로 기준 수수료율을 정하고, 여기에 개별 가맹점의 신용등급 등을 반영하는 방법으로 정해진다.
그러나 실제로는 가맹점과 카드사 사이의 협상력이 크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협상력이 떨어지거나 규모가 작은 업체는 상대적으로 높은 수수료율을 부담하고 있다.
이번 분쟁과정에서 여론은 백화점을 집중적으로 성토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죄없는 소비자를 희생양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분쟁기간 동안 공정거래위원회와 소비자단체 인터넷 사이트에는 백화점을 비난하는 글이 하루에도 수십건씩 올라왔다.
이아무개씨는 “롯데백화점에서 삼성카드를 제시하자 직원이 롯데백화점 카드를 만들어오라고 했다”며 “소비자가 봉이냐”고 항변했다.
서울YMCA 시민중계실 서영경 팀장은 “수수료율은 영세 가맹점을 포함해서 전체적으로 인하할 필요가 있었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소비자는 아무 이해관계도 없는데 백화점들이 소비자를 볼모로 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그는 “2000년 분쟁 당시 백화점들은 수수료 인하의 혜택이 소비자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했으나 당시 수수료 인하의 혜택이 실제로 어떻게 얼마나 소비자의 이익으로 돌아갔는지 들은 바 없다”고 덧붙였다.
이번에도 백화점쪽은 추가 수익을 휴게시설 확충, 주차장 확장 등 고객을 위해 쓰겠다고 밝혔다.
분쟁은 끝났다.
그러나 수수료 인하로 발생할 추가 수익을 백화점들이 어떻게 사용할지, 카드사와 백화점은 이번 위법행위로 어떤 처벌을 받게 될지 소비자들은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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