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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 표류하는 IMF ‘국가 파산제’
[세계경제] 표류하는 IMF ‘국가 파산제’
  • 최우성 기자
  • 승인 2002.04.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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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효율적인 해결위해 도입 추진… 미국 “불필요한 개입 우려” 반대입장 밝혀 국제통화기금(IMF) 운영방식 개선을 둘러싼 논란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그간 IMF 개선방안을 주도적으로 준비해온 앤 크루거 IMF 수석 부총재가 장차 국제 외환위기가 발생할 경우 IMF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에 관한 개선안을 제시한 데 대해, 미국 정부가 즉각적으로 반대의사를 분명히 밝힘으로써 최근 몇달 사이 국제 금융무대에서 불거졌던 공방전은 더욱 가열될 전망이다.
미국의 존 테일러 국제담당 재무차관은 크루거 부총재의 개선안이 알려진 다음날, “덜 중앙집중적이고 시장 지향적인” 방안이 필요하다고 밝혀 미국 정부가 크루거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을 강력하게 시사했다.
아르헨티나 사태 계기로 개혁논의 불붙어 지난 1일 크루거 부총재는 국제경제연구원(IIE)에서 한 연설을 통해 장차 IMF는 미국 상법(11조)에 규정된 파산제도를 본따 ‘국가 파산 11조’ 규정을 신설하고 국가 채무문제를 다룰 ‘국제 사법위원회’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방안을 수용할 경우, 장차 부도 위기에 몰린 국가는 IMF나 미국과 직접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 채권단과의 직접 협의에 따라 필요한 자금을 추가로 지원받거나 파산보호 신청에 들어가게 된다.
앤 크루거가 주도하는 IMF 개선방안의 골자는 특정 법인이나 개인이 파산보호를 신청할 경우 채권자의 소송으로부터 일정 기간 보호받는 것과 동일한 방식을 부도 위기에 몰린 국가에도 적용하는 것이다.
현행 IMF 운영방식은 특정 국가가 발행한 국채의 경우에는 채권단 모두가 채무조정안에 동의할 경우에만 자금 지원 등의 절차를 밟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채권단 내부에서 완전한 합의를 끌어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유동성 위기에 몰린 국가는 곧 파산에 이를 가능성이 매우 높았던 게 사실이다.
개선방안은 장차 채권자 51%가 동의할 경우 나머지 채권자들에 대해서도 채무조정안에 동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의사결정 과정에 신속성과 융통성을 부여하는 셈이다.
게다가 개선방안에는 현행 제도가 채권단 사이의 이해를 조정하는 IMF의 기능이 비대해지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특히 미국의 입김이 강하게 스며들어 있는 IMF 자체가 많은 경우에 있어 또하나의 채권단이기도 하다는 점에 비추어볼 때, 제도상의 모순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았기 때문이다.
국제사법위원회를 도입하자는 아이디어도 이런 사정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그간 부도 위기에 몰린 국가를 상대할 때 IMF는 판사와 배심원의 역할을 동시에 떠맡았던 게 사실이다.
개선안이 “모든 결정이 채권자들 손에서 이루어지도록 고안된 것”이라는 크루거 부총재의 설명은 이를 뒷받침한다.
IMF 운영방식을 둘러싼 공방은 지난해 11월 앤 크루거 부총재가 국제 외환위기에 대처하는 IMF의 방식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를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크루거 부총재는 기존 방식이 IMF에 과도한 부담을 가중시킬 뿐더러 부도 위기에 몰린 국가와 채권단 사이의 협상 가능성을 처음부터 제한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IMF가 주도하는 국제사법위원회를 신설할 것을 주장한 바 있다.
지난해 12월 1410억달러 규모의 외채에 대해 채무불이행을 선언한 아르헨티나 외환위기는 IMF 운영방식 개선 논의에 불을 댕긴 계기로 작용했다.
물론 기존의 IMF 운영방식에 대한 비판에는 세계 각국의 시민운동단체들도 힘을 보탰다.
이들은 국제사법위원회 혹은 유엔 산하의 별도기구가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협상을 중재하는 방안을 해결책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특히 이들은 IMF 운영방식을 개선한다는 논의가 자칫 모든 결정을 채권자의 손에 맡겨버리는 방식으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협상과정에서 채무자의 권리가 동일하게 보호받아야 한다는 점을 더욱 부각시킨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하지만 미국 정부를 중심으로 한 국제 금융계의 큰손들은 이와는 다른 이유에서 IMF 운영방식의 개선에 관심을 가진 게 사실이다.
당시 미국을 중심으로 크루거의 제안에 반대의사를 밝힌 측의 논거는 크게 두가지였다.
하나는 여전히 IMF에 과도한 부담을 지울 수 있다는 사실을 꼽을 수 있다.
IMF를 통해 부도 위기에 몰린 국가들에 무한정 자금을 지원하는 것을 반대하겠다는 생각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음은 물론이다.
또다른 논거는 국제사법위원회와 같은 별도 기구가 불필요하다는 더욱 ‘급진적인’ 주장이다.
다시 말해 모든 의사 결정은 오로지 채권단과 채무국 사이의 ‘자유로운’ 협상을 통해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과 닿아 있다.
특히 미국은 채무국과 채권단 사이에 장차 발생할지도 모를 협상 가능성을 규정하는 관련조항을 이미 국채 발행 당시에 명문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국제사법위원회와 같이 또하나의 거추장스러운 국제기구를 개입시키기보다는 한층 ‘시장 지향적인’ 계약관계를 분명히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논거를 편 셈이다.
미국 동의 없인 개선안 통과 힘들어 이 점에서 지난 1일 앤 크루거 부총재가 발표한 개선안은 지난해 11월에 밝힌 애초 주장에서 다소 후퇴해 중간 입장을 취한 것으로 읽을 수 있다.
IMF의 부담을 줄인다는 측면에서는 비판의견을 받아들였지만, 국제사법위원회라는 별도 기구를 두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계속 유지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앤 크루거의 수정된 개선안에 대해서도 반대의사를 밝히고 나섬에 따라 IMF 운영방식 개선을 둘러싼 공방이 장차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관심을 끌고 있다.
개선안이 통과되기 위해서는 183개 회원국 가운데 최소한 60% 이상의 국가들이 지지해 IMF 헌장을 수정해야 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IMF의 의사결정이 지분에 따라 이루어지고 미국이 최대 지분을 갖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볼 때, 미국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개선안은 통과되기 어려우리라는 게 분명하다.
존 테일러 미국 국제담당 재무차관이 즉각적으로 반대의사를 밝힌 이후 <워싱턴포스트>가 “IMF 위기 대처방안이 좌초되었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은 것도 이런 분위기를 잘 대변해주고 있다.
하지만 현행 IMF 운영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널리 퍼져 있는 이상, 공방전은 한층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4월20일부터 워싱턴에서 열릴 IMF 연례 춘계총회는 공방전의 향방을 가늠해볼 수 있는 무대가 될 게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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