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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품질 끝내주는 돈 팔아요
[비즈니스] 품질 끝내주는 돈 팔아요
  • 대전=한정희 기자
  • 승인 2002.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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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는 화폐 수출물량이 늘어나 창립 이래 최대인 2500만달러의 수출 실적을 기록했죠.” 한국조폐공사 수출팀 박탁서 과장은 수출성과를 자랑한다.
‘아니, 화폐수출이라니? 조폐공사에 수출팀이라구?’ 하며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조폐공사는 ‘대한민국의 화폐를 만들어 한국은행에 납품하는 공공기관’ 정도로 생각했던 사람이라면 ‘돈’을 수출한다는 사실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을 만도 하다.
사실 ‘화폐수출’이 조폐공사의 주요 업무 중 하나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원래 조폐공사에서 하는 가장 주요한 업무는 ‘한국은행권’을 만드는 것이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수표, 증지는 물론, 우표나 상품권, 기념주화, 기념메달, 여권, 심지어 주민등록증까지 만든다.
액면가치로 통용되거나 보안을 요구하는 이런 제품들은 기본적으로 위·변조를 막을 수 있는 특수 용지에 제작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조폐공사에서 도맡아 만들게 된다.
조폐공사의 화폐수출은 역사가 꽤 오래됐다.
이미 1973년 대만에 1원짜리 주화를 수출하기 시작한 이래 지난해까지 세계 21개국에 총 1억9626억달러(167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품목별로는 주화가 1억33만달러, 은행권 용지가 4642만달러, 은행권이 1352만달러, 증지가 829만달러, 기타 제품이 2475만달러 정도다.
최대 수출 국가는 대만으로 7207만달러, 그 다음이 필리핀으로 2355만달러다.
홍보팀 정성기 과장은 “세계 130여개국에서 화폐를 사용하고, 20~30여국에서 화폐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용지까지 완벽하게 만드는 나라는 10여개국 정도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돈을 만드는 과정은 높은 기술과 복잡한 공정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각 공정마다 까다로운 보안·심사과정을 거친다.
지폐용 종이의 원료가 되는 것은 순면이다.
질긴 고급용지여야 하기 때문이다.
방적창에서 쓰고 남은 실 보푸라기(낙면)가 들어온 이후부터 한국은행에 공급되는 완벽한 돈이 되기까지 전과정이 조폐공사의 업무가 된다.
지폐용지 제조의 가장 핵심적인 기술은 바로 위변조 방지를 위한 특수기술들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은선과 은화. 은선과 은화는 그냥 보면 나타나지 않으나 햇빛에 비춰보면 보이는 일정한 간격의 숨은 선과 숨은 그림이다.
이 은선과 은화를 종이에 삽입하는 과정은 정밀한 공정을 요구한다.
보통의 종이는 환망이라는 설비를 거치면서 은선과 은화가 삽입된 은행권 용지가 된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용지는 중량, 두께, 수분량 등 성분이 균일해야 하며, 은선 은화의 위치 등 규격이 한치의 오차도 없어야 한다.
박 과장은 “조폐공사는 이런 기술이 뛰어나 많은 나라에서 은행권 용지를 수입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조폐공사는 완성된 화폐를 수출하기도 한다.
이때는 해당 국가의 조폐기관에서 발행만 하면 쓸 수 있도록 완벽하게 만들어 납품한다.
그러나 완성된 화폐보다는 은행권 용지를 훨씬 더 많이 수입해간다.
주화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국가적 자존심이 걸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화폐 제작 입찰경쟁에서 수주를 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각 나라마다 요구하는 은선이나 은화가 다른데, 먼저 이를 잘 발현해내는 기술이 통과되어야 공식적인 입찰 참가자격을 얻게 된다.
은선과 은화가 들어간 용지 1장(전지)에는 각 나라 지폐의 크기에 따라 35장에서 50여장 정도의 지폐를 인쇄할 수 있다.
인쇄기술도 특수하다.
앞뒤 지문 인쇄작업을 수행하는 평판인쇄, 뒤 윤곽과 앞 윤곽을 따로 인쇄하는 요판인쇄, 평·요판 인쇄상태를 검사하는 전지검사, 그리고 번호와 인장을 인쇄하는 활판인쇄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이렇듯 특수한 기법과 정밀한 공정과정을 거치는 화폐는 수량에서 철저한 보안이 요구된다.
박 과장은 “공정이 넘어갈 때마다 수십번을 세어 수량을 체크하고 점검한다”며 “공정과정마다 누가 책임지고 일했는지 기록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길 경우에 어디에서 잘못된 것인지 다 알 수가 있다”고 말한다.
보통 은행권이 만들어지면 한국은행의 특별한 인장 등이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조폐공사에서 만들어지는 은행권은 공정상으로는 완벽한 돈이다.
단지 금통위에서 필요한 수량이 인가되면 그 수량만큼 유통되는 것뿐이다.
박 과장은 “수출하는 다른 나라의 은행권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한다.
일부에서는 유로화 특수 때문에 많이 덕을 봤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유로화 출범을 앞두고 일시적으로 수요량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이후 주문량이 줄었고 앞으로도 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유로화로 통합되기 전에는 각국의 조폐기관들이 자국의 수요에 따라 각자 생산했지만, 통합 이후에는 상호보완적인 형태로 업무를 단순화하고 있어 일감이 줄어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각국 조폐기관에 대한 통폐합 문제까지 논의되고 있는 실정이어서 앞으로의 전망은 더욱 좋지 않다.
박 과장은 “장기적으로 물량이 줄어들 것에 대비해 어떻게 기술력을 키워 시장에 파고들어야 할지가 관건”이라고 말한다.
현재 조폐공사에서는 기술개발과 새로운 상품개발에 특별히 전력을 다하고 있다.
조폐공사에서는 은선과 관련된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다.
햇빛에 비추면 은선이 색동색깔로 보이는 ‘색동은선’을 개발한 것이다.
러시아에서는 이미 특허를 받았고, 현재 미국, 영국, 독일에서 특허출원을 한 상태다.
조폐공사는 이러한 성과물을 바탕으로 내년에는 시장을 더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월드컵에 대비한 기념 주화도 개발해 월드컵 특수도 노리고 있다.
이미 2000년 3월에 개장한 전자쇼핑몰 koreamint.com은 지폐, 주화, 특수용지, 기념주화, 메달 등을 판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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