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7:03 (금)
[유럽] 가능성 커진 우파 집권 도미노
[유럽] 가능성 커진 우파 집권 도미노
  • 최우성 기자
  • 승인 2002.04.1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프랑스·독일 등 선거 앞둔 주요국서 보수파 약진… 유럽 통합운동의 후퇴 가져올 수도 어림잡아 3억명에 이르는 유럽인들에게 2002년은 50년 역사의 통합 운동 끝에 마침내 단일화폐 유로화를 탄생시킨 해인 동시에 ‘전후 가장 중요한 선거의 해’가 될 조짐이다.
올 한해에만 포르투갈,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등 주요 유럽연합 가맹국들에서 잇따라 선거가 치러지기 때문만은 아니다.
혼란스런 정치기상도를 드러내는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에서도 하루 아침에 정권이 뒤바뀔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올 한해 이어질 유럽 각국의 선거 퍼레이드에 그 여느 때보다도 눈길이 쏠리는 이유는 이들 선거가 1~2 년 전부터 유럽 대륙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흐름의 향방을 가늠하는 결정적인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데 대부분 의견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뉴스위크>, <슈피겔>, <이코노미스트> 등 주요 매체들은 한결같이 ‘오른쪽을 향해 부는 바람’을 올 한해 유럽 각국 선거의 가장 커다란 특징으로 꼽고 있다.
‘새로운 좌파’ 프로젝트 한계 드러나 1999년을 기준으로 유럽연합 15개 가맹국 가운데 13개 국가는 좌파 성향의 정부가 이끌고 있었다.
80년대에 전세계를 풍미했던 보수주의 열풍이 차차 힘을 잃기 시작한 90년대 중반 유럽 각국에는 커다란 변화의 바람이 휘몰아쳤던 탓이다.
그 바람은 80년대를 특징짓는 한축이었던 ‘대처리즘’이 마침내 종말을 고한 영국에서 시작돼, 좌파 성향의 리오넬 조스팽을 총리 자리에 앉힌 프랑스를 거쳐, 16년 동안 권좌에 머물렀던 헬무트 콜이 쓸쓸히 물러난 독일에 이르면서 정점에 달한 바 있다.
높은 실업률과 복지제도의 붕괴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신음하던 수많은 유권자들이 ‘제3의 길’, ‘새로운 중도’라는 슬로건에서 기꺼이 희망을 찾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에 발맞춰 ‘사회민주주의 시대’가 다시금 도래했다는 진단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년이 지난 지금, 불과 4~5년 전의 떠들썩한 분위기는 사그라졌다.
2000년 오스트리아에서 사민주의 성향의 집권당이 우파세력에 권좌를 넘겨준 이래, 지난 한해 동안에도 스페인, 이탈리아, 벨기에, 노르웨이, 덴마크의 국내 정치지형은 크게 변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어렵사리 재집권에 성공한 블레어 영국 총리의 지지율은 큰 폭으로 떨어진 상태다.
게다가 올해 선거를 앞두고 있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제2기 정권 창출 가능성은 현저히 낮게 나타나고 있다.
오는 5월15일 총선을 앞두고 있는 네덜란드나 9월에 총선 일정이 잡혀 있는 독일에서는 좌파 성향의 현 정권이 교체될 가능성을 점치는 목소리가 매우 높은 편이다.
이처럼 “복지정책 축소와 시장 절대주의 흐름에 반기를 들 역사적인 기회가 찾아왔다”는 불과 4~5년 전의 목소리가 하루 아침에 잦아들게 된 이유는 과연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하여 사회적 정의의 실현과 경제적 효율성을 동시에 달성하겠다는 토니 블레어, 게하르트 슈뢰더 등 새로운 좌파 프로젝트의 한계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라는 지적은 하나의 대답을 제공하고 있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경제회복이라는 분명한 성과를 보여주지도 못한 채, 여전히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고용안정, 복지정책, 공동결정 등 종래 좌파성향 정권의 상징이었던 핵심의제들이 정치무대에서 배제됨에 따라 전통적인 지지기반이 급속도로 등을 돌리게 된 것도 최근 몇년 사이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 가운데 하나이다.
주가 치솟는 극우파 정치인 그럼에도 유럽 각국의 정치무대를 한껏 달구고 있는 최근의 분위기를 단순히 종래의 좌·우 성향 정치집단 사이의 경쟁구도만으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은 눈여겨볼 만하다.
이러한 진단에는 유럽대륙에서 좌파 정권의 전반적인 퇴조 분위기와 맞물려 다른 한편에서는 더욱 극단적인 성향의 목소리가 사회 구석구석에 파고들고 있다는 판단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유럽대륙에서 ‘오른쪽을 향한 바람’을 강력하게 일으키고 있는 것은 종래의 우파정당이 아니라 이들보다 더욱 극단적인 목소리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0년 오스트리아의 극우주의자 외르크 하이더의 등장은 유럽 정치무대에 새로운 화두를 던지며, 최근의 흐름을 이미 분명하게 예견한 바 있다.
오는 5월 총선을 앞둔 네덜란드에서 현재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인물이 핌 포르튄이라는 한 극우 정치인이라는 사실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때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했고 사회학 교수와 텔레비전 토론 진행자를 거친 올해 54살의 포르튄은 동성애자로 알려져 있지만, ‘이슬람에 대한 냉전’을 공개적으로 밝힐 만큼 극우성향을 띠고 있다.
특히 그는 그 자신이 ‘몰락하는 문화’라 일컬은 바 있는 이슬람 세력의 유입으로부터 유럽대륙을 지켜내기 위해 빗장을 더욱 튼튼하게 걸어야 한다는 주장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종래 좌우 성향의 기성 정당들이 정치놀음을 벌이는 사이에, 범죄율이 급증하고 자국 문화에 쉽사리 동화하려 하지 않는 외국인 집단의 영향력이 점차 커졌다고 판단하는 유권자들은 그의 목소리에 열렬히 화답했다.
지난 3월초에 실시된 지방의회 선거에서 그의 이름을 딴 ‘포르튄 리스트’는 로테르담 한곳에서만 35%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18% 이상의 지지를 얻은 포르튄 리스트는 최근 여론조사 결과 선두를 바짝 뒤쫓는 2위를 기록하며, 오는 5월 총선에서 기성 정당을 위협할 가장 강력한 도전자로 꼽히고 있다.
지난해 하원의원 선거에서 극우성향의 영국민족당(BNP)에게 표를 몰아준 영국도 예외는 아니다.
‘영국 제1주의’를 전면에 내걸고 있고, 실업률과 외국인 비율이 높은 맨체스터 등지에서 10% 이상의 지지를 받은 영국민족당은 5월초에 열릴 지방의회 선거에서도 파란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4년 전 전후 최초로 좌파정권을 출범시켰던 이탈리아에서도 정치지형은 180도 뒤바뀐 지 오래다.
기성 정당들에 대한 불만의 틈새를 움베르토 보시가 이끄는 ‘북부동맹’이나, 공개적인 무솔리니 찬미자 지안프랑코 피니가 이끄는 ‘민족연합’이 급속도로 파고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현 정부의 극우성향 조치들에 반대하는 시위를 위해 전후 최대 규모인 200만 이상의 인파가 거리로 뛰쳐나온 이탈리아의 사례는 정치지형이 얼마만큼 오른쪽으로 기울어 있는지를 고스란히 반증해준다.
대부분의 언론들은 무엇보다도 프랑스와 독일의 선거결과가 앞으로 유럽대륙 정치지형의 향방을 좌우할 가능성이 무척 높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유럽연합 가맹국 가운데 두나라가 최대 인구 보유국일 뿐 아니라, 그 영향력 면에서도 여타 가맹국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4월과 5월에 걸쳐 대통령 선거와 총선이 연이어 열리고 독일은 극우 성향의 주장들을 거침없이 뱉어내는 에드문트 슈토이버 바이에른 총리가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보이고 있다.
유럽통합 중심축 독일·프랑스 연대 균열? 하지만 이처럼 극우 성향의 목소리를 둘러싸고 유럽 각국을 달구고 있는 공방의 파장이 단지 해당 국가 차원을 넘어 유럽 통합 운동 그 자체에까지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더욱 중요하다.
한편에서 유럽 단일화폐가 도입되고 유럽헌법의 제정을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하는 것과는 달리, 다른 한편에서는 유럽 통합의 미래상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더욱 거세게 제기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벌써부터 독일 선거전을 달구고 있는 슈토이버 바이에른 총리가 유로화를 일컬어 공개적으로 ‘에스페란토 화폐’라 부르고 있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같은 주장은 단지 독일어를 보완하는 정도에서만 에스페란토어가 의의를 지니듯, 유로화 역시 마르크화를 보완하는 기능만을 담당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마르크화는 영원히 존속해야 하며, 마르크화를 대체하는 유로화 도입 조치는 철회해야 한다는 속내를 공개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유럽 통합에 반대하는 움직임은 프랑스에서도 예전보다 더욱 거센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올해 초 프랑스 국적의 유럽연합 무역위원회 위원인 파스칼 레미는 기존의 유럽 통합 운동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내용의 미공개 보고서를 프랑스 정부에 제출한 바 있다.
그가 조스팽 총리의 핵심 브레인이라는 점에서 이 사건은 한때 유럽에서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같은 일련의 발빠른 움직임들은 가맹국가들 사이의 느슨한 연대관계 선에서 유럽 통합 운동을 마감해야 한다는 기존의 통합 반대 세력의 입지를 더욱 강화해주고 있는 게 사실이다.
올 해 초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가 “프랑스가 점차 영국을 대체하는 최대의 유럽 통합 반대자로 등장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린 것도 이런 사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와 함께 그간 유럽 통합 운동을 이끌었던 독일-프랑스 연대가 이미 깨어진 지 오래라는 분석이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자칫 지난 50년을 끌어온 통합 운동은 무게중심을 잃은 채 개별국가의 이해관계에 따라 큰 폭으로 흔들릴 가능성이 그만큼 커졌다고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역외지역 이주민에 강한 반감 한편, 유럽연합 가맹국들 내부의 정치지형이 장차 유럽연합에 가입하려는 동유럽 국가들에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오스트리아에서 외르크 하이더가 이끄는 자민당이 인근에 자리잡은 체코의 핵발전소를 들먹이며 체코의 유럽연합 가입반대 의사를 강하게 밝히고 나선 것은 상징적인 사례로 받아들여진다.
역외지역으로부터의 이주민을 더욱 강력하게 제한하려는 목소리는 동유럽국가들을 유럽연합으로 끌어들이지 않으려는 움직임과 자연스레 포개질 수 있기 때문이다.
2002년 한해가 장차 유럽 통합의 큰 향방을 가늠할 것이라는 데 대해서는 아무도 생각을 달리하지 않는다.
다만 유로화의 도입과 함께 커다란 희망을 안고 출발한 2002년이 마침내 유럽 통합 운동의 수레를 한층 진전시킨 해로 기억될지 아직은 불투명하다.
“장차 유럽대륙의 지도가 어떻게 바뀔지는 올해 치러질 일련의 선거 퍼레이드가 좌우할 것”이라는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의 지적은 유럽 각국의 선거에 담긴 의미를 더욱 뚜렷하게 드러내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