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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IMF, 피도 눈물도 없다”
[아르헨티나] “IMF, 피도 눈물도 없다”
  • 최우성 기자
  • 승인 2002.04.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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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 위기 아르헨티나에 개혁조치만 강요… 경제회생 시킬 신규 자금지원엔 인색 “7년 전에도 하지 못했던 일을 4월 한달에 모두 해치우라고 우리에게 요구하지 말라!” 지난해 12월 이래 엄청난 금융혼란에 빠져 있는 아르헨티나 내부에서 최근 국제통화기금(IMF) 중심의 국제 금융 질서에 대한 반발이 점차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지난 4월17일 IMF 연례총회 참석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 아르헨티나의 조르쥐 레니코프 경제장관은 IMF로부터 신규 자금 지원이 없는 한 IMF가 바라는 개혁 조처들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을 미국 정부 당국자와 IMF쪽에 강력히 전달했다.
특히 그는 중앙은행이 통화시장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거나, 지방정부가 부채를 갚기 위해 독자적으로 유사화폐를 발행하는 일을 금지해야 한다는 IMF의 요구에 대해서도 공식 실업률이 20%를 훨씬 넘어선 현재 상황에서는 의미가 없는 주장이라고 맞받아쳤다.
레니코프 장관은 앞서 15일에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IMF가 신규자금 제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거듭 촉구했다.
레니코프는 인터뷰에서 IMF의 강경한 조처에 대한 아르헨티나 내부의 반발 목소리를 언급하면서 “개혁조처 가운데는 바다가 고요해질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것들도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IMF 당국자들을 향해 “경제위기 한가운데에 있는 아르헨티나가 막상 취할 수 있는 개혁조처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셈이다.
지난 11일 아르헨티나 정부는 IMF가 신규 자금 지원에 동의하지 않는 한 IMF와의 채무 재조정 협상을 잠정적으로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신규 자금 지원에 난색을 보이고 있는 IMF를 밀어붙이기 위해 압박카드를 들이민 셈이다.
애초 아르헨티나 정부는 올해 말까지 모두 1410억달러에 이르는 채무 재조정 협상을 국내외 국채 채권자들과 벌일 예정이었다.
S&P, 지방정부 ‘선택적 디폴트’ 판정 이처럼 최근 들어 아르헨티나 내부에서 IMF의 정책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부쩍 탄력을 받게 된 데는, 지난해 말 경제위기가 닥친 이래 국내 경제상황이 거의 마비 지경에 이른 참담한 현실이 놓여 있다.
게다가 취임 100일을 갓 넘긴 현 정부로서는 그간 IMF와의 신규 자금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국내경제가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자 강력한 충격요법을 구사할 필요성을 절감했다는 사실도 한몫 했다.
실제로 수많은 아르헨티나 기업들은 지난 1월 정부가 1410억달러에 이르는 채무에 대해 지급유예를 선언한 이래 신용위기에서 여전히 헤어나오지 못한 채 고사상태에 빠져 있다.
이 기간 미국 달러 대비 페소화의 가치는 거의 60% 가량이나 떨어졌다.
올해 들어 조금 수그러들던 페소화 가치 하락 추세는 지난달 중순을 고비로 더욱 가팔라지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1980년대 후반 불과 한달 사이에 물가가 200%나 뛰어올랐던 초인플레이션을 경험한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악몽의 시나리오가 또다시 눈앞에 펼쳐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올해 초 현 정부가 달러와 페소화를 1 대 1로 교환하던 종래의 페그제를 폐지한 이후, 대부분 아르헨티나 국내의 공공서비스 부문에 진출해 있는 미국계 기업들의 수익성이 눈에 띄게 나빠짐에 따라 이들이 전력, 가스 등 공공서비스의 가격을 큰 폭으로 올렸기 때문이다.
수십년 전부터 아르헨티나에 진출한 이들 미국계 기업들은 페소화의 가치가 하락하면서 달러화 표시 부채 부담이 커지자 이를 공공서비스 가격 인상으로 만회하기 위해 정부당국에 압력을 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출구가 보이지 않는 현 상황을 반영하듯 11일 미국의 신용평가기관 스탠더드&푸어스(S&P)는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지방정부의 신용등급을 기존의 CCC+에서 실제적으로는 파산상태를 뜻하는 ‘선택적 디폴트’(SD) 단계로 떨어뜨린 데 이어, 2억5천만달러에 이르는 채권등급에 대해서도 같은 등급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IMF 신규 자금지원이 유일한 대안 이런 와중에 엄청난 인플레이션과 소요사태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외부로부터 신규 자금이 유입되는 것밖에 없다는 공감대가 급속하게 퍼지게 된 건 당연하다.
“가능한 한 이른 시일 안에 IMF와의 협상에 성공하는 것말고는 다른 아무런 대안도 없다”는 레니코프의 말에는 이런 절박함이 짙게 묻어 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설령 경제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파산에 이른 지방정부를 지원하고 국내 민간부문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당장 상당한 규모의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는 달리 IMF는 아르헨티나 경제의 내부 구조개혁이 먼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추가로 신규 자금 지원은 절대로 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해 12월의 금융위기 이후 두차례에 걸쳐 모두 280억달러 규모의 긴급자금이 투입되었음에도 아르헨티나 경제가 여전히 고사상태를 벗어나오지 못하는 것은 철저한 구조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기본입장에서 한발짝도 물러나지 않고 있는 셈이다.
물론 IMF가 여전히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는 데는 최근 IMF 개혁논의에서 불거졌듯이 IMF의 신용제공 능력 자체가 의문시되고 있는 현실도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국제 금융 질서의 속성상 언제라도 아르헨티나 사태와 같은 사례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부도위기에 빠진 국가에 무한정 긴급 자금을 제공할 수는 없는 탓이다.
이달 초 아르헨티나의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아르헨티나를 방문한 IMF 대표단은 IMF가 신규 자금 지원을 검토하기에 앞서 몇가지 중요한 조처들이 분명하게 선행돼야 한다는 메시지를 아르헨티나 정부당국에 다시 한번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IMF가 요구한 조처 가운데는 아르헨티나에서 시장질서가 원활하게 작동되도록 새로운 파산법을 제정하는 문제도 포함돼 있다.
실제로 지난주 초에는 은행들이 법적 소송을 통해 파산을 지연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놓고 현 정부 내에서도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직접적 계기는 에두아르도 두할데 대통령이 이런 내용을 담은 법안이 행정부로 이송될 경우 거부권을 행사해야 하는가의 문제였다.
현재 이 조항이 급속한 예금인출 사태를 막아줄 것이라는 입장과 구조개혁을 진척하기 위해 신속한 파산절차가 필요하다는 입장 사이에서 완전한 의견 조율은 되지 않은 상태다.
소요사태 재발 가능성 높아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최근의 아르헨티나 상황이 또 한차례 대규모 소요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을 높게 해준다는 사실을 계기로 아르헨티나 사태의 해법을 새롭게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조심스레 고개를 들고 있다.
레니코프 장관이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지금과 같은 폭동 직전의 상황에서 또다시 50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길거리로 내몰아야 한다면 그건 아마 미친 짓거리일 것”이라는 공감대가 조금씩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지난주 초 공개된 시티그룹의 1분기 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이 세계적인 금융그룹 역시 아르헨티나 사태의 여파로 1분기 동안에만 8억6천만달러 가량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아르헨티나 경제 위기의 파급력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짐작케 해주는 좋은 사례다.
IMF가 현 상황을 좀더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아르헨티나 정부당국과의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고개를 드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 말부터 본격화한 아르헨티나 사태는 현재 꾸준히 진행되고 있는 IMF 개혁논쟁과 맞물리면서 다시금 그 해법을 둘러싸고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당길 게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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