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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추락하는 유선통신 ‘부활의 노래’
[비즈니스] 추락하는 유선통신 ‘부활의 노래’
  • 이희욱 기자
  • 승인 2002.05.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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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유선기반 데이터 서비스 ‘리빙넷’ 도입…주부·노인층 겨냥 수익 창출 노림수 승부처임을 직감한 KT가 조용히 착점을 했다.
‘통신업계’란 반상에 잔잔한 변화의 물결이 일렁인다.
대마불사란 말을 믿고 KT가 자기의 대마인 유선통신 사업 살리기에 나선 것이다.
KT의 승부수는 지난 4월1일부터 시작한 리빙넷 www.ktlivingnet.com 서비스다.
국내 기간통신 사업자로서 자존심을 지켜온 KT지만 이동통신 업체들의 그칠 줄 모르는 고속성장 앞에선 내심 불안한 심정을 감출 수 없었던 탓이다.
KT가 선보인 ‘리빙넷’은 휴대전화나 PC 없이도 유선전화에 부착된 액정화면을 이용해 e메일 송수신은 물론 단문전송(SMS)과 인터넷 접속을 할 수 있는 유선 데이터통신 서비스다.
이것은 지난해 6월 일본의 통신업체 NTT가 선보인 ‘L모드’를 응용해 만든 것으로 인터넷 뱅킹과 같은 금융 서비스와 뉴스, 날씨 등의 생활정보를 비롯해 지하철 노선도나 지도 검색 등 교통정보를 제공한다.
e메일이나 팩스는 음성통화와 마찬가지로 3분당 39원, 단문전송은 1회당 25원씩의 요금이 부과되며, 리빙넷 사이트에 접속해 정보를 검색할 때는 5분7초마다 41.6원이 부과된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액정화면이 달린 전용 전화기를 구입해야 한다.
한단계 발전된 서비스로 시장확대 얼핏 보면 ‘유선전화를 이용해 인터넷에 접속해 정보를 검색한다’는 발상이 이해하기 어렵다.
집집마다 PC가 보급돼 있는데다 휴대전화나 개인정보단말기(PDA)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속속 등장하고 있는 마당에 굳이 유선전화를 이용할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 때문이다.
물론 유선통신 사업자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휴대전화를 앞세운 무선통신 서비스가 유선통신 서비스의 수익을 앞지른 지는 이미 오래다.
그중에서도 음성 서비스 위주의 유선전화 부문은 더욱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1997년 3조3100억원이던 이동전화 매출액은 98년 5조3200억원으로 껑충 뛰며 5조2400억원인 유선전화의 매출액을 앞질렀다.
지난해에는 이동전화 매출액이 12조6700억원으로 유선전화의 3배까지 뛰어올랐다.
가입자 수 또한 99년부터 역전됐다.
게다가 음성 데이터 위주의 유선통신과 달리, 초고속 통신망을 앞세운 유선 데이터 통신 서비스가 급속히 성장하면서 유선전화 시장은 갈수록 설자리를 잃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KT가 리빙넷 서비스를 통해 유선통신을 음성 중심에서 데이터·멀티미디어쪽으로 자연스레 이동함으로써 부가가치를 높이려고 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선택이다.
KT 마케팅본부 통화사업팀 박래안 팀장은 “주부나 노인층과 같이 PC 사용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가정용 전화를 이용해 간단한 정보를 검색하거나 단문 메시지를 전송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전화선 서비스에 맞게 텍스트 중심의 저용량 데이터 정보를 제공하므로 PC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유선통신의 질을 높이는 것”이라고 리빙넷 서비스의 지향점을 설명했다.
결국 PC나 모바일 기기와 경쟁을 벌이는 게 아니라 광대한 유선통신 보급망을 활용한 틈새시장을 뚫겠다는 뜻이다.
박래안 팀장은 “리빙넷 전용 전화기는 행정부서나 도서지역 등에서 공지사항을 전달하는 데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기업체에선 통합고객관리(CRM)의 툴로 쓸 수도 있다.
단말기 보급이 300만대를 넘어서면 본격적인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라며 적극적인 프로모션 의지를 밝혔다.
기간통신 사업자인 KT가 리빙넷을 앞세워 유선통신의 부활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이런 KT의 시도가 성과를 거두려면 무엇보다도 단말기 보급이 확대돼야 한다.
리빙넷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전용 단말기, 즉 액정화면과 모뎀이 내장된 전용 전화기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리빙넷 전용 전화기를 생산하는 업체는 삼성전자와 LG전자, 큐라이프 등 세곳이다.
차세대 가정용 전화기 새바람 기대 가장 먼저 제품을 출시한 곳은 삼성전자. 3월말부터 시판에 들어간 삼성전자의 리빙넷 전용 전화기는 기존 전화기에 터치스크린 방식의 액정화면이 부착된 형태로, 인터넷 접속과 단문전송을 할 수 있는 버튼이 달려 있으며 발신자표시(CID) 기능이 내장돼 있다.
일반 유선전화기보다는 다소 비싼 가격인 26만원에 시판되고 있다.
큐라이프는 유무선 복합 전화기 형태의 단말기를 4월말, LG전자는 5월초에 각각 시판할 예정이다.
KT의 리빙넷 서비스에 맞춰 전용 단말기를 내놓긴 했지만, 이들 업체가 내심 기대하는 건 유선전화기 판도의 변화다.
10년이 넘도록 기능이 크게 바뀌지 않은 유선전화기를 이번 기회에 한단계 업그레이드함으로써 가전시장에서 유선전화의 주류를 바꿔보겠다는 구상인 것이다.
휴대전화가 PCS의 등장과 함께 보급이 확산되고 소형화에 성공하면서 짧은 시간에 비약적인 하드웨어 발전을 가져온 반면 유선전화는 10년이 넘도록 기능상의 큰 변화 없이 만성적으로 유통돼왔다.
화상전화와 같은 새로운 기능의 제품이 나오긴 했지만 비싼 가격 때문에 얼마 못가 시장에서 퇴출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리빙넷 서비스가 시작되면서 데이터 정보검색이 가능한 유선전화를 내놓음으로써 기존 유선전화를 데이터 통신이 가능한 신개념의 유선전화로 대체하겠다는 게 단말기 제조업체의 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업체는 데이터 통신용 전화기가 PC와는 다르다는 점을 부각하려 애를 쓰고 있다.
자칫 이 제품이 ‘인터넷 접속과 정보검색이 가능하므로 PC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4월말 리빙넷 전용 유무선 복합 전화기를 출시할 예정인 큐라이프 김승범 이사는 “리빙넷 서비스에 발맞춰 출시되는 데이터 통신용 전화기는 PC가 아니라 가전제품인 ‘전화기’다.
강력한 기능에 화려한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PC와 달리 기존 전화기에 텍스트 중심의 생활정보를 추가로 제공하는 것”이라고 제품의 초점을 전화기에 맞췄다.
PC와 경쟁하는 게 아니라 가정용 전화기와 경쟁을 벌이겠다는 게 이들 업체의 전략이다.
그 근거로 이들 업체는 2000년에 PC와 전화기의 기능을 합한 ‘웹폰’이 출시됐다가 실패한 사례를 꼽는다.
당시 인터넷 붐을 타고 가정용 전화기에 인터넷 접속 기능을 추가한 ‘미디어아이’란 제품이 시중에 나온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제품은 초고속 통신망을 기반으로 웹폰을 이용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전화기 기능보다는 PC 기능에 치우침으로써 100만원에 육박하는 비싼 가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실패했던 것이다.
그래서 단말기 제조 3사는 ‘이번 제품이 PC라는 인식을 심어주면 실패할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해부터 발신자표시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가정용 전화기가 매출 확대의 기회를 잡았다는 점도 이들 3사가 이번 제품에 기대를 거는 이유 중 하나다.
발전하는 통신기술이 유선전화에도 도입될 시점이 됐다는 것이다.
유선전화에 그치지 않고 무선 기능이 포함된 복합 전화기를 출시해 가정용 전화기에 맞먹는 경쟁력을 갖추려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정용 전화기는 한번 사면 쉽게 바꾸는 제품이 아니기 때문에 단말기 제조업체는 새로운 제품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 혼수시장과, PC나 휴대전화의 데이터 서비스에 익숙지 않은 가정주부나 노인층, 그리고 기업시장을 대상으로 제품을 집중 판매하겠다는 계획이다.
김승범 이사는 “터치스크린 방식의 액정이 추가되면서 기존 전화기보다 가격이 다소 비싸질 듯하다.
초기에는 30만원대 후반의 가격으로 제품이 출시되겠지만 올해 말까지 유무선 전화기 수준인 30만원대 초반까지 가격을 내릴 계획이다”며 가격경쟁력을 확보해 일반 전화기 시장을 대체하겠다고 밝혔다.
사람들의 이목이 이동통신 서비스로 쏠리면서 어느새 유선통신 분야는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로 퇴색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유선통신은 국가 기간망으로 아직까지 중요성을 잃지 않고 있다.
KT가 리빙넷 서비스로 유선전화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면, 단말기 제조업체는 차세대 가정용 전화기로 시장을 평정할 야심에 차 있다.
유선통신 서비스를 둘러싸고 통신업체와 제조업체는 지금 두마리 토끼를 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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