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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은행과 사채 사이 ‘서민의 금융’
[비즈니스] 은행과 사채 사이 ‘서민의 금융’
  • 장승규 기자
  • 승인 2002.05.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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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저축은행, ‘부실의 대명사’ 오명벗기 안간힘… 새로운 수익모델 개발 ‘발등의 불’ 부실 금융기관의 대명사였던 신용금고가 상호저축은행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지난 3월1일부터 ‘상호신용금고’의 이름이 ‘상호저축은행’으로 변경된 것이다.
고객관리를 위한 전산시스템 도입 등 은행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한 노력도 뒤따르고 있다.
이번 명칭변경은 상호저축은행 업계에 남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오랜 숙원의 실현일 뿐만 아니라, 지난 3년간 진행된 고통스런 구조조정을 마무리짓는 상징적 조처이기 때문이다.
2000년 후반만 해도 상호저축은행 업계는 잇따른 불법대출 사건으로 공멸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IMF 외환위기 이후 2금융권에서 예금이 빠져나가는 어려움을 겪은 데 더해 정현준(10월22일)·진승현(11월23일) 사건이라는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정현준 한국디지탈라인 사장이 동방 상호신용금고와 대신상호신용금고에서 2200억원을, 진승현 MCI코리아 부회장이 열린상호신용금고에서 2300억원을 불법 대출받아 기업인수와 주가조작에 사용한 사실이 밝혀졌다.
자질이 부족한 사채업자들이 공적 성격을 지닌 금융기관을 개인금고처럼 주무른다는 세간의 인식이 다시 한번 확인되자 불안해진 예금주들이 무더기로 예금을 뽑아갔다.
12월9일 업계 3위이던 동아금고의 영업정지 이후 예금인출액이 하루 1500억원을 넘어서면서 위기감이 절정에 달했다.
뒤이어 부실 신용금고의 퇴출이 줄줄이 이어졌고 대규모 공적자금 투입되었다.
1997년 231개이던 업체 수는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현재 121개(영업정지중인 6개 업체 포함)로 절반 가까이 줄어든 상태다.
그러나 혹독한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은 상호저축은행들은 새로운 도약을 준비할 수 있었다.
때마침 찾아온 저금리가 도움이 됐다.
유리한 금리를 찾아 은행권을 빠져나온 시중자금이 상호저축은행으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상호저축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의 금리는 은행(5% 내외)보다 높은 6.5~6.8%였고, 한시적으로 판매하는 특판상품의 경우는 이보다 금리가 더 높았다.
여신부문에서는 일본 대금업체를 벤치마킹해 2001년 3월 선보인 소액신용대출 상품이 효자노릇을 했다.
은행을 찾기에는 신용도가 낮고 대금업체의 고율 이자에 부담을 느끼고 있던 대기수요가 이 상품에 대거 몰려들었다.
틈새시장 공략에 성공한 것이다.
시중은행보다 높은 예금금리를 유지하기 위해 마땅한 자금 운용처를 찾고 있던 상호저축은행의 요구에도 잘 맞아떨어졌다.
소액신용대출은 연 28~60%의 높은 이자율로 고수익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할부금융사, 신용카드사, 대금업체에 이어 일반 은행까지 소액 신용대출 시장에 뛰어들면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저금리라는 유리한 영업환경도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상황이다.
새로운 수익모델 개발이라는 과제가 새옷을 갈아입은 상호저축은행의 발등에 떨어진 것이다.
이문성 푸른상호저축은행 기획실 과장은 “경기회복과 함께 기업여신을 늘리고 있으며 프로젝트 파이낸싱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며 “서서히 무게중심을 이동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4월17일 전환효과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등 들뜬 분위기이던 상호저축은행에 ‘상호저축은행’을 ‘저축은행’으로 줄여 쓰지 말라는 금융감독원의 경고가 날아들었다.
일반은행과 상호저축은행간의 구분을 분명히 하고 나선 것이다.
72년 사채시장 양성화 조처의 일환으로 탄생할 때부터 상호저축은행(당시 상호신용금고)은 사채시장과 은행 사이에서 그 성격이 애매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한구 금융감독원 비은행감독국 상호저축은행감독팀장은 “상호저축은행은 은행과 사채시장의 중간에 위치해야 한다”며 “5천만원까지 예금을 보장해주고 이자도 높아 서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강조한다.
이 팀장은 “상호저축은행의 건전성과 안정성 강화를 위해 대형화를 유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기헌 저축은행중앙회 기획부장은 “대형화가 가능한 업체는 대형화로 가겠지만 그렇지 않은 업체는 지역 여건에 밀착해 살아남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면 장기적으로는 “IMF 이후 축소된 지방은행의 역할을 일정 부분 떠맡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다가오는 6월 결산에서 대부분의 상호저축은행이 흑자 전환에 성공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단기 전망은 밝은 편이다.
그러나 상호저축은행이라는 새로운 이름의 내실을 채워나가는 것은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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