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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진로 소주
[명품] 진로 소주
  • 윤광준/ 사진작가
  • 승인 2002.05.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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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정서가 담긴 술 도쿄의 술집에 들르게 되면 보이는 것, 키핑된 여러 위스키나 꼬냑 사이에 끼어 있는 진로 소주다.
우리나라에선 가장 값싼 술로 우습게보았던 것 아닌가. 이 소주가 평소 한번 마셔보았으면 하고 소망하던 세계 유명 브랜드의 술과 함께 있는 것이다.
아니! 소주도 키핑이 되나 ? 소주를 얼음에 타 마시는 미즈 와리는 일본인이 즐기는 음용법이다.
우리나라에서 소주를 이렇게 마시는 사람은 거의 없다.
소주의 용도가 위스키와 같을 수 있다는 이 놀라운 사실은 나의 고정관념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본토에서 대접받고 있지 못한 것이 정작 다른 나라에서 인정받는 경우는 꽤 있다.
소주가 그 가운데 하나다.
해외여행을 오래 해본 사람이라면 시간이 지나면서 소주 생각이 간절해진 경험을 갖고 있을 터이다.
무색무취무미의 이 심플한 술은 고국을 연결시키는 가장 강렬한 기억의 환기수단이 된다.
해외에 나가서야 비로소 그 가치를 알게 되는 소주는 자신이 한국인이란 사실을 새삼 인식하게 한다.
너무나 흔해서 우리가 소주를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소주는 우리가 알고 있는 값싼 화학식 술이 아니다.
곡물을 원료로 만든 주정에 물을 타 희석시킨 것이 소주다.
소주의 원액은 위스키와 같다.
그 다음의 제법에 따라 증류식과 희석식 소주로 갈리게 된다.
소주의 고유한 맛과 향을 살리기 위해선 당연히 증류식이 좋을 것이다.
이 제법은 많은 양을 만들 수 없으므로 그 가격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소주가 위스키의 값만큼 비싸다면 이를 사서 마실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을까. 우리가 값싸게 소주를 사서 마실 수 있는 것은 희석식 제법 때문이다.
내가 알기론 세계에서 가장 값싼 보드카(보드카의 제법도 소주와 같다)는 소주다.
우리나라의 세법은 국민의 술인 소주에 상대적으로 적은 세율을 매겨 싼값으로 공급하게 했다.
생산원가 대비 판매가는 놀라울 정도로 싼 것이 소주다.
이 나라에 사는 혜택 가운데 하나가 값싼 소주 값이란 사실을 알고 있는지. 이 정책이 국민을 위하는 것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소주 마셔 죽었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으므로 국가의 역할은 그런 대로 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소주의 대명사는 역시 진로다.
치열한 경쟁에 살아남기 위해 품질을 높여간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소주를 마셔본 외국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괜찮은 술이라 인정해줄 때 기분 좋아진다.
우리나라를 기억하게 하는 진로의 존재는 중요하다.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세계의 진로를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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