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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디지털 라이프 부럽죠”
[비즈니스] “디지털 라이프 부럽죠”
  • 박효상/ <한겨레> 경제부
  • 승인 2002.06.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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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네트워크 시장 활성화 원년 기대… “최후 승부처” 가전업체 치열한 경쟁 “인터넷 냉장고에 달린 15인치 액정화면 위로 e메일이 수신됐음을 알리는 알람과 함께 메시지가 뜬다.
‘엄마, 오늘 내 생일인 거 알지? 오후 5시쯤 친구 4명과 함께 갈게.’ 점심시간을 이용해 중학교 3학년인 딸 한결이가 휴대전화를 이용해 메일을 보낸 것이다.
임권택 감독의 신작 DVD 취화선을 홈 시어터(가정용 극장)로 보느라 정신없던 나행복(44)씨는 곧 생일잔치 준비에 들어갔다.
한결이가 좋아하는 잡채와 음식을 만들기 위한 각종 재료와 케이크, 그리고 생일선물을 인터넷 쇼핑몰에 주문하자 두시간도 안 돼 배달됐다.
나행복씨는 냉장고로 다운로드한 조리법을 전자레인지로 전송하고, 준비한 재료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스위치를 누르자 5분도 안 돼 맛있는 잡채가 완성됐다.
인터넷의 도움으로 다른 음식도 어렵지 않게 만든 후, 나행복씨는 영화를 다시 보며 한결이 오기를 기다린다.
” 먼 미래의 일쯤으로나 여겨지던 ‘꿈의 가정’이 현실화하고 있다.
‘서민’들은 엄두를 내기 어려운 제품 가격 때문에 아직은 초기단계지만, 가정내 모든 전자·전기제품들을 하나의 그물망으로 엮어 언제 어디서나 자유자재로 조정하는 것은 이미 현실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홈 네트워크(Home Network)란 가정에서 사용하고 있는 모든 전자·전기제품을 네트워크로 연결해, 유·무선을 통해 쌍방향 통신이 가능한 미래형 가정시스템을 말한다.
가전제품끼리 데이터 송·수신을 통해 기기간 정보교류는 물론 원격제어와 보안에 이르는 첨단기능을 자동으로 조절하고 제어한다는 점에서, 단순히 원격조종 기능만을 갖춘 홈 오토메이션(Home Automation)과는 차별화된다.
예컨대 홈 네트워크 시스템이 갖춰지면 냉장고는 떨어진 물건을 파악해 스스로 가게에 배달주문을 넣고, 고장난 텔레비전은 스스로 대리점에 연락해 원격으로 수리받을 수 있게 된다.
또 세탁기는 세탁물의 종류에 따라 적절한 세탁법으로 알아서 작동하고, 더운 여름날 쇼핑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기 전에 휴대전화로 에어컨을 미리 가동시킬 수도 있다.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만 제역할을 하던 가전제품들이 홈 네트워크 시대에는 생명력 있는 지능형 정보기기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특히 디지털 가전과는 달리 부가가치가 낮아 그간 사양산업으로 치부돼온 백색가전산업이 다시 각광받기 시작한 것도, 따지고 보면 홈 네트워크 시장의 무한한 성장 가능성에 기인하고 있다.
시장조사 기관인 캐너스인스탯그룹은 전세계 홈 네트워크 장비 시장만 2001년 14억달러에서 2006년 92억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도 국내 관련시장이 2004년 50조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보고 있어, 말 그대로 홈 네트워크 시장은 ‘황금알 시장’으로 인식되고 있다.
국내 업체, 세계시장서 ‘한수위’ 홈 네트워크가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가전업체들의 시장 선점 경쟁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가전업체들의 최후 승부처는 홈 네트워크 시장이 될 것”이라는 관측에 아무도 토를 달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고무적인 것은 LG전자·삼성전자 등 국내 가전업체들이 세계 최초로 인터넷 가전을 출시하고 홈 네트워크 상용화에 성공하는 등, 홈 네트워크에 관한 한 세계 유수의 가전업체들에 견줘 한발 앞서 있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디지털 가전과 정보통신기기, 초고속 인터넷 등 홈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요소기술에서 비교우위를 갖고 있어, 디지털 융·복합화(컨버전스)에 유리하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2년 전 세계 최초로 인터넷 냉장고를 출시한 LG전자는 국내에서의 비교적 오랜 사업경험에서 나온 자신감을 바탕으로 해외시장 공략에 본격 착수했다.
LG전자는 지난달 영국과 멕시코에서 인터넷 가전제품 발표회를 잇따라 열고 냉장고·에어컨·드럼세탁기·전자레인지 등의 인터넷 가전을 공식 판매하기 시작했다.
LG전자는 에어컨의 경우 내년까지 전 모델을 인터넷 제품으로 바꾸고 식기세척기와 가스오븐레인지 등으로 품목을 확대하기로 했다.
또한 경기도지역에 50세대 규모의 아파트에 홈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등 홈 네트워크 붐 형성에 주력하고 있다.
LG전자 가전부문 해외마케팅팀장 황경석 상무는 “영국과 멕시코 외에 내년 초까지 각 대륙별 전략지역을 골라 해외시장 공략을 본격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가정에 이미 설치돼 있는 전력선을 이용해 별도의 배선 없이 네트워크가 가능한 에어컨·세탁기·냉장고·전자레인지와 홈 네트워크용 셋톱박스를 출시했다.
또 수지 삼성아파트 100가구를 대상으로 홈 네트워크 상용화에 세계 최초로 성공한 데 이어, 대구지역 480세대급 대단위 아파트 단지에도 홈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밖에 각종 디지털 기기들을 연결한 홈 네트워크 전시장을 홍콩에 열어 해외시장 진출을 위한 분위기를 다잡아나가고 있다.
삼성전자 진대제 사장은 “삼성전자는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전략적 제휴로 디지털 정보기기, 정보가전 제품 등을 함께 개발함으로써 편리하고 저렴한 차세대 디지털 홈 구축에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대우전자도 지난 2월 사람 목소리로 제어할 수 있는 음성인식 에어컨과 40GB 하드 드라이브 디스크가 내장된 퍼스널 비디오 레코더를 출시한 데 이어, 냉장고·세탁기 등 백색가전의 정보가전화에 주력할 방침이다.
그러나 GE와 월풀, 필립스, 스웨덴 일렉트로룩스, 일본 등 세계적인 가전업체들은 웹패드 등 홈 네트워크 관련 솔루션과 각종 인터넷 가전들을 개발하고는 있으나, 상용화 단계에 들어가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터넷 가전, 불붙는 표준화 전쟁 가전업체들의 인터넷 가전제품 개발경쟁과 함께 표준을 둘러싼 전쟁도 치열하다.
표준화 영역 중 가장 중요한 문제는 디지털 기기간 데이터 송수신 전송규격과 각 기기를 제어할 미들웨어 표준화인데, 현재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진영은 크게 3곳이다.
바로 △소니·필립스·파나소닉·히타치 등 8개 가전업체를 중심으로 하는 ‘하비’(HAVi) △마이크로소프트·인텔·쓰리콤 등 1천개사가 연합한 ‘유피엔피’(UPnP) △썬마이크로시스템스가 중심이 된 ‘지니’(Jini) 진영 등이다.
특히 하비와 유피엔피 진영간 경쟁은 플레이스테이션2와 엑스박스를 앞세워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할 정도의 승부를 펼치고 있다.
삼성전자는 홈와이드웹(HWW)이라는 미들웨어를 자체 개발했지만, 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전략적 제휴 이후 유피엔피와 결합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고, LG전자의 경우 자체 개발한 통신 프로토콜인 엘엔시피(LnCP)가 있지만, 주요 진영의 솔루션과도 호환성을 유지할 방침이다.
기술 표준과는 다르지만, 홈 네트워크의 중심축인 홈 서버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기기간 경쟁도 볼 만하다.
홈 서버란 집안의 가전제품이나 정보기기의 각종 정보를 모아 외부의 통신망과 연결하는 일종의 ‘정류장’이다.
LG전자는 백색가전과 영상가전의 홈 서버를 각각 구분해놓고 있다.
백색가전의 경우엔 24시간 가동되는 품목이 유리하다는 점에 착안해, 24시간 켜져 있는 냉장고를 홈 서버로 채택했다.
오디오와 비디오 등 영상가전을 제어하는 홈 서버로는 디지털 텔레비전을 염두에 두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는 특정 품목 대신, 리모컨 하나로 집안의 모든 디지털 기기를 제어할 수 있는 홈 네트워크 전용 셋톱박스를 개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회사는 마이크로소프트와 공동 개발중인 홈 네트워크 전용 서버(홈미디어센터) 개발이 완료되면, 이 제품을 홈 서버로 사용할 작정이다.
대우전자는 하드 디스크 드라이브를 내장한 고화질(HD)급 텔레비전을 홈 서버로 활용할 계획이고, 삼보컴퓨터는 피시를 홈 서버로 생각하고 있다.
또한 일본 파이오니어는 오디오 기기를, 소니는 게임기를, 마이크로소프트는 홈 서버 전용 PC를 각각 염두에 두고 있다.
아직 홈 네트워크 산업은 걸음마 단계다.
홈 네트워크의 기본이 되는 인터넷 가전의 가격이 동급 제품보다 최소 2~4배 가량 비싸 수요가 한정돼 있고, 표준화가 이뤄지지 않아 시장확대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홈 네트워크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가 부족해, 잠재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게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각국마다 다른 인터넷 인프라도 폭발적 성장을 점치는 데 주저하기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모든 가전업체들이 홈 네트워크 산업에 목을 매고 있는 것은, 흑백에서 컬러텔레비전으로 진화한 것처럼 결국 홈 네트워크는 대세가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LG전자 홈 네트워크 총괄팀장인 박현 상무는 “인터넷 가전 가격은 꾸준히 내릴 것이고, 표준화는 어떤 방식으로든 이뤄질 것이며, 콘텐츠는 풍부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홈 네트워크 시장은 올해를 기점으로 서서히 활성화되기 시작해 2~3년 후께면 폭발적인 성장이 기대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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