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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회계사 공포의 계절
[초점] 회계사 공포의 계절
  • 백우진 기자
  • 승인 2002.06.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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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칩스 배상 판결로 부실회계감사 소송 비상… 일반투자자가 회계사로부터 부실감사로 인한 손실을 배상받았다.
회계법인이 분식회계 손실을 배상한 적은 있지만, 회계사가 개인적으로 책임을 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회계감사에 대한 소송이 급증하리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예금보험공사도 고합과 대우 등의 분식회계와 관련해 회계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걸 계획이다.
서울지법 민사합의21부는 5월27일 코스닥등록업체 프로칩스를 감사한 회계사 3명과 전 임직원 5명 등이 재무제표를 분식해 투자손실을 입혔다며, 임아무개씨에게 4억4천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일반투자자인 원고는 대상 기업의 사업보고서와 감사보고서가 정당하게 작성되어 공포된 것으로 믿고 투자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며 “이들 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했기 때문에 원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설명했다.
예보는 고합, 대우, 진도, 극동건설 등 분식회계를 감사한 회계법인은 물론 소속 회계사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계획이다.
예보 관계자는 “분식회계를 눈감아줌으로써 금융회사에 공적자금 투입을 초래한 회계사들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지적에 따라 회계사를 선별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우 분식회계와 관련해 예보는 2000년 증권선물위원회가 징계를 내렸던 회계사 69명 가운데 (주)대우를 비롯해 대우전자, 대우통신, 대우중공업 등 4개사를 담당했던 회계사들을 우선 소송대상으로 삼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기업의 분식 규모는 19조원에 달했다.
이에 대해 회계사들은 증권거래법상 시효가 지난 일을 굳이 문제삼아 현재 회계감사의 신뢰도에 타격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공인회계사회 유태오 기획국장은 “당시 금융회사가 감사보고서에 의존해 기업에 돈을 빌려줬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공적자금 투입의 책임을 회계사에게 지우는 건 무리”라고 말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예보가 소송에서 이겨도 공적자금을 회수하는 효과는 미미하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예보가 공적자금 회수에 최선을 다하라는 감사원 등의 압력에 밀려 나섰지만, 변호사 비용도 건지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회계 관계자들은 프로칩스 판결을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회계연구원 김경호 상임위원은 “감사인이 회계정보의 신뢰성을 보장하지 않아 손실이 발생한 경우 이를 배상받기 위한 소송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고려대 경영대학 권수영 교수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회계감사 수수료의 15%가 손해배상 비용으로 나간다.
미국처럼 우리나라 외부감사인들도 소송에 치여 골머리를 싸매게 될까? 증권 분야 전문 법무법인 한누리에는 최근 분식회계 소송 문의가 부쩍 늘었다.
물론 프로칩스 사건에서 일반투자자인 원고가 승소했다는 소식이 계기가 됐다.
한누리 김태선 변호사는 “올해 금융감독원의 특별감리에서 분식회계가 적발된 기업의 투자자들이 관심을 나타냈다”고 말한다.
그러나 소송에 적극적이지 않은 문화적 토양을 감안할 때, 회계 소송이 미국만큼 잦아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회계법인들은 매년 사업보고서에서 소송건수 등을 공표한다.
한국공인회계사회 관계자는 “소송은 아직 수십건에 불과하고, 급격히 늘어날 것 같지는 않다”고 예상했다.
정확한 회계정보는 기업을 둘러싼 의사결정의 기초 인프라스트럭처다.
미국 주가가 호전된 경제지표만큼 뻗어나가지 못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는 엔론 분식회계의 충격이다.
말하자면 ‘아메리칸 디스카운트’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투명한 회계정보 공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기업이 실적을 부풀리거나 외부감사인이 이를 눈감아주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프로칩스 분식회계 일지

1999년 초 매출 1천억원 순이익 80억원 전망 〃 12월말 가결산, 매출 661억원 순손실 23억원으로 집계 대표 유아무개씨 분식회계 지시, 매출 812억원 순이익 53억원으로 부풀림 2000년 1~3월 외부감사 회계사들, 유 대표로부터 10억원 받고 적정 의견 감사보고서 작성 〃 3월 프로칩스, 사업보고서와 감사보고서 금감원 제출하고 공시 2001년 3월 2000회계연도 매출 944억원 순손실 198억원으로 집계 3월17일 감사 맡은 D회계법인 의견 거절 3월26일 프로칩스 화의신청(이날부터 주가 급락) 3월30일 프로칩스 부도 4월17일 유 대표 분식회계 혐의로 구속 6월21일 프로칩스 회사정리절차 신청 7월13일 회사정리절차 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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