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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한국 투자, 외국인의 선택은?
[초점] 한국 투자, 외국인의 선택은?
  • 최우성 기자
  • 승인 2002.06.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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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월드컵을 계기로 한국을 투자가치 높은 매력적인 시장으로 자리잡게 하려는 발걸음이 무척 분주하다.
지난 5월29일에는 한국외국기업협회가 주최한 ‘2002 서울투자포럼’ 행사가 서울 그랜드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30일에는 서울시가 주관하는 투자설명회와 ‘CEO 라운드 테이블’ 행사가 잇달아 열리기도 했다.
이들 행사에는 월드컵을 맞아 방한한 해외 주요 기업 경영자들이 대거 참석해, 한국 시장과 투자환경을 탐색하는 기회를 가졌다.
특히 한국 투자 여부를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주요 기업들의 아시아·태평양지역 본부 책임자들이 자리를 함께한 점은 이채롭다.
포드의 아시아지역 이사인 다니엘 브리시케, 컴팩의 아시아지역 고문인 마이클 오운, 을 보유한 터너 인터내셔널의 아시아지역 부회장인 닉 모르겐 등은 그 대표적인 인물로 꼽을 수 있다.
이쯤이면 가히 한국 투자 유치 붐이 절정에 달한 느낌이다.
때마침 5월28일에는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부설 경제연구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한국의 외국인 투자 환경을 매우 우수한 것으로 평가하는 별도의 한국 투자 전망 보고서를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한국의 투자잠재력, 투자전망 및 외국인 직접투자 환경 등 3부문으로 구성된 이 보고서에서 EIU는 “지난해 경제규모가 세계 13위였던 한국은 다른 투자대상국들에 비해 상당히 저평가돼왔다”고 지적하고 “거대 내수시장과 정보기술(IT) 및 제조업 기반을 활용한 적극적 투자유치가 필요하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1998년 외국인투자촉진법이 제정된 이래 국내에서는 업종별 투자개방이 거의 완료되어 외국인투자 자유화 비율이 현재 99.8%에 이르고 있다.
과거 차관도입 중심의 국가주도 발전전략에서 벗어나 탈규제와 시장개방을 가속화한 결과, 97년부터 2001년까지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직접투자액(FDI)은 315억달러나 된다.
이는 97년 이전에 한국이 유치한 246억달러의 2배가 넘는 규모다.
지난해 말 현재 국내에 진출한 외국인 투자기업 수는 모두 1만1515개다.
한국 시장에 대한 관심은 직접투자에만 그치는 게 아니다.
직접투자 외에 이른바 ‘포트폴리오 투자’도 큰 폭으로 늘어났다.
국내 전체 주식시장에 들어온 해외자본은 현재 약 720억달러에 이르러, 국내 전체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36.6%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SK텔레콤, 국민은행, 삼성전자 등 상위 10개 우량기업주의 경우 외국인 지분이 이미 50%를 넘어섰다.
이런 사정을 반영하듯, EIU 보고서는 “한국이 이미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여타 경쟁국들에 비해 안정적 경제기반을 확고히 다졌다”고 진단하고, 오는 2006년까지 통신기술, 고령화 대비 산업, 금융 서비스 부문을 중심으로 매년 60억달러 규모의 외국인직접투자가 실현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또한 이 보고서에는 국내 주요 정당들에서 세계화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이미 강하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올해 말에 실시될 대통령선거 결과가 투자환경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란 내용이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끈다.
물론 외국인직접투자의 효과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끊이지 않는다.
5월29일 열린 2002 서울투자포럼에서는 세계적인 경영대학원인 프랑스 인시아드의 아시아캠퍼스 학장인 아노르 드 마이어가 외국인직접투자와 관련한 5가지 미신을 떨쳐버려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가 예로 든 5가지 미신이란 외국인직접투자가 ‘개도국에 더 중요하다’ ‘토종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외국의 저부가가치 부문과 관련된 것이다’ ‘다국적기업이 국내시장을 이용하는 것이다’ ‘자본회수율이 높은 곳을 대상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마이어 학장은 “외국인직접투자는 신기술과 경영기법의 유입, 생산성 향상, 해외시장 접근성 제고 등 긍정적 측면이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반면 지난해 LG경제연구원은 외환위기 이후 외국계 기업으로 바뀐 25개 기업의 경영실태를 분석한 결과, 설비투자나 기술개방 등에서는 별다른 효과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외국인직접투자가 국내 내수시장을 외국 기업 손에 거저 넘겨주는 요술방망이로 쓰일 수도 있음을 짐작케해주는 대목이다.
실제로 외환위기 이후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직접투자가 서비스업에 집중된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다른 한편에서는 국내로 유입된 외국인직접투자를 국내총생산(GDP) 규모에 견주어 보면, 주요 경쟁국들 수준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우리나라의 GDP 대비 외국인직접투자액 비율은 2000년 기준으로 2%를 약간 넘어선 정도여서 싱가포르(6.9%), 말레이시아(4.2%), 태국(2.8%) 등에도 뒤진다.
97년 이후 4년 동안 국내로 들어온 외국인직접투자 315억달러 역시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는 중국(2120억달러), 일본(321억달러) 등에 이어 여섯번째 규모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국내에서 외국인직접투자가 아직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는 데는 투자여건이 성숙하지 못했다는 점도 한몫 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3월 주한미국상공회의소가 발표한 ‘기업환경 조사보고서’는 한국이 아시아 거점국가로 자리잡는 데 장애가 되는 여러 요인들을 열거해 눈길을 끈 바 있다.
월드컵을 계기로 형성된 한국 투자 열기가 자연스레 동북아 거점국가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건 이 때문이다.
지난달 말 재정경제부가 과거에 발표한 내용을 보강해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실현계획’을 크게 홍보하고 나선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달 방한했던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는 한국 방문을 결산하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의 중심부에 위치해 아세안내 5개국과 국경을 이루고 있는 말레이시아는 동남아시아의 비즈니스 거점국가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며 “한국과의 협력관계가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비즈니스 거점국가간 협력으로 발전하기를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5월27일부터 1주일간 열린 ‘2002 메트로폴리스 서울총회’에서는 김유경 증권거래소 부이사장이 ‘서울을 아시아 금융 중심지로 육성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발표를 통해 “한국이 실물부문에서 여타 아시아 경쟁국가들에 비해 우월한 경쟁력을 가졌음에도, 국제 금융중심지로 성장하기 위한 특화전략이 없음”을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현재 논란이 되는 쟁점은 세율 인하와 정리해고 자유화다.
지난 3월 주한 미국상공회의소의 보고서가 이런 주장을 한 데 이어, 국내 재계도 최근까지 비슷한 목소리를 거듭 내고 있다.
주한 미국상공회의소쪽은 현재 36%로 돼 있는 최고 소득세율을 20%로 내려달라고 우리 정부쪽에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세율 인하는 형평성 문제를 넘어 곧바로 세수 감소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쉽사리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다.
재경부 관계자는 “소득세율은 대개 5~10년마다 한번씩 조정하는데, 최고세율을 36%로 내린 게 지난해인만큼 현재로서는 세율 인하를 검토할 수 없다”며 특히 “막대한 규모의 세수감소에 대한 대책이 우선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월드컵을 계기로 형성된 한국 투자 열기가 얼마만큼 성과를 거둘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향후 한국 투자의 잠재적 가능성이 얼마나 되느냐는, 한국이 동북아 비즈니스 거점이 될 수 있느냐는 문제와 맞물려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따라서 앞으로 한국이 동북아 비즈니스 거점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들을 실현해야 하느냐는 문제를 놓고 많은 논의들이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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