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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국제자금 시장 진출 “글쎄”
[이란] 국제자금 시장 진출 “글쎄”
  • 최우성 기자
  • 승인 2002.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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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디스 국가신용등급 판정 유보… 관련 법률안 제정 등 변신 약발 안 먹혀 단순히 화해의 몸짓인가? 아니면 대세에 순응하는 ‘개혁입법’의 첫걸음인가?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이 “악의 축”의 하나로 지목한 바 있는 이란 정부가 최근 대외개방과 해외자본 유치를 촉진하는 법률을 제정한다는 방침을 최종 확정한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지난 5월31일 이란 정부는 약 1년여에 걸친 논란 끝에 법률안을 제정하기로 결정했다.
이란에서 해외자본 유치를 위한 관련 법안이 제정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원래 관련 법률안이 처음 논의된 것은 1년 전의 일이다.
당시 이란 의회는 회교혁명 지도자 호메이니가 사망한 이후 전개된 개혁조처의 하나로 이같은 내용을 담은 법률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이란 의회의 결정에는 석유산업에 지나치게 의존한 국내 경제구조를 균형적으로 개편하려는 의도 또한 담겨 있었다.
하지만 의회를 통과한 법률안은 근본주의적 이슬람 원리의 영향 아래 놓여 있는 헌법수호위원회의 반대에 부딪혔다.
이란에서 이슬람 성직자와 민간법률가로 구성된 헌법수호위원회는 의회를 통과한 법률안에 대한 최종승인권을 갖는 상원의 구실을 하고 있다.
당시 헌법수호위원회는 “법률안이 헌법과 이슬람 율법에 어긋날 뿐 아니라 국내경제를 외국세력의 손에 넘겨줄 것”이라며 법률안 승인을 거부했다.
이후 의회는 몇차례에 걸쳐 수정안을 만들었으나, 번번이 헌법수회위원회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개혁 성향의 의회와 전통적 성향의 헌법수호위원회 사이에서 타협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한 건, 국정조정회의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부터다.
헌법상 최고지도자를 보좌하면서 헌법수호위원회와 의회 사이의 대립을 중재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국무조정회의는 법률안 제정이 늦어짐에 따라 대외적으로 ‘개혁’ 이미지를 제고하려는 현 정부의 노력이 차질을 빚고 있다고 판단해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국무조정회의를 거쳐 정부 안에서 합의에 도달한 법률안은 외국 업체들이 이란 안에서 활동할 때 별다른 제약을 받지 않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다만 외국 업체가 농업과 관광산업 등 이란내 각 개별 산업부문별로 25%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획득하지 못하도록 못박음으로써 대외개방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란 정부의 ‘변신’ 노력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 이란 정부는 법인세와 소득세를 인하하고, 테헤란 증권거래소를 자유화하는 조처를 단행하고 해외자본을 향해 손짓을 보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란 정부의 행보를 바라보는 해외의 시선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 변화의 조짐이 발견되지는 않는다.
여전히 정치적 불안정 요소가 매우 크다는 점에서, 해외자본이 선뜻 이란 시장의 문을 두드리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지난 6월4일 미국의 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79년 이슬람 혁명 이래 이란 정부가 처음으로 국제 채권시장에서 자금을 끌어오기 위해 신청한 국가신용등급 판정을 유보한다고 발표했다.
지금껏 무디스가 특별한 이유 없이 등급판정을 유보한 선례를 찾기가 힘들다는 점에서 이번 결정의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무엇보다도 이란 정부가 보여준 일련의 행보에 대해 세계시장이 선뜻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않은 것이란 평가를 내리고 있다.
최근 이란 정부가 보인 몇몇 조치들이 “악의 축” 발언 이후 외부세계로부터 더욱 고립되고 있는 상황을 탈피하기 위한 일시적인 제스처인지, 아니면 점진적으로 진행해온 개혁조처가 첫 결실을 거둔 것인지 아직은 판단을 내리기 곤란하기 때문이다.
다만 대외개방과 해외자본 유치를 촉진하는 법률안이 확정된 것과는 상관없이, 이번 무디스의 결정으로 이란 정부가 정작 채권을 발행하는 일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세계시장이 좀더 따스한 눈길을 보내지 않는 한, 3억~5억달러가량의 채권을 발행하려던 이란 정부의 계획은 다소 늦춰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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