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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IT 기업, 해외진출 비싼 수업료
[비즈니스] IT 기업, 해외진출 비싼 수업료
  • 채지형/ 디지털타임스 인터넷
  • 승인 2002.06.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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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사업 포기·축소 기업 증가 추세… ‘묻지마 진출’의 위험성 뼈저리게 느껴 국내 e메일 마케팅 솔루션 업체인 네오캐스트는 일본 최대의 이메일 마케팅 대행업체인 카렌에 ‘앳마스타’를 공급한 후, 클레임으로 계약 금액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억원의 배상금을 물어야 했다.
일본 시장의 특성상 아무리 기술력이 뛰어난 제품이라고 할지라도 단 1%가 부족하면 여지없이 클레임을 받기 때문이다.
네오캐스트재팬 염종순 사장은 10여년 동안 일본에서 사업을 추진해온 일본통으로, 1200여명의 일본 정보기술(IT) 업계 인맥을 자랑하고 있는 인물이다.
이 정도 경력이 있는 사람이 시행착오를 거칠 정도면, 해외에서 사업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짐작할 수 있다.
네오캐스트를 비롯해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 깃발을 꽂기 위해 해외로 나갔던 국내 인터넷 업체 중 상당수가 수업료를 톡톡히 내고 있다.
지난해 해외시장 진출을 위해 공격적 투자를 감행했던 일부 인터넷 솔루션 업체들은 뚜렷한 실적을 올리지 못하자 사업을 중도에 포기하거나 축소하는 사례가 올해 들어 부쩍 늘었다.
뿐만 아니라 현지 업체들과 제휴를 맺고 사업을 추진했던 업체들 중 상처만을 안고 중도 하차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인터넷 업체들의 ‘해외 진출’ 꿈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올해 380여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체 회원사의 86%가 올해의 주요 사업목표로 해외 진출을 설정하고 있을 정도다.
이미 내수시장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내 기술력이면 어떤 나라에서도 도전해볼 만하다고 자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 국내 인터넷 업계의 선두 업체로 일본 시장에 대대적 투자를 감행했다가 올해 초 구조조정의 아픔을 겪었던 이네트 글로벌사업본부 이영철 이사는 “시련이 끝은 아니다.
비록 조직을 대폭 슬림화하기는 했지만, 지난해 추진했던 다양한 시도들은 향후 더욱 탄탄하게 성공할 수 있도록 밑거름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e고객관계관리솔루션(eCRM) 업체인 아이마스는 일본 현지법인인 아이마스재팬을 지난해 말 철수했고, 네오캐스트도 올해 초 미국 현지법인을 문닫았다.
확장성표시언어(XML) 전문업체 DIB는 미국 실리콘밸리 새너제이와 버지니아주에 각각 지사를 설립하고 미국 진출을 추진했으나 무리라고 판단해 버지니아 지사를 새너제이 지사로 통합했다.
지난해 인도네시아 빠다무닷컴에 30만달러 규모의 기술투자를 단행했던 메일솔루션 업체 나라비전은 올해 하반기에 인도네시아 시장에서 손을 뗄 계획이다.
콘텐츠관리솔루션(CMS) 전문업체인 인포웨어는 2000년 일본 미쓰미상사와 ‘예스비즈24’에 대한 수출계약을 체결하고 일본 시장 진출을 노려왔으나, 최근 파트너 업체인 미쓰미상사가 인터넷 사업부를 정리하는 바람에 일본 시장 진입이 제자리걸음 상태다.
XML 전문업체인 휴먼컴은 지난해 미국과 일본 시장 진출을 시도했지만, 실적 악화로 당분간 해외 사업 부문을 접기로 했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의 사례들이다.
한편 시련에서 얻은 피 같은 노하우를 글로벌 인터넷 업체로 도약하기 위한 자산으로 만드는 업체도 많다.
이네트는 일본에서 사업을 추진하면서 일본인 특유의 일하는 방식에 대해서 절실히 공부했다.
부가가치가 없는 부분에까지 완벽한 문서를 만들어내야 했으며, 애프터 서비스까지 모든 것을 깨끗하게 마무리해야만 했다.
이영철 이사는 “고객들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 엄청난 리소스를 투입해야 했다”며 “힘들기는 했지만 이네트 제품이나 매뉴얼과 같은 문서를 처리하는 수준이 대폭 높아졌다”고 말했다.
또한 이네트는 일본 시장에서 적지 않은 손실을 본 것을 거울삼아 말레이시아 등 새로운 해외시장 개척에서는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낼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가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해외 진출에 너무 많은 비용을 쏟아부었던 이네트의 사례는 다른 벤처기업들에도 반면교사가 되고 있다.
e메일 마케팅 솔루션 업체인 네오캐스트 김병태 사장은 제대로 된 최고경영자(CEO)를 찾지 못하면 적임자를 만날 때까지 해외 진출을 미루라고 할 정도로, 해외 진출시 ‘현지 CEO 선택’을 다른 무엇보다도 강조한다.
미국 시장에서 적절한 CEO를 선택하는 데 실패해 20억원의 투자비를 고스란히 날렸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 시장에서의 뼈아픈 경험 덕분에 해외 사업에 적합한 사람을 고르는 눈을 키우게 됐다.
e메일 마케팅 업체인 아이마스는 2000년 초 미국 시장에 처음으로 발을 내디디면서, ‘국내 e메일 마케팅 솔루션 개념을 그대로 가져가고 언어만 영문화하자’는 전략을 세웠지만 이 전략은 보기 좋게 벽에 부딪혔다.
미국 기업들에게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나면, 모두들 ‘기술은 좋은데 그다지 살 생각은 없다’라는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아이마스는 초심으로 돌아갔다.
미국의 솔루션 개발 업체인 알비트렐(Arbitrel)과 손잡고 미국식으로 제품을 다시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식 제품을 미국 현지화하는 차원이 아닌, 완벽한 ‘미국 제품’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그래서 국내에서 판매되는 제품과 미국에서 판매되는 제품의 기반기술은 같지만,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비롯해 메뉴 구성, 화면 색깔까지 눈에 보이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아이마스는 설립 초기부터 2년 동안 제품을 통한 실질적 매출이 거의 없었는데, 현지인들의 입맛에 맞는 제품을 내놓은 이후 빠르게 레퍼런스 사이트들을 확보해가고 있다.
해외 진출 희망 업체들 전략 수정 한번쯤 시련을 겪어본 업체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은 ‘신중함’이라는 성숙된 모습이다.
이제 더는 ‘일단 깃발을 꽂고보자’라는 식의 해외시장 진출은 줄어들고 ‘충분히 대차대조표를 따져가며 승산이 있는 나라에 베팅한다’는 업체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해외시장에 첫발을 내디딜 준비를 하고 있는 업체들도 먼저 진출했던 업체들의 사례를 심층 분석함으로써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려는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외에 인터넷 업체들은 독자 진출을 고집했던 기존 방식을 버리고 인터넷기업협회나 대기업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등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 해외 진출 컨설팅 사업을 하고 있는 인터프로코리아 박삼수 사장은 “지난해까지는 기술력만 믿고 해외시장을 쉽게 생각하는 인터넷 업체들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나름대로 철저한 계획을 세우는 등 해외 전략들이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며 “최근 전반적 IT 경기도 호전되고 있어, 올해가 국내 업체들이 내실 있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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