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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PL법 얕보면 '큰 코'
[비즈니스] PL법 얕보면 '큰 코'
  • 강선구/ LG경제연구원 부연
  • 승인 2002.06.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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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법 7월 시행… 소송 대비·보험 가입 등 대응책 필수, 품질혁신 운동도 병행해야 오는 7월1일 제조물책임(PL)법 시행을 앞두고 기업들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
과연 PL법이 시행되면 기업들은 자신이 만든 제조물에 대해서 무한책임을 지게 되는 것인가? PL은 Product Liability의 약자로, 제조업체가 결함있는 제조물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손해를 입혔을 경우 그 피해를 구제해주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결함’의 존재 여부다.
결함은 설계, 제조, 지시나 경고상 일반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안전성이 결여된 경우이다.
이전의 민법상 불법행위책임에서는 제조업자의 ‘고의 또는 과실’이라는 주관적 개념을 책임요건으로 삼았다.
그러나 PL법이 시행되면 피해자는 제조업체의 ‘고의 또는 과실’을 입증하지 않고 ‘결함’의 존재와 손해의 인과관계만 입증하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당연히 피해자의 입증 부담은 크게 완화되는 셈이다.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제조물과 제조업체의 범위다.
제조물에는 자연농산물과 수렵물을 제외한 모든 동산이 포함된다.
부동산은 제조물에 해당하지 않으며, 다만 건축물에 시공된 승강기, 배관 등은 제조물에 포함된다.
제조물책임의 주체는 1차적으로 완성품 제조업자(OEM 업체 포함)이며, 넓은 의미에서 결함을 야기한 부품·원재료 제조업자와 외국산 제품의 수입업자 또는 판매업자 등도 제조물책임을 지게 된다.
이전에 비해 제조업자의 범위가 확대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제조사 불명 수입산 제품으로 소비자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라도, 수입판매업자가 손해배상 주체가 된다.
소비자에게 책임 전가 어려워져 새로운 PL법의 발효는 소비자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다고 볼 수 있다.
앞서 봤듯이 소비자의 입증책임이 상당히 완화되며, 피해구제의 폭도 넓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제조업체들이 안전사고 발생시 어려운 기술용어를 동원하면서 소비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점점 어려워지게 됐다.
따라서 소비자 안전과 관련되는 제품을 만드는 제조업체들은 마인드 자체를 바꿔야 한다.
소비자보호원 조사를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식품, 가전제품, 주방용품, 의약품, 자동차 등의 순서로 소비자 피해가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런 업종에 해당되는 제조업체들의 의식 전환이 급선무다.
PL법 발효에 대해 전향적 자세를 갖는 것도 필요하다.
법망을 피해가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소비자를 왕처럼 생각하고 만족시키려는 적극적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그런데 막상 기업들에 현실적으로 닥치는 문제는 ‘비용’이다.
제품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원가상승으로 이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초기에 커다란 비용지출 없이 PL 대응체제를 갖추는 방법은 전사적 의식개혁이다.
최고경영자(CEO)부터 평직원에 이르기까지 품질안전 마인드를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PL위원회를 구성하고 사내 PL 교육을 실시하는 등의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사내 PL 대응활동이 제대로 되면 각 부서별로 소비자 안전 향상에 필요한 개선점들이 도출되고, 이것이 제품에 반영될 수 있다.
PL법 대응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해 지레 포기할 필요는 없다.
아주 간단히 얘기한다면 업체가 결함이 없는 안전한 제품을 만들면 되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PL 대응활동이 품질관리 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미 상당수 제조업체들이 품질관리(QC), 품질경영(QM), 기타 품질혁신운동 등에 나서고 있다는 점에서는 PL이 생소한 것만은 아니다.
제조물 안전(PS)은 전혀 새로운 바탕에서 시작된다기보다 기존 성과들을 취합하는 식으로 추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완성품 제조업체들은 부품 협력업체들의 PL 대응활동을 적극 지원해야 할 것이다.
특정 부품 하나가 불량일 경우 완성품도 불량으로 이어지고 소비자 안전을 위협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완제품의 결함이 부품 때문인 것으로 입증된 경우라도 완제품 업체의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방어책 마련보다 예방이 바람직 일단 PL 대응활동을 시작한 제조업체라면 문서화에 신경을 써야 한다.
기본적으로 PL은 사후적 구제조치이고 최악의 경우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품의 설계, 제조, 경고표시 등 일련의 과정에서 안전성에 대해 기존 기술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주의를 기울였음을 입증할 수 있는 문서의 작성과 보관이 필수적이다.
재정적 여유가 있는 업체라면 기록된 날짜의 증명이 가능한 전자문서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한가지 주의할 점은 ‘원가절감’이라는 표현문구를 삼가야 한다는 것이다.
설계채택 결정서나 설계변경서에 이같은 문구가 기재됐을 경우, 법정에서는 안전을 희생하는 기업이라고 해석돼 PL 소송에서 패소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편 PL 관련 문제가 발생했을 때, 초기 증거확보나 기록은 넓은 의미에서 문서화 활동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제품이 유통되기 이전의 문서화가 공장에서 이뤄진 반면 유통 이후 문서화는 사고현장에서 이뤄졌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PL 문제에 대한 문서기록은 추후 제품개선에 반영할 수 있을 뿐더러, 법정소송시 사고발생 원인규명의 중요한 증거로 채택될 수 있다.
체계적 PL 대응활동에 부담을 느끼는 기업들은 보험에 기댈 수도 있다.
PL 사고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자동차사고나 화재사고처럼 재수가 없으면 일어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시중에서 PL 관련 보험도 많이 개발되고 있으니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보험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지 최선책이 아니다.
또한 모든 보험이 마찬가지겠지만 보험금 지급사고가 많아질수록 보험료는 올라가기 마련이다.
미국에서는 PL 관련 사고가 많아지면서 1980년대 중반 이후 책임보험료가 급등했다.
이와 함께 고위험 업종에 대한 보험 인수가 거부되는 부작용이 발생하면서 제약, 항공, 자동차, 화학 산업 등이 타격을 입은 바 있다.
전향적 제조업체라면 PL 보험 가입 등의 소극적 방어보다는 적극적 예방활동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평소부터 안전기업 이미지를 제고하는 것은 보험에 가입하는 것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다.
평상시 품질 이미지가 좋은 회사의 경우 PL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해관계자, 언론, 법조계 등으로부터 호의적 대우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업체가 PL 소송에서 패하는 최악의 경우에도 품질 이미지가 좋은 회사라면 조기에 이미지 회복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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