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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1. 인터넷·ATM 이용 확산
관련기사1. 인터넷·ATM 이용 확산
  • 이경숙 기자
  • 승인 2002.06.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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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들 자동화기기 대폭 신설·교체… 중소 무역업체 유동성·환전업무 차질 불만 6월4일 점심시간, 한 은행 휴게실에 직원들이 모여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월차로 토요 휴무를 한다면 이미 연월차 쓴 사람은 어떻게 되는 거지? 그거 제하고 토요 휴무하나?” “글세, 아직 확정되지 않은 모양이던데. 그나저나 토요 휴무하면 여름휴가도 못 가잖아. 왜 하는지 모르겠어.”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는 것보다 낫지. 주말마다 체력보강도 할 수 있고…. 토요일에 나랑 같이 헬스클럽 다닐 사람 없어?” 은행직원들한테 주5일 근무제는 사실 ‘조삼모사’일런지 모른다.
은행, 즉 제1금융권이 업종별로는 처음으로 7월부터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하기로는 했지만, 이들의 연간 근무시간은 그다지 줄어들지 않는다.
한해 동안 52번 있는 토요일을 월차 12일, 연차 8일, 특별휴가 6일 등 기존 휴일 중 26일을 활용해 쉬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며칠을 몰아서 쉬나, 매주 토요일로 나눠서 쉬나 연간 근무시간은 달라질 것이 없다.
업무량도 줄어들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어차피 주식, 외환 등 주요 금융시장은 지금도 토요일엔 열리지 않는다.
수출입 업무도 그렇다.
우리나라 수출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미국, 중국, 일본은 물론 프랑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핀란드 등 선진국 대부분이 토요일엔 쉰다.
주5일제를 하지 않는 나머지 나라들에 대한 업무는 평일로 넘기면 된다.
공항·관광지내 점포는 종전대로 운영 그동안 365일 근무해온 부서나 인터넷 뱅킹 관련 부서는 토요 휴무 없이 계속 업무가 진행된다.
남대문, 동대문 같은 큰 시장과 대형 쇼핑센터, 공항, 관광지 등 거점 점포들은 토요일, 일요일에도 문을 연다.
365일 콜센터와 인터넷 뱅킹 부서는 은행 점포들이 주5일만 근무하면 더 바빠지게 생겼다.
주말에 콜센터와 인터넷 뱅킹을 이용하는 고객이 더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일부 직원은 연봉이 약간 더 늘어날 수도 있다는 데서 위안을 얻는다.
은행직원들은 토요 휴무로 사라진 연차휴가 8일에 대해선 전액을, 특별휴가 6일에 대해선 일부분을 임금으로 보전받게 된다.
반면 노동조합원이 아닌 계약직 직원들은 좌불안석이다.
토요일 업무시간이 줄어든 만큼 연봉이 줄어들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은행직원들은 은행 안보다 바깥에서 발생할 문제들을 더 많이 고심하고 있다.
한 은행 간부는 주5일 근무제 시행 뒤 계획을 묻자 대뜸 “업무 대책도 못 세웠는데 놀 계획을 세울 틈이 있겠냐”고 퉁명스레 받아친다.
7월부터 토요일에 은행 창구업무를 보지 않게 되면 고객들의 불만이 우후죽순처럼 튀어나올 게 뻔하다는 것이다.
중소 무역업체들은 벌써부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토요일엔 대출이나 어음할인을 받지 못해 자금 유동성 확보가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또 환전도 할 수 없어 외환업무 부담이 높아진다고 한다.
한국무역협회는 최근 243개 중소 무역업체를 대상으로 애로점을 조사했다.
이 조사에서 업체들은 “토요일에 은행 네고업무를 할 수 없어 완제품 구매 등에 쓸 긴급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 어려워질 것”을 가장 크게 우려했고(39.5%), “송금 뒤 입금 확인과 환전을 못하는 것”(21%)을 그 다음으로 걱정했다.
만기가 토요일인 공과금 수납이나 어음 결제는 정부가 토요일을 법정 공휴일인 것처럼 처리해 해결할 것으로 보인다.
재정경제부는 6월12일 ‘금융권 토요 휴무에 따른 지침’에서 토요일이 법정 공휴일일 경우엔 토요일에 만기가 오는 각종 세입금을 월요일에 내더라도 가산금을 물리지 않겠다고 밝혔다.
범칙금, 자동차세, 지방세, 전기료, 가스료, 통신비, 건강보험료 등 각종 세금 등 공과금이 이에 해당한다.
또한 재경부는 국채의 이자나 원금의 지급일이 토요일인 경우는 해당 토요일의 직전 영업일인 금요일에 토요일까지의 당해 기간분의 원리금을 지급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현금인출, 계좌이체 업무에는 그다지 큰 불편이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자동화기기(ATM/CD) 덕분이다.
은행권에 따르면 현재 시증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자동화기기 중 63%인 1만8500여대가 영업시간 이후나 휴일에도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주로 현금인출과 계좌이체를 많이 이용하는 개인고객은 이 자동화기기를 통해 토요일에도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다.
은행연합회는 주5일 근무제 실시 이후에도 토요일 오전까지는 자동화기기 사용에 수수료를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공휴일에 사용할 수 있는 자동화기기는 앞으로 더 많아질 전망이다.
대부분의 은행들은 주5일제 시행 발표 이후 자동화기기 대수를 더 늘리고 은행점포 안에 있던 기기를 은행 바깥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국민은행은 연말까지 자동화기기 3천여대를, 우리은행은 2천여대를 새로 들여놓거나 교체할 계획이다.
또 조흥은행은 1500여대, 외환은행은 900여대, 신한은행은 650여대, 대구은행은 550여대의 자동화기기를 구입할 방침을 밝혔다.
토요 만기 공과금 월요일에도 수납 자동화기기가 늘어난다고 해도 현금을 제때 충전해주지 않으면 기기를 늘려도 고객의 불편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주5일제 시행 전인 요즘도 주말엔 현금이 일찍 떨어지는 자동화기기 수는 상당히 많다.
주말이 길어지면 자동화기기에서 현금을 인출해 쓰는 수요가 지금보다 더 늘어난다.
국민은행 점포기획팀 장경진 차장은 “자동화기기의 현금 카트리지 보유대수를 늘리고, 보안경비 용역업체가 충전 상태를 점검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대책을 설명한다.
무인 코너의 청결 유지도 골칫거리다.
365일 코너를 관리하는 보안경비업체 직원들이 오다가다 쓰레기를 줍기는 하지만, 휴일 하루만 지내고 나도 코너 내부는 쓰레기통 같아진다.
은행이 쉬는 날이 길어지면 365일 코너 내부는 더욱 지저분해질 것이다.
대책을 고민하던 국민은행 장 차장은 “어서 시민의식이 높아져 명세표나 쓰레기를 아무 데나 던지는 시민들이 줄어들었으면 좋겠다”며 한숨을 쉰다.
현금지급, 계좌이체 이외의 다른 업무에 대한 수요는 인터넷 뱅킹쪽으로 유도되고 있다.
자동화기기와 인터넷 뱅킹 사용자가 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송금, 입금, 지급 업무의 25~30%는 은행 창구에서 이뤄지고 있다.
은행들은 계좌를 새로 만들거나 갱신하는 고객을 중심으로 인터넷 뱅킹과 폰뱅킹 가입을 유도하고 있다.
부산은행 등 일부 시중은행은 인터넷 뱅킹, 폰뱅킹 이용고객을 대상으로 전산 추첨을 통해 사은품을 나눠주는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비록 여러 고객층의 불편을 은행과 정부가 여러 모로 살피고 있기는 하지만 자동화기기나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는 문맹자, 장애인, 노인의 불편에 대한 대책은 특별히 나온 것이 없다.
은행은 물론 정부도 이들에 대한 대책은 아직 논의한 바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맹자나 기계치, 장애인은 사실상 토요일엔 은행 이용을 하지 않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토요일에 은행 업무를 보지 않는 날이 오기 전에는 이들은 토요일마다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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