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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2. 비정규직 “우린 어떡해”
관련기사2. 비정규직 “우린 어떡해”
  • 한정희 기자
  • 승인 2002.06.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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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고용자 절반 차지불구 제목소리 외면… 법제화 없인 임금보전 힘들듯 “우리가 합의한 방식이 모범답안은 아니다.
” 금융산업노조 김득연 정책부장은 5월23일 금융계에서 독자적으로 합의한 주5일 근무제의 한계를 인정했다.
한국의 노동운동사에서 최초로 ‘주5일 근무’라는 큰 변화를 일구어내고도 이 변화가 애초의 대의인 ‘노동조건이 악화되지 않는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보증수표가 된 것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번에 합의한 내용은 사실 ‘노동시간의 단축 없는 주5일 근무제’인 셈이다.
어차피 휴가로 놀아야 할 부분에 대해, 업계에서 토요일을 휴무일로 공식 합의하면서 ‘쉬는 것을 강제하자’는 그런 합의인 셈이다.
이번 합의 내용을 보면 월차휴가 12일, 연차휴가 8일, 체력단련휴가 6일 등 총 26일의 휴가를 사용하여 52주의 토요일을 쉬기로 했다.
휴가를 쓰는 것이기 때문에 법정 노동시간인 주 44시간이란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따라서 협상에서는 ‘휴가사용’에 따른 임금손실분의 보전 문제가 실질적 쟁점이었다.
결국 월차는 보전하지 않는 대신 연차휴가 8일은 전액 보전하고, 6일의 체력단련 휴가는 5급 5일, 4급 4일, 3급 3일, 2급 1일 등으로 차등 보전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사실 경영자쪽에서 본다면 주6일 근무할 때에 비해 월차수당 지급 부담이 없어진다는 측면에서 비용절감 소지가 있는 셈이다.
따라서 연차휴가 8일이나 체력단련 휴가 부분에 대해 일부 보전해줄 ‘용의’는 충분히 있었다.
금융노동자 입장에서 볼 때도 주6일제에 비해 연차수당이 줄어들긴 하지만 월급이 삭감되는 것이 아니고, 또 휴가수당을 좀 덜 받더라도 토요일에 휴무를 할 의사가 충분히 있었다.
사실 그동안은 휴가가 있어도 쓸 만한 여건이 되지 못했던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이번 합의가 성사된 데는 은행들이 지난해와 올해 연속해서 사상최대의 흑자를 실현한 것이 중요한 토대가 됐다.
지난해 전체 은행들의 당기순이익은 5조2792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9조4750억원 증가했고, 올해 들어서도 1분기 중 모든 은행들이 흑자를 내면서 당기순이익이 2조3033억원에 이르렀다.
생산직·교대근무자 주5일제 사각지대 따라서 이번 합의는 노동계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하나의 ‘가이드라인’으로서 합의라기보다는 은행권이라는 특정 업계의 조건에 맞게 이루어진 합의의 성격이 강하다.
오히려 노동계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 합의안이 적용되기가 어려운 답답한 상황에 있는 부문이 많다.
노동계 내부에서는 산업별, 업종별로 노동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이번 금융계와 같은 방식의 주5일제가 전 산업으로 확대되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는 지적이 많다.
이를 금융노조쪽에서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김득연 정책부장은 “무엇보다 노사정위에서 주5일 근무제 실시가 무한정 유예되거나, 제시한 공익안이 오히려 노동조건의 후퇴를 전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금융노조로서는 현 법 테두리 안에서 노동조건의 악화 없이 주5일을 실시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부문 주5일 근무제 합의가 가져온 최대 효과는 일단 ‘주5일 근무를 사회적으로 기정사실화’했다는 점이다.
민주노총 박강우 정책국장도 “내용은 어떻든간에 금융산업이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함으로써 다른 산업에도 도입을 촉진할 것이다.
사회적 분위기를 주5일제 수용쪽으로 돌려놨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제2금융권에서는 이미 주5일 근무제 도입이 불가피한 방향으로 가고 있고, 곧 이어 공공기관쪽으로도 주5일제가 확산될 전망이다.
하지만 박 국장은 “사회적 분위기가 전환되는 계기는 만든 셈이지만, 여전히 핵심 문제는 남아 있다”고 말한다.
그는 “토요일에 오전만 근무하는 일반사무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주5일제가 의미가 있지만, 대다수 제조업체나 병원같이 교대근무가 필요한 곳에서는 주5일 근무제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설명했다.
애초 노동시간 단축 주장은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최장시간 노동하는 국가 중 하나이기 때문에 노동시간을 줄이고 삶의 질을 높이며 일자리를 나누자는 취지였는데, 금융노조가 얻어낸 주5일 근무제는 이런 부분에서는 성과가 없었다는 것이다.
생산직이나 제조업체 등 생산라인이 계속 가동돼야 하는 경우나 교대근무를 해야 하는 경우에는 월급제가 아닌 시급제가 임금지급의 기준이 되고 있고 각종 수당에 의존하는 사업장도 많아, 쉬면 쉬는 만큼 임금이 삭감된다.
생산직 노동자 입장에서 본다면, 임금조건이 변화하지 않는 상태에서 법정 노동시간이 단축돼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교대근무 업종의 경우에는 교체인력 확보가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 민주노총의 주장이다.
박 국장은 “현재 일부 제조업체에서는 이미 단협 등을 통해 노동시간을 1~2시간 줄인 곳도 꽤 있다”면서 “만약 지금과 같은 주44시간 노동시간에 변화가 없는 주5일제를 적용한다면 이런 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겐 오히려 손해”라고 주장했다 비정규직, 노동자 전체 문제로 인식해야 따라서 현재 민주노총이나 금속노련과 같은 단체에서는 법정 노동시간 40시간을 전제로 한 주5일 근무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노총조차도 수렴하지 못하는 노동계 내부의 다른 목소리들도 있다.
바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이미 전체 피고용자들의 절반을 훨씬 넘어서고 있는 상황이다.
비정규직은 보통 일급제, 시급제, 심지어는 도급제(개수제)로 일하는 경우가 많아, 노동시간 단축은 곧바로 임금삭감으로 연결된다.
게다가 노조를 결성할 수도 없다.
현재 정부는 노사정위에서 주5일제 합의가 여의치 않자 단협 등을 통한 해결로 방향을 틀어 법제화 방침에서 일단 후퇴한 상태다.
하지만 단협을 통한 개별협상은 해당 기업체 노조의 존재여부나 조직력 등에 따라 그 결과의 편차가 클 수밖에 없어,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는 임금삭감을 비롯한 피해의 우려가 크다.
박영삼 비정규노동센터 정책국장은 “단체협약을 통한 주5일제 도입은 분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교섭체계는 기업별 교섭이 주된 형태이며 노동조합 조직률은 12%대에 불과한 실정이어서, 협약을 체결해도 대기업 중심으로 이루어져 대다수 중소사업장이나 비정규직에게는 적용되지 않고 오히려 노동자간 노동시간 격차만 확대될 우려가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그는 미조직 노동자나 중소·영세기업 노동자, 비정규 노동자 등이 노동시간 단축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법제화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지난해 10월 비정규 노동자 기본권 보장과 차별 철폐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서는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입법 과정에서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을 금지하고 정당한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보호입법도 병행돼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보전의 원칙에는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금지가 명시돼야 한다’는 것도 비정규 노동자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러한 원칙이 있어도, 문제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경우 이런 원칙을 관철시킬 노조와 같은 조직이 없다.
특히 현재의 노조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관계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와 이해관계가 상충될 가능성이 있다.
박 국장은 “조합이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거시적 차원에서 접근하고 의식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것은 그리 쉽게 풀릴 문제가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기업 경영자들이 일정하게 양보해야 하는 점도 있지만, 노동자 내부의 합의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상층 노동자들이 일정 부분 희생을 감수할 필요가 있을 수 있다.
박 국장은 “비정규직 문제는 당장은 정규직 노동자들 자신의 문제가 아니겠지만, 결코 동떨어진 문제는 아니다.
무엇보다도 노동계 내부의 합의가 필요하다.
일자리를 나누고 소득감소를 감내하는 층이 있어야 한다.
장기적으로 볼 때 전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서는 이것이 필수조건”이라고 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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