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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내홍 겪는 공산당 최대 위기
[러시아] 내홍 겪는 공산당 최대 위기
  • 최우성 기자
  • 승인 2002.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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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명의 두마 의원 제명 후 당내 갈등 표면화… 최악의 상황으로 번질 가능성도 러시아 최대의 정치세력인 러시아 공산당이 둘로 갈라질 위기에 빠졌다.
이로써 소련이 몰락한 지 11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30% 이상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공산당의 장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또한 러시아 국내정치 불안이 가져올지도 모를 파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지난 5월말 러시아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당 소속 정치인 3명을 제명하기로 결의했다.
이 결정으로 당에서 축출된 정치인은 게나지 셀레스노프 러시아 의회(듀마) 의장, 타티아나 고라체바 여성분과위원회 의장, 니콜라이 구벤코 문화분과위원회 의장이다.
세명 모두 당에서는 물론 러시아 전국에서 내로라는 인물로 꼽힌다.
이어 6월5일에는 이들에게서 의회내 공산당 교섭단체 구성원 자격을 박탈하는 조처가 이어졌다.
하지만 이들을 제명하는 절차가 마무리된 뒤 당에서는 연일 열띤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공방은 제명 결정의 정당성을 두고 벌어졌지만, 그 밑바탕에는 공산당 정책의 정체성에 대한 의구심이 깔려 있다는 게 일반적 시각이다.
결국에는 공산당 조직이 둘로 갈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란 목소리가 점차 커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제명 결정은 사실 오래 전부터 알려진 당내 갈등구조를 만천하에 드러낸 계기일 뿐이라는 게 대체적 평가다.
그간 러시아 공산당내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개혁’ 성향을 지지하는 진영과, 겐나디 주가노프 공산당수를 중심으로 한 진영 사이에 날카로운 대립이 계속돼왔기 때문이다.
옛 소련 시대의 정통 사회주의 노선에 여전히 기대고 있는 주가노프 진영의 눈에 푸틴 대통령의 행보가 여러 모로 곱지 않게 보인 건 물론이다.
높은 실업률과 사회불안정 등 체제전환의 거친 파고 한가운데 놓여 있는 러시아 사회에서 점차 커지고 있는 국수주의 움직임 역시 주가노프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현재와 같은 암울하고 불투명한 상황에서는 스탈린과 같은 역사적 인물이 더욱 의미를 갖는다”고 공개석상에서 떳떳이 밝히는 주가노프의 지지자들 역시 무시 못할 정치세력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5월1일 메이데이에는 5만명이 넘는 시위대가 현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며 정통 노선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공산당 지도부가 이들 세명의 정치인들을 제명한 데는, 의회내에서 이들이 사사건건 푸틴의 의중을 곧이곧대로 대변해온 데 대한 반감이 직접적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간 공산당 지도부는 이들에게 “크렘린의 전화 한통에 따라 의결을 한다”는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이런 사실들을 들어 이번 제명 결정에는 단순히 정책노선 차이를 떠나 푸틴 대통령의 ‘전횡’에 대한 대다수 정치인들의 불만이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주가노프 공산당수의 정책노선에는 결코 동의하지 않지만 푸틴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통치 스타일에 비판적인 사람들이 이번 결정에 호의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결정을 두고 당내 반발 역시 만만치 않다.
중앙위원회의 결정에는 전체 구성원의 4분의 1이 반대표를 던진 바 있다.
또한 이번에 축출된 3명의 정치인을 지지하는 당내 세력도 상당한 규모를 자랑한다.
이들 진영은 최근 긴급 임시 당대회를 소집해 제명 결정을 뒤집을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두 진영이 정면으로 맞설 경우 러시아 공산당의 운명은 한치앞을 내다보지 못할 상황으로 내달릴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번에 제명된 정치인들을 지지하는 진영이 경우에 따라서는 “새로운 공산당”을 결성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는 것도 이런 시나리오에 설득력을 더해주고 있다.
통치 스타일과 사회불안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전면에 내세워 푸틴 대통령 진영과 일전을 벼르고 있는 주가노프 진영과, ‘개혁’ 성향을 내세우며 러시아를 이끌고 있는 푸틴 대통령 진영 사이에는 이제 갈등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태다.
만일 두 진영 사이의 갈등이 공산당 분열이라는 모습으로 현실화할 경우, 그 파장은 단순히 러시아 공산당 체제라는 한시대의 종말을 넘어 러시아 국내정치의 방향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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