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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2. 향토 맥주, 지방마다 쏟아진다
관련기사2. 향토 맥주, 지방마다 쏟아진다
  • 이승철 기자
  • 승인 2002.06.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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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법 개정으로 자가 제조·판매 가능해… 중대형 기업까지 가세, 과열 조짐마저 7월부터 고급맥주를 직접 생산, 판매하는 소규모 맥주 제조업(마이크로 브루어리)이 국내에 첫선을 보인다.
지난 2월 주세법 개정으로 그동안 금지됐던 소규모 맥주 제조의 길이 열리면서 서울, 대구, 광주 등지의 4~5개 매장이 7월부터 자가(自家) 제조 맥주를 판매할 예정이며, 연말까지 10여개 업체가 앞다퉈 뛰어들 전망이다.
수십년 동안 유지돼온 2~3개 대형 맥주회사 과점체제의 틈을 비집고 자신만의 차별화한 맛으로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아무개 브랜드 맥주’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마이크로 브루어리란 대규모 맥주회사에 대칭되는 말로, 자체 제조설비를 갖추고 소량의 맥주를 직접 생산, 판매하는 제조장을 뜻한다.
1천개에 이르는 제조장이 산재해 있는 맥주의 본고장 독일은 물론이고, 이웃 일본에서도 1994년부터 350여 매장이 지역밀착형으로 운영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유럽연합 상공회의소 등 유럽지역 이익단체들로부터 소규모 맥주제조를 허용하라는 통상압력을 끊임없이 받아왔다.
그러던 중 국내 수입맥주 시장 규모가 갈수록 커지는데다, 월드컵 개최라는 국가적 대사가 겹지자 지난해 말 황급히 이를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차별화된 맛과 신선함이 강점 올해 초에 개정된 주세법 시행령에 따르면 자가 제조 맥주는 업체마다 연간 60~300kl의 생산만 허용되며 제조장 안에서만 판매가 가능하다.
따라서 병이나 캔 형태의 외부유통은 전혀 할 수 없다.
소규모 매장이긴 하지만 일종의 소형 맥주 제조공장이 허용되는 것인 만큼 국세청 기술연구소 등에서 까다로운 품질검사 절차를 거쳐야만 제조면허를 얻을 수 있다.
소규모 양조장에서 만든 맥주의 가장 큰 장점은 차별화된 맛과 신선함이다.
대량 생산되는 기존 맥주와 달리 유통, 보관할 필요 없이 막 생산한 생맥주를 저장탱크에서 곧바로 고객에게 제공하므로 신선도가 뛰어나다.
옥수수가루, 설탕 등 부원료를 쓰지 않고 최상품 수입 맥아(맥주보리)만을 100% 사용하며 호프, 효모 등도 최고품을 쓰는 게 일반화할 것으로 보여 깊은 맛과 향이 기대된다.
또한 숙성이 끝난 맥주에 섞여 있는 효모나 고형물질을 완전히 여과하거나, 여과과정을 거치지 않고 저온에서 자연여과하는 등의 방법으로 맛과 신선도를 더욱 높일 수 있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센터에 자리한 조선호텔 직영 조선브로이하우스 www.echosunhotel.com는 7월1일 국내에서 가장 먼저 자가 맥주를 선보일 예정이다.
독일의 유명 맥주 제조장비 회사로부터 8억원어치의 제조설비를 수입해, 이미 지난 6월13일부터 제조를 시작한 조선브로이하우스는 6월말 최종 품질검사를 통과하면 7월부터 연간 170kl의 생맥주를 생산, 판매하게 된다.
헬레스(라거), 하프와이젠(밀맥아) 등 4종류의 브랜드를 차례로 준비중이며, 가격은 1잔당 5천~1만1천원 사이에서 결정할 계획이다.
서울 강남역 뉴욕제과 뒤편에 자리한 옥토버훼스트 www.oktoberfest.co.kr는 이례적으로 개인이 제조맥주 사업에 뛰어든 경우다.
독일 뮌헨에서 매년 가을 열리는 맥주축제에서 이름을 따온 옥토버훼스트의 백경학 사장은 독일 연수 때 만난 한국인 맥주양조공학 유학생을 양조사로 영입해, 고급 제조맥주만을 만들어 파는 최초의 전문점으로 역시 7월초에 문을 연다.
바이스비어(흰색), 둥클레스비어(검은색), 필스비어(라거) 등 3~4종을 선보이며, 가격은 수입맥주보다 약간 낮은 잔당 5천~6천원으로 정해놓고 하루 800l(500cc 1600잔) 정도를 생산할 계획이다.
지방에서도 구체적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대구시 두산동 아리아나호텔은 이르면 7월10일께부터 하루 400l씩 3종의 자가 맥주를 출시할 계획이며, 광주시, 경남 양산 등의 몇개 업체도 제조면허를 얻어 7월 중 생산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롯데칠성, 국순당 등 몇몇 중대형 회사들도 당장 자가제조 맥주시장에 뛰어들 태세여서 자칫 과열 조짐까지 엿보인다.
몇년 전 진로 카스맥주의 인수를 시도하는 등 맥주업계 진출을 호시탐탐 노려온 롯데그룹은 거대 음료회사인 롯데칠성의 자금력과 기술력을 롯데호텔의 기존 매장과 연계해, 전체 시장규모에 비하면 대규모라고 할 만한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롯데그룹은 애초 10억원대의 독일제 최고가 제조설비를 도입해 서울 강남지역 등 수도권 여러 곳에 직영점을 개설하려는 목표를 세웠으나, 제조설비 설치장소 선정 등에 관련한 규제가 까다로워 시작단계부터 다소 주춤한 상태다.
내년 초부터나 본격 사업 개시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시장성 높지만 생산까진 난제 많아 그러면 앞으로 제조맥주시장의 성장성은 어떨까? 지난해 국내 전체 맥주시장 규모는 약 3조8천억원으로 추산되며, 매년 10%가량 성장세를 지속해왔다.
옥토버훼스트 백경학 사장은 “기존 맥주시장의 성장 추세와 외국의 사례를 감안할 때 앞으로 5~6년 정도 지나면 200여 업체가 자리를 잡을 것”으로 예측한다.
한 업체당 월매출액을 2억~3억원 정도로만 계산해도 연 5천억~7천억원대의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게다가 현행 법령에서는 연간 맥주 생산량을 제한하고 제조장 외부 판매를 전면 금지하고 있지만 외국 사례를 볼 때 앞으로 2~3년 뒤면 생산량 제한이 없어지고 병이나 캔에 넣은 형태로 인근지역 유통이 허용될 것으로 관계자들은 예상하고 있다.
그만큼 시장규모가 커질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이처럼 자가제조 맥주의 탄생은 소비자들의 다양한 기호를 충족시켜줄 뿐만 아니라 새로운 고부가가치 사업영역으로도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섣불리 시장에 발을 들이기에는 아직 곳곳에 난제들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우선 초기 투자비용이 결코 만만치 않다.
이 사업은 호프집이나 대형 음식점을 운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며, 아예 소규모 제조업체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3천여개의 부품으로 구성된 맥주 제조장비의 수입가격은 5억~7억원 정도다.
비교적 싼 캐나다산 장비는 3억원 정도로도 가능하지만, 대부분의 독일제 1급 장비는 8억~10억원에 이른다.
제조장비를 설치할 공간도 40~50평이 필요한데다 배관시설 등 각종 건축, 환경 관련 시설기준에 맞춰 매장을 꾸미려면 총투자액이 20억원을 훌쩍 넘어선다.
그 다음 난제는 맥주 제조면허를 얻기까지 각종 절차와 규제가 복잡하고 현실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대구시 아리아나호텔 김대성 전무는 “관할 세무서에 20여종의 서류를 제출한 뒤 국세청 기술연구소의 심사를 거쳐 조건부 제조면허를 받는 데만 석달이 넘게 걸렸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이는 올해 초 주세법이 치밀한 준비과정 없이 급히 개정된데다, 관계부처간 의견조율과 관련법령 정비가 제때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가맥주 제조업에는 제조장비뿐만 아니라 양질의 원료를 싼 값에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현재 독일 등 외국산 맥아를 수입하려면 국내 맥주보리 재배농가로부터 총소비량의 40%를 구매해야만 10%의 낮은 관세율을 적용받으며, 그렇지 않으면 275%의 고율관세를 부담해야 한다.
국내 재배농가는 대형 맥주업체와 위탁재배 계약을 체결하고 연간 7만~8만톤의 맥주보리를 공급하고 있다.
따라서 소규모 제조업체는 국산 맥아를 구하기가 어려워 높은 관세율을 적용받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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