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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공격경영’으로 정상 회복- 백영배/나산 사장
[사람들] ‘공격경영’으로 정상 회복- 백영배/나산 사장
  • 황보연 기자
  • 승인 2002.06.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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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와 수비만으로는 절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없어요. 법정관리 기업도 공격적 경영이 필요합니다.
” 지난 1980년 설립된 이후 ‘조이너스’, ‘꼼빠니아’, ‘메이폴’ 등의 브랜드를 내놓은 패션기업 나산 백영배(57) 사장은 이같이 자신의 지론을 밝힌다.


백 사장은 99년 6월 법정관리인으로 나산에 온 지 3년 만에 경영 정상화에 큰 진전을 이루고 있다.
법정관리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연간 영업이익을 2억2500만원에서 180배인 404억1200만원으로 늘렸다.
그 덕에 그는 지난 5월 서울지방법원 파산부로부터 3천만원의 특별 보너스를 받기도 했다.
법원은 최초로 8개 회사의 법정관리인 9명에게 보너스를 지급했는데, 백 사장은 그 가운데 가장 우수한 경영실적을 낸 것으로 인정받아 다른 사람들에 비해 1천만원을 더 받았다.


“판사들이 죄형만 내리는 줄 알았는데 보너스도 주네요. 일반 기업에서 최고경영자(CEO)에게 억대 연봉을 주며 자극을 주는 것처럼, 법원도 법정관리인에게 일종의 성과급 제도를 적용하면 법정관리 기업의 경영정상화를 촉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 것 같아요.”

그러나 백 사장은 자신이 받은 보너스 3천만원을 고스란히 나산의 350여직원들에게 돌려줬다.
간부급부터 주차관리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직원들에게 공평하게 한돈 반짜리 순금메달을 만들어 준 것이다.
메달에는 ‘파이팅 나산’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나산의 재건을 위해 함께 뛰고 있는 오늘을 잊지 말자는 뜻이다.


백 사장이 나산으로 오게 된 것도 법원에서 새로운 유형의 법정관리인을 찾은 결과다.
법정관리인이라고 하면 보통 위험 감수를 꺼려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법원에서는 이런 이미지에서 벗어난 인물을 찾다가 32년간 효성그룹에서 일하며 풍부한 경영노하우를 쌓은 백 사장을 법정관리인으로 선임했다.
33살에 임원에 올라 한때 최연소 대기업 임원으로 알려지기도 했던 그는 고민에 빠졌다.
성공한 기업인으로 은퇴하려고 한다면 법정관리인 경력이 별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달리 생각했다.
“젊은 시절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과 더불어 빠르게 승진을 했어요. 이제는 사회에 보답할 때라고 생각했죠.”

결국 그의 ‘나산행’은 많은 변화를 일으켰고 경영실적도 뒤따랐다.
우선 한국 기업의 고질병인 외형 위주의 문어발식 경영을 뿌리뽑았다.
본업인 패션의류업에 집중하기 위해 유통사업 등에서는 철수했고, 기존 7개 브랜드 중 언에프와 오키프 등 실적이 부진한 브랜드를 없앴다.
‘선택’과 ‘집중’ 원칙에 따라 수익성 위주의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직원 수도 1250명에서 350명으로 대폭 줄였다.


이같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마찰이 없을 리 없었다.
“흔히 공기업이 하는 것처럼 먼저 삭감할 인원 수를 정하고 나이순으로 자르는 구조조정은 문제가 있죠. 하지만 사업의 수익성과 전망에 따른 공정한 구조조정은 다르다고 봅니다.
대신 남은 직원들의 대우 수준을 높이기 위해 법원을 찾아가 열심히 설득했죠. 법정관리 기업이라고 직원들에게 무조건 희생만 하라고 하면 답보상태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어요?” 다양한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해 직원들의 사기를 올린 것도 백 사장의 아이디어다.


그는 또 ‘팔릴 만큼만 만들자’는 기치 아래 재고를 최소화하는 데 역점을 뒀다.
재고를 정상가의 10% 수준에서 판매하는 이른바 ‘땡처리’는 많은 의류업체들의 고질병이었다.
외형 위주의 성장을 추구한 데서 빚어진 결과였다.
나산은 ‘재고는 죄악’이라고 강조하면서 지난해 정상가 판매비율을 80% 가까이로 끌어올렸다.
이 비율이 55~60%만 돼도 손익분기점을 넘어선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실속있는 장사를 한 셈이다.


백 사장은 앞으로 “장기적으로 기존에 취급하지 못했던 유아복과 영캐주얼까지 포함하는 종합패션 전문회사를 만드는 게 희망”이라며 “이미 중국과 합작을 결정한 바 있는데, 해외에 진출해 세계적 브랜드로 키우는 것도 목표”라고 말했다.
앞으로도 그의 경영 마인드가 ‘수비’보다는 ‘공격’에 가까울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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