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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불법이민 봇물 “빗장을 걸어라”
[유럽] 불법이민 봇물 “빗장을 걸어라”
  • 최우성 기자
  • 승인 2002.06.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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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 정상회의 주요 의제로 떠올라… 국경경찰 창설 등 공동 대처방안 관심거리 지난 6월21일과 22일 이틀간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유럽정상회의에서는 불법이민에 대한 유럽연합 차원의 공동 대처방안이 핵심쟁점으로 떠올랐다.
이번 정상회의는 2002년 상반기 동안의 유럽연합내 주요 쟁점들을 정리하고 하반기 의제를 조율하는 연례행사였다.
이번 행사에서 무엇보다도 불법이민 문제가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데는 유럽대륙에서 극우주의 물결이 더욱 거세지고 있는 최근 정세가 한몫 했다.
특히 올해 상반기 총선이나 대선을 치른 네덜란드, 프랑스 등에서 극우성향의 목소리가 큰 위력을 떨친 사실은 각국 정치지도자들이 불법이민 문제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한 계기가 되었다.
프랑스의 인민전선, 오스트리아의 자유당, 네덜란드의 포르튄 리스트, 이탈리아의 북부동맹, 덴마크의 인민당 등 유럽대륙 전체에서 극우성향의 정치세력이 일제히 총공세를 펴는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든 이 문제를 짚고넘어가지 않으면 자칫 정치적 주도권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이번 행사를 앞두고 특히 관심을 끌었던 의제는 크게 두가지다.
그 하나는 유럽연합 가맹국들이 개별국가 차원의 국경수비대 대신 유럽연합 차원의 국경경찰을 창설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또 다른 하나는 불법이민자의 모국 정부가 스스로 불법이민 행렬을 막으려는 성실한 노력을 게을리할 경우, 이들 국가에 대한 개발원조자금 공여를 제한하자는 주장이었다.
이들 의제들은 앞으로도 큰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합법 가장한 밀입국 더욱 심각 전문가들은 매년 서유럽지역으로 몰려드는 불법이민자 규모가 5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껏 알려진 가장 대표적 밀입국 루트는 해상을 이용해 이탈리아에 상륙한 다음, 육로를 거쳐 서유럽지역으로 흘러드는 코스를 꼽을 수 있다.
특히 폭이 100km가 채 안 되는 아드리아해는 발칸지역으로부터 이탈리아로 넘어오는 밀입국 행렬들이 애용하는 코스다.
최근에는 지중해를 이용해 멀리 아시아지역의 난민이나 이라크내 쿠르드족이 유럽대륙으로 흘러드는 경우도 매우 잦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중국인 밀입국자 수가 크게 늘면서 각국 정부를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하지만 유럽대륙의 밀입국 문제에 정통한 사람들은 이처럼 전통적 ‘밀항’ 방식보다는 합법적 절차를 가장한 밀입국이 크게 늘고 있는 게 더욱 심각하다고 한결같이 입을 모은다.
위조여권이나 허위증명서를 통해 정식비자를 발급받아서 입국하는 사례가 눈에 띄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하는 게 바로 밀입국 알선 전문조직들이다.
독일 정보당국은 이들 밀입국 전문조직과 관련한 지하경제 규모가 마약밀매의 경우보다 더 큰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밀입국 알선 범죄행위가 마약밀매 범죄행위보다도 처벌수위가 낮다는 점도 범죄조직들이 마약보다는 ‘인간’을 거래하는 쪽으로 관심을 돌린 이유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유럽연합 당국이 밀입국 알선범죄의 메카로 파악하고 있는 지역은 모스크바(러시아), 민스크(벨로루시)와 키예프(우크라이나)를 잇는 이른바 ‘삼각지대’다.
이들 지역에는 현재 서유럽지역으로 밀입국하기 위해 대기중인 사람만 200만이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알선조직을 통해 합법적 여권과 비자를 획득한 다음, 서유럽지역으로 넘어오게 된다.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하는 체코지역도 관심을 끈다.
독일 국경수비대가 밝힌 자료를 보면, 독일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체코지역에는 불법이민을 계획하고 있는 약 20만가량의 대기자가 항상 몰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지중해를 낀 남부유럽도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특히 멀리 중국으로부터 온 난민들은 유고 베오그라드에 일차로 집결한 다음, 헝가리와 체코를 거쳐 육로로 독일에 들어오거나, 해상을 이용해 이탈리아, 프랑스 등지로 흘러드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들 지역 역시 밀입국 알선조직의 주요 활동무대가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독일정보부는 항공편을 이용한 합법적 밀입국에 드는 비용이 일인당 4천달러, 여객선을 이용하는 경우가 2천달러, 소형보트를 통한 밀입국에 드는 비용이 600달러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100% 성공률을 보장하며 1만달러를 받는 경우도 흔한 편이다.
방조국가 원조 중단 목소리도 지금까지 각국 정부가 맡고 있던 밀입국 방지 감시역할을 떠안을 유럽연합 차원의 국경경찰을 창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이런 사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유럽연합 가맹국들은 ‘솅겐협약’에 따라 역내 국경에서는 검문을 폐지하는 대신 역외로부터 들어오는 국경은 철저하게 관리하도록 합의했지만, 그간 역외로부터의 밀입국 행렬을 제대로 막아내기는 어려웠다.
아무래도 개별 가맹국에 따라 국경을 관리하는 정도가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역외지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국가들과 역내 국가들과만 국경을 접하고 있는 국가들 사이에서 이해가 상충하는 것도 한몫 했다.
유럽연합 차원의 국경경찰을 창설하자는 주장에는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 좀더 통일적 국경관리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가맹국들이 역외지역과 국경을 접하건 아니건 간에 국경경찰 유지비용을 공평하게 부담하도록 하는 건 물론이다.
하지만 유럽 국경경찰 등 유럽연합 차원의 공동대처방안을 마련하는 일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등 밀입국의 표적이 되고 있는 나라들은 좀더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하는 반면, 스웨덴, 핀란드 등은 상대적으로 관심도가 떨어지는 편이다.
독일, 프랑스 등은 오히려 밀입국자의 모국 정부에 압력을 행사해 간접적으로 불법이민을 막으려는 데 무게를 두는 편이다.
유럽정상회의가 열리기 일주일 전인 6월12일에는 15개 가맹국의 내무장관들이 모여 장차 불법이민 행렬을 방조하는 국가들에 대해서는 각종 원조자금 제공을 중단하도록 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유럽연합 집행부에 이같은 내용의 조치를 취해줄 것을 건의하기도 했다.
경제계에서는 밀입국 문제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조금씩 힘을 얻고 있어 눈길을 끈다.
특히 포르투갈은 국내로 들어온 밀입국자들이 주로 농업부문에 흡수되어 계절노동자로 일하기 때문에 비교적 이 문제에 관대한 입장을 보여주기도 한다.
독일 경제계를 대표하는 경총(BDI)의 노동시장 전문가 로베르트 헨켈은 “현재 독일 국내에 체류중인 불법 밀입국자의 50%가량에 대해서는 합법적 지위를 부여해도 상관없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그만큼 불법 밀입국자들이 주요 국가들의 경제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현실적으로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일자리를 구해 노동을 하고 있음을 증명할 수만 있다면, 합법적 체류허가를 부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힘을 얻는 것도 이런 사정과 맥을 같이한다.
어쨌든 유럽대륙으로 몰려드는 불법 이민문제를 유럽연합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다루려는 움직임은 앞으로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이 문제는 오는 2004년으로 예정된 유럽연합 확대에 앞서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핵심과제라는 공감대가 어느 때보다도 널리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눈길은 자연스레 개별 가맹국 사이에 얽혀 있는 복잡한 이해관계를 넘어서 좀더 효과적인 공동 대처방안을 내놓을 수 있을지에 모아지고 있다.
“불법이민 문제는 더이상 한나라의 국내문제가 아니라 유럽의 문제”라는 영국 내무장관 데이비드 블렁킷의 말에서는 유럽 각국이 처한 절박함이 진하게 묻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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