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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보험시장 ‘제 2라운드’
[비즈니스] 보험시장 ‘제 2라운드’
  • 장승규 기자
  • 승인 2002.06.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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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만에 관련법 전면 개정… 방카슈랑스, 손ㆍ생보 겸업시대 열려 재정경제부가 마련한 보험업법 개정안을 놓고 보험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이미 예상된 내용이 많긴 하지만, 은행에서 보험상품을 취급할 수 있는 ‘방카슈랑스’의 도입이나 생명보험과 손해보험간 교차모집 허용 등 업계에 지각변동을 가져올 새 제도들이 구체적인 형태로 제시되자 저마다 득실 따지기에 분주한 모습이다.
그러나 이번 보험업법 개정안은 25년 만에 전면 개정을 추진하는 것으로,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어 본격적인 논의까지는 다소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개정안에는 방카슈랑스 도입에 대비해 모집방법과 판매상품 범위 등 그 근거규정이 신설됐다.
예정대로 내년 8월부터 은행도 보험상품을 판매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점포 안에서만 판매해야 하며, 별도의 모집인을 둘 수 없다.
보험 구입을 전제로 한 대출 등 불공정 모집행위도 엄격히 금지된다.
판매상품의 범위는 은행에서 판매하기 쉽고 겸업화의 시너지 효과가 큰 상품부터 단계적으로 확대된다.
정재욱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방카슈랑스는 은행 창구에서 동일한 인력으로 보험상품도 팔 수 있도록 해 경영효율을 극대화하자는 것”이라며 “은행들이 따로 설계사를 두면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판매상품 범위 규정은 자율성 확대라는 개정안의 근본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많다.
판매상품의 선택은 영업전략에 따라 개별 업체가 스스로 결정할 문제라는 것이다.
내년 8월부터 은행에서도 보험상품 판매 앞으로 생명보험사 설계사가 손해보험사 상품을 팔 수 있고, 손해보험사 설계사도 생명보험사 상품을 팔 수 있게 된다.
생명보험과 손해보험간 교차모집이 허용됐기 때문이다.
계열그룹 내에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가 함께 있는 보험사들이 시장경쟁에서 유리해졌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경우 두 회사의 설계사를 모두 합하면 5만5천명에 이르고 대리점도 1만4천개나 된다.
이들 조직을 활용해 생명보험상품과 손해보험상품을 함께 판매한다면 그 효과는 엄청날 것으로 예측된다.
지난해 출범한 교보자동차보험은 현재 시장점유율이 0.5%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교보생명의 막강한 영업망을 활용할 수 있게 되면, 초고속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관계자는 “교차모집의 허용으로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간 짝짓기가 활발해지고, 손해보험이나 생명보험 중 한쪽 시장에만 진출해 있는 기업의 신규시장 진출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교차판매 허용으로 모집인들도 고객에게 종합적인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개정안은 금융감독원에서 맡고 있는 보험상품의 사후 관리기능을 보험개발원으로 이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재 보험상품은 상품개발 기준에만 맞으면, 판매 후 금융감독원에 보고만 해도 된다.
상품개발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에는 금융감독원에 판매 전에 신고해야 한다.
그러나 개정안에서는 판매 후 보고할 기관이 금융감독원에서 보험개발원으로 변경됐다.
문제는 보험개발원이 보험사들이 출자해 설립한 연구기관이라는 데 있다.
참여연대는 성명서를 내고 “보험개발원은 보험사들의 이익단체라고 할 수 있다”며 “금융감독 당국의 사후감독 장치를 없애버린 것은 보험소비자를 보호해야 할 정부의 역할을 포기한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정재욱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원은 “보험상품에 대한 최종적 관리를 보험료율 산정기관인 보험개발원에 맡기는 것은 맞지 않다”며 “전문인력을 많이 확보한 보험개발원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은 안 된다”고 지적했다.
금융감독원도 발빠른 대응에 나섰다.
금융감독원은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심사한 787종의 보험상품 중 120종(15.2%)에서 문제가 발견돼 시정 또는 보완 지시를 내렸다고 밝혔다.
사업비를 과도하게 부과하거나 약관에 교묘하게 무효조항을 삽입한 사례가 많았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감독당국의 심사가 없었더라면 계약자는 불합리한 계약내용으로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적발사례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어 규제완화가 아니라 오히려 엄격한 감독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손광기 금융감독원 보험총괄팀장은 “보험상품의 사후 심사는 더 강화돼야 한다”며 “보험 가격의 적정성 여부는 사후에야 판단할 수 있고, 너무 높아도 문제지만 너무 낮아도 보험사의 재정 건전성을 해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보험사들은 주식소유, 대출 등에서 각종 규제를 받고 있지만 개정안에선 이런 규제 가운데 많은 부분이 폐지되거나 완화됐다.
자산운영의 자율성이 크게 확대된 것이다.
대주주에 대한 투자 및 융자한도도 현재 총 자산의 5%에서 자기 자본의 100%로 변경됐다.
먼저 자산이 아니라 자기자본을 규제기준으로 삼은 점이 눈에 띈다.
보험사의 자산 대부분이 계약자의 몫인 만큼 이는 바람직한 변화로 평가된다.
그러나 변경된 기준을 적용할 경우 삼성화재의 경우 대주주에 줄 수 있는 투자 및 융자 한도가 4807억원에서 2조532억원으로 크게 늘어난다.
구경회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한도가 늘어난다고 해서 모두 계열사에 대한 투자 및 융자로 간다고 보진 않는다”며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은 계열사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신규 진출·업계간 짝짓기 활발… 시장 대격변기 5대 그룹의 보험업 신규 진입을 허용한 것도 논란거리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5대 그룹은 대개 보험 계열사를 갖고 있어, 신규진입 금지조항이 이미 실효성을 상실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번 법 개정으로 새로 보험시장에 진출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참여연대는 “진입규제 유지의 실익이 없다는 주장은 사실 왜곡”이라며 “5대 그룹의 금융지배가 더 강화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삼성그룹은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를 모두 갖고 있다.
그러나 SK는 생명보험사만 갖고 있으며, 한진그룹은 손해보험사만 갖고 있다.
LG화재가 계열 분리된 LG그룹과, 현대차그룹은 보험사가 없는 상태다.
참여연대는 생명보험과 손해보험간 교차모집 허용 등으로 생명보험사나 손해보험사를 모두 갖고 있는 그룹이 시장경쟁에서 유리해진 만큼, 삼성그룹을 제외한 5대 그룹이 생명보험이나 손해보험 또는 둘 모두에 새로 진출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외국 보험사들도 모두 들어와 있는 상황에서 5대 그룹의 진입만 차별적으로 금지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보험사가 파산할 경우, 운전학원 종합보험·가스사고 배상보험·화물배상 책임보험 등 13개 의무보험과 자동차종합보험 피해자의 손해를 손해보험협회가 전액 지급보장하도록 한 규정도 큰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보험사들은 무리한 영업으로 망한 보험사의 책임을 보험업계 전체가 나눠 책임지는 것은 시장원리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파산한 회사를 나머지 회사가 돈을 갹출해 메워주는 것은 피해를 일반 계약자에게 떠넘기는 게 된다”며 “보험회사의 돈은 결국 계약자의 몫”이라고 말했다.
정재욱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예금자보호법이라는 사전 갹출제도가 있는데, 사후 갹출제도를 또 도입하는 것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일”이라며 “계약자 보호에는 바람직할지 몰라도 도덕적 해이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생명보험협회가 7월 중 공청회를 열기로 하는 등 22년 만에 이루어지는 보험업법 전면개정을 둘러싼 논의는 앞으로 더욱 뜨겁게 달아오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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