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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화장품 냉장고 내가 ‘원조’
[비즈니스] 화장품 냉장고 내가 ‘원조’
  • 한정희 기자
  • 승인 2002.06.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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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들간 특허 공방중 삼성전자 제품 출시… 중국산마저 유입돼 한바탕 ‘회오리’ 올 여름 냉장고 전쟁이 업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일반 냉장고가 아니라 화장품 냉장고 얘기다.
김치냉장고에 이어 최근 여성들의 소비심리를 자극하고 있는 것이 화장품 냉장고다.
이는 화장품을 적당한 온도로 보관해 기능성과 보존성을 높이는 전용 냉장고를 말한다.
여성들이 평소에 일반 음식용 냉장고에 화장품을 넣어두고 사용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이에 착안해 몇몇 중소기업들이 1998년부터 화장품 냉장고를 개발해 출시했다.
하지만 그동안은 판매실적이 별로 좋지 않았다.
화장품 냉장고에 대한 인식도 없었고 수요도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케팅도 뒷받침되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과 올해 들어 화장품 냉장고 시장은 급격히 달아올랐다.
이 시장이 확대된 것은 무엇보다 화장품 업계에서 기능성 화장품을 대거 출시하고, 이에 대한 소비자들의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기능성 화장품은 대부분 천연성분을 원료로 사용하고 방부제를 쓰지 않기 때문에 평상온도에 방치하면 상하기 쉽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실험 결과에 따르면, 레티놀 제품의 경우 상온에서 보관한 제품은 냉장 보관한 것에 비해 80~90% 정도의 기능만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실험 결과도 화장품 냉장고의 판매를 부채질하는 간접요소가 됐다.
뿐만 아니라 화장품 냉장고 시장이 확대되기 시작하자 여러 업체에서 제품을 내놓고 경쟁을 하게 되어, 가격이나 기능 면에서 소비자들의 선택 폭이 넓어지고 기술적으로도 많이 보완됐다.
중소기업 6~7개 얽혀 있어 현재 화장품 냉장고의 주요 생산업체는 벤처나 중소기업 10여개사다.
세화, 매직아트, 성민테크놀로지, 넥스필, 씨코, 킴슨, 재경, 하나카드넷 등이 그들이다.
소비자 가격은 20만원대다.
현재 화장품 냉장고 시장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힘들다.
다만 화장품 시장을 통해 간접적으로 시장성을 판단해볼 수는 있다.
화장품 업계에 따르면 국내 화장품 시장 규모는 5조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중 냉장 보관해야 하는 기능성 화장품이 40%에 이르며, 그 시장은 매년 10% 이상의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화장품 냉장고를 판매하는 한 업체의 소비자 조사에 따르면, 현재 화장품 소비자들 가운데 고가 화장품 수용 리더층은 27% 정도다.
그리고 이들 중 64%는 화장품 냉장고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고, 50%는 화장품 냉장고를 구입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고 한다.
실제로 화장품 냉장고는 지난해 4분기에 4천대 정도 팔렸고, 올해는 7만대 가까이 팔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시장이 달아오르면서 업계의 경쟁이 치열해졌다.
최근 화장품 냉장고 업계에서 기술특허 침해논란이 불거진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올해 초 성민테크놀로지, 킴슨, 하나카드넷, 재경 등은 전자제품 유통업체 넥스필과 화장품 냉장고 생산업체 매직아트가 갖고 있는 특허권을 무효로 해달라고 특허심판원에 신청했다.
이 사안에 심의가 진행중이던 5월말에는 넥스필과 매직아트가 “세화가 화장품 냉장고를 제조해 판매하는 것은 특허권 침해”라며 특허침해 금지소송을 제기했다.
넥스필과 매직아트는 화장품 냉장고의 핵심부품인 ‘열전도 반도체’를 비롯한 관련 특허 2개를 96년에 공동으로 획득한 바 있다.
매직아트 전승 사장은 “관련 기술과 냉장고 금형은 내가 개발했지만 당시 건강상의 이유로 상품화를 할 수 없어 임의계약을 체결해 그동안 세화쪽에서 냉장고를 만들도록 했다.
그런데 세화가 핵심기술을 다 이전해가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특허마저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특허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세화 이호철 영업부장은 “전승 사장이 특허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으나 그 당시는 이 특허기술에 대해 잘 몰랐다”며 “그동안 로열티를 지급해왔으나 관련 기술자료를 추적한 결과 이미 미국과 일본에 선행기술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카피해온 기술임에도 제대로 조사도 하지 않고 특허를 내준 특허청도 문제가 있다”며 “특허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결국 지난 5월31일 특허심판원은 넥스필과 매직아트가 가지고 있는 특허는 무효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대해 매직아트 전승 사장은 “현재 변리사와 상의중인데, 특허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불복의사를 밝혔다.
업계의 특허권 공방이 얽혀가는 가운데 또 다른 파란이 일어났다.
6월13일 삼성전자에서 화장품 냉장고를 전격 출시한 것이다.
그것도 화장품 업체인 태평양과 공동으로 연구개발해, 두 회사의 브랜드를 동시에 내걸고 시장에 진입한 것이다.
대기업의 진출로 화장품 냉장고 시장 전체의 마케팅 효과가 커졌지만, 특허에 관한 논란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대기업이 이 시장에 진입한 것을 두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삼성 진출에 중소기업들 이중고 삼성은 우선 브랜드 파워를 바탕으로 화장품 냉장고 가격을 20만원대에서 39만원선으로 높였다.
게다가 태평양과 공동 마케팅 활동에 나섰다.
그러자 그동안 화장품 냉장고 시장을 꾸준히 키워오면서 시장의 파이를 나눠먹던 중소기업체들에 비상이 걸렸다.
95년 만도공조가 김치냉장고를 개발해 김치냉장고 붐을 일으키자 97년 삼성전자가 뛰어들고 99년에는 LG전자가 가세했던 경우와 비슷하다.
중소업체 관계자들은 “중소기업이 키워놓은 시장을 대기업이 싹쓸이하겠다는 심산”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LG전자는 아직 화장품 냉장고 시판 계획이 없다고 밝혔지만 ‘당분간’이라는 수식어를 달았다.
세화 이호철 부장은 “화장품 냉장고는 중저가형 모델이다.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에서 해야 하는 모델이고 시장도 일궈놓았는데 대기업에서 손을 대고 있다.
이는 중소기업을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냉기사업부 이재승 개발부장은 “화장품 냉장고는 필요한 제품인데 기본적으로 퀄리티가 낮은 게 문제”라며 “대기업이 밀어줘야 이 시장에서도 마케팅에 탄력이 붙기 때문에 시장을 키운다는 측면에서 참여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삼성전자는 이미 화장품 냉장고가 처음 출시됐던 때부터 이 시장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특허문제도 꼼꼼히 조사했다.
이재승 개발부장은 “제품개발에 앞서 특허검색은 기본이며, 이미 선행특허가 나와 있는 기술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삼성은 지난해 초에는 세화쪽과 화장품 냉장고 생산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접촉해왔으며, 지난해 6~7월께 세화는 1차 모델을 만들어 삼성에 공급하기로 했었다.
제조업체인 세화가 특허권을 갖고 그 브랜드를 부착하되, 마케팅 등 판매쪽만 삼성전자가 담당하는 제조자설계생산(ODM) 방식이었다.
그런데 이 계약은 지난해 7월 깨져버렸다.
세화쪽은 “삼성이 가격과 품질면에서 무리한 요구를 계속해왔다”고 주장한다.
일단 세화로서는 삼성에서 요구하는 원가를 맞춰줄 수가 없었다.
또한 삼성은 품질면에서도 “구체적 기준없이 하이 퀄리티만 요구했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러나 삼성전자 이재승 개발부장은 “냉장고 안에 이슬이 맺히는 부분 등 품질면에서 개선요구를 했으나 개선되지 않아 독자 개발하게 됐다”고 밝혔다.
결국 지난해 7월 삼성과 결별한 세화는 지난해 10월 독자적 상품을 출시하게 됐다.
이후 삼성 역시 독자적인 제품을 올해 6월12일 출시하게 된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소 화장품 냉장고 업체들은 내부적으로는 특허문제의 갈등을 어떻게든 해결하면서, 동시에 대기업의 진출에 대비한 대응방향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게다가 최근 중소 화장품 냉장고 업계를 더욱 걱정스럽게 하는 것은 중국제 화장품 냉장고의 유입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최근 우리 업체들 제품과 모양을 똑같이 카피해서 만든 중국산 제품이 들어와 있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며 “중국의 싼 임금을 감안할 때 치명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세화 이호철 영업부장은 현재 시장을 분할하고 있는 7~8개 업체가 이러한 여러가지 상황에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해 모임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모임의 의제에는 특허문제와 관련된 내부공방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도 포함돼 있으며, 대기업 진출과 중국산 유입과 관련한 공동 대응 마케팅도 논의할 예정이다.
이 모임에는 매직아트와 넥스필도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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