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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현대차, 잔치 즐길 여유없다
[비즈니스] 현대차, 잔치 즐길 여유없다
  • 김정수/ 한겨레 경제부 기자
  • 승인 2002.07.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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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대박, 파업·디젤차 판금 선방 축제속 GM대우차 출범·원화강세 등 복병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 유럽의 강호들을 잇따라 꺾으며 아시아 최초의 월드컵 4강 진출이라는 신화를 일궈낸 한국 축구대표팀의 예상밖 선전에 흥분하지 않은 사람이 없겠지만, 특히 현대자동차 경영진의 기쁨은 각별했다.
한국팀이 선전하는 만큼 국가 이미지가 상승했고, 이는 다른 어느 국내기업보다 월드컵 공식후원사인 현대자동차 브랜드 이미지의 동반상승으로 직결됐기 때문이다.
애초 목표가 16강 진출이었던 만큼, 그 이후 8강에서 4강까지 치고 올라가면서 거둔 홍보효과는 덤으로 챙긴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현대자동차 김동진 사장은 6월27일 “한국팀의 선전으로 국가 이미지가 상승하고 기업의 위상이 올라가는 등 무형의 효과까지 감안하면 홍보효과는 80억달러가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가 월드컵 마케팅에 투자한 금액은 1천억원 정도이니 단순 계산으로도 100배에 가까운 대박을 터뜨린 셈이다.
국내외 호재에 자신감, 확대경영 급피치 현대차는 이번 월드컵 마케팅을 통해 전세계적으로 브랜드 인지도가 10% 이상 올라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실제 이웃 일본에서 한국의 16강 진출이 확정된 뒤 현대자동차의 브랜드 인지도를 조사해본 결과 지난 2월(32%)의 두배가 넘는 67%로 나오기도 했다.
이에 따라 회사 내부에서는 당장 해외시장에서 차량 판매가격을 100달러씩은 올려도 시장에서 충분히 받아들일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사실 현대차가 그룹 차원에서 이번 월드컵에 기울인 정성을 감안하면 현대차는 히딩크식 표현대로 지금의 성과를 즐길 자격이 있다.
현대차는 한일 양국 경기장에 공식광고판을 설치한 것말고도, 월드컵과 연계한 기업 이미지 광고, 월드컵조직위원회에 운영차량 지원, 한국 선수단 전원 승용차 경품 제공, 국내외 주요 인사 초청 등 월드컵 마케팅에 전사적 노력을 기울였다.
현대차가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등 그룹 계열사와 함께 구입한 월드컵 입장권만도 3만여장으로 자산 2조원 이상의 33개 국내 대기업그룹에서 구입한 입장권의 30%가 넘는다.
환경단체의 반발로 힘든 싸움이 예상됐던 경유자동차 문제도 선방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기준으로 951대가 팔려 명목만 이어가던 트라제XG 7인승을 떼어주는 대신 5만11대가 팔린 인기 차종인 싼타페 7인승을 지켜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교보증권 임채구 애널리스트는 “만약 애초 대기환경보전법시행규칙대로 7월 이후 싼타페 7인승 디젤의 내수판매가 금지되면 현대자동차는 연간 1조5천억여원(전체매출액의 6.0%)의 매출손실을 입어야 했으나, 트라제XG 7인승 디젤의 내수판매 금지에 따른 매출손실은 800억원대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노사 임금협상이 최악의 사태까지는 가지 않고 6월27일 최종타결된 것도 현대 경영진들의 입을 벌어지게 만드는 요소다.
현대자동차 노사가 합의한 임금협상안은 6월21일 열린 노조조합원 찬반투표에서 부결돼 험난한 협상을 예고하는 듯했다.
하지만 다시 협상을 벌인 회사는 25일 노조와 2차 합의안을 이끌어냈고, 27일 이를 다시 노조조합원 찬반투표에 부쳐 가결시키는 데 성공했다.
최종타결된 합의안의 임금인상 내용은 통상급 대비 임금 6.1%(7만7800원), 제수당 1만7200원 인상까지는 1차 합의안과 동일하며 성과급의 지급시기만 앞당기는 것으로 돼 있다.
회사의 조삼모사식 제안이 의외로 통했던 것이다.
해외부문에서도 씽씽 잘 달리고 있다.
지난 6월19일치 인도 이코노믹타임스는 현대자동차가 올 들어 인도 자동차 시장에서 경차를 뺀 나머지 부문에서 모두 최고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대 수출시장인 미국에서도 잦은 리콜과 바닥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되는 품질수준에도 불구하고 언론으로부터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의 권위지인 <월스트리트저널> 6월26일치에는 “재규어 같은 차를 몰고다닌다고 윗사람한테 눈치가 보일 것 같으면 현대차 XG350L(한국명 뉴그랜저XG)를 사라”는 거의 현대차를 광고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현대가 만들면 팔린다’ 안이한 물량주의 위험 현대차 경영진이 거침없는 확대경영을 펼치는 데는 이런 내외여건에 대한 자신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현대차는 지난 2개월 사이에만 미국 공장 기공, 중국 베이징자동차와 전략합자협의서 체결, 현대-다임러크라이슬러-미쓰비시 승용차엔진 합작법인 설립 계약, 중국 베이징자동차와의 합작공장 계약 등의 굵직굵직한 사안들을 숨가쁘게 몰아쳐왔다.
월드컵 마케팅을 포함한 현대차의 모든 일정은 기아차를 포함해 2010년까지 생산량 500만대로 미국의 제너럴모터스와 포드, 일본 도요타에 이어 세계 4위의 자동차그룹으로 올라서는 데 맞춰져 있다.
지난해 기아차와 함께 모두 252만대를 생산해 처음으로 생산량 9위로 세계 10위권에 진입한 현대차는 올해 생산량을 10만대 이상 늘려, 일본 닛산자동차를 제치고 8위로 올라서는 것을 올해 목표로 삼고 있다.
현대차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혼다에 15만대, 닛산에 6만대를 뒤졌으나 올 들어 닛산이 일본 내수시장에서 혼다에 밀리고 있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대차가 물량만으로 4위를 목표로 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지적도 많다.
수익성 확보없이 덩치만 키운 기업이 결국 어떻게 되는지는 대우차가 너무도 생생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150만7천대를 팔아 1조1654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대당 77만원꼴이다.
반면 생산량면에서는 현대차에 크게 뒤지는 BMW는 지난해 100만984대를 팔아 우리돈으로 2조1667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대당 판매순이익 216만원인 셈이다.
자동차공업협회 김소림 부장은 “목표를 높게 설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실을 함께 다져나가는 것이 더 주요하다”며 “물량에만 치중하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고 말했다.
현대차의 앞날이 밝기만 한 것은 아니다.
현대차는 당장 제너럴모터스(GM)라는 든든한 배경을 업고 9월께 출범할 GM대우차를 상대로 내수시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이 경쟁에서 현대차는 얼마가 됐든 기존에 가지고 있던 시장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SM5로 현대차 쏘나타의 아성을 위협했던 르노삼성차는 7월3일 소형차 SM3를 내놓는다.
현대차가 지금까지 차지하고 있던 시장을 일부라도 내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SM3의 시장잠식력은 아직 미지수이지만 SM5가 중형차 시장에 일으킨 돌풍을 감안하면 의외로 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함께 원화절상 추세의 지속에 따른 수출 채산성 악화도 단기적으로는 무시할 수 없는 불안요소다.
현대차의 물량 위주의 공격경영은 최근 3년여 동안 확보한 3조원대의 이익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순익이 앞으로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극히 불투명하다.
현대자동차가 만들면 팔린다는 안이한 물량주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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