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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비상구 없는 중소기업 인력난
[커리어]비상구 없는 중소기업 인력난
  • 황보연 기자
  • 승인 2002.07.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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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률 급락·경기회복세로 사상 최악… 외국인 산업연수생 채용도 만만치 않아 IMF 직후 실업률이 끝없이 치솟던 시절에도 중소기업은 인력난에 시달렸다.
요즘 경기가 회복되면서 중소기업 인력난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5월 실업률은 2.9%. 그러나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중기협)가 401개 중소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하반기 인력채용 전망 조사’에서는 예상 인력부족률이 10.7%로 나타났다.
이는 상반기 조사에서 나타난 6.3%에 비해 크게 높아진 수치다.
생산직(인력부족률 11.5%)의 경우는 사무직(8.0%)보다 인력난이 훨씬 심각하다.
또 기업규모가 작을수록 인력난이 심각한데, 20명 미만 소규모 기업의 인력부족률은 17.5%, 그중에서도 생산직은 19.3%에 달한다.
조사를 담당한 중기협 관계자는 “연구개발직을 포함한 2000년 하반기의 11.1%를 제외하면, 조사를 시작한 1995년 이후 올 하반기가 최악”이라고 말했다.
82.5%의 업체가 올해 하반기에 신규인력을 채용할 의사가 있다고 응답했지만, 희망인원을 전원 채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 업체는 31.6%에 불과했다.
열악한 환경·낮은 임금이 걸림돌 최근 기업은행이 1606개 중소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3분기 중소제조업 경기 전망’ 결과도 이와 비슷하게 나타났다.
이번 조사에서 중소기업이 2분기에 겪은 어려운 요인 가운데 ‘인력부족’을 꼽은 업체는 29.1%였다.
이 수치 역시 97년 3분기 이후 최고치다.
중소 제조업체의 3분기 경기선행지수(BSI)가 117로 나타난 것으로 봐서는, 경기호조세가 지속되고 있다.
건설과 소비재 부문을 중심으로 내수경기가 살아난데다, 4월 이후 수출이 꾸준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로서는 인력을 충원할 필요성이 그만큼 높아진 셈이다.
하지만 기업들은 경기호조세를 뒷받침할 인력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반월공단에 있는 공구제조업체 예스툴 한종철 총무과장은 “각종 구인광고를 내서 겨우 채용해도 두세달 만에 그만둬버리는 경우가 많다”며 “1년 이상 근속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3D 성격이 짙은 업체들은 아예 신규인력 채용 자체를 포기해버리기도 한다.
중소기협 조사에서도 5.2%는 하반기에 아예 신규 채용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답했다.
실제 부천의 한 볼트너트 생산업체 사장은 “늘 30% 정도의 인력부족에 시달려야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며 “일은 적게 시키고 임금은 더 얹어줘야 올까 말까 한 실정”이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중소업체들의 인력난은 무엇 때문일까? 인터넷 채용정보 업체 잡링크 www.joblink.co.kr가 구직자 104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응답자 가운데 31%는 노동환경만 개선되면 3D 업종이라도 취업하겠다고 응답했다.
또 29.3%는 ‘임금 인상’, 20.1%는 ‘복지수준 향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잡링크 김현희 홍보실장은 “워낙 구직자들이 몰리지 않다 보니 중소업체들은 모집공고 비용만 축내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열악한 근무환경에 대한 부정적 시선만으로 최악의 중소기업 인력난을 설명하긴 힘들다.
우선 전체 실업률이 IMF 이전 수준인 2%대로 떨어진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안주엽 동향분석실장은 “경기의 급속한 회복과 실업률의 급락으로 중소기업의 인력난은 더욱 심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졸자가 많은 청년층의 경우에는 전체 일자리가 늘어난 만큼 중소기업으로 하향 지원하느니 실업자로 남아 있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에 따라 5월 청년실업률은 7.3%에 달했다.
또 건설업의 임시일용직을 중심으로 취업자가 증가하면서 중소기업으로 올 만한 인력들을 빼앗아가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여기에다 산업기능요원 배정에 관한 요건 강화와 외국인 산업연수생 부족 등도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병무청은 병역특례업체 신청 자격기준을 종업원 5명 이상에서 30명 이상으로 강화했다.
산업기능요원 비중이 2000년 11.7%에서 2001년 15.5%로 높아지고 있어 오히려 제도를 확대하기를 바라는 중소기업의 마음을 너무도 몰라주고 있는 것이다.
한 중소업체 관계자는 “앞으로 산업기능요원을 배정받기 위해 억지로 30명을 채워야 하는 것이냐”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외국인 산업연수생도 총 정원이 8만명을 넘어서면서 신규공급이 어려운 상태다.
중소 제조업체들은 점점 싼 임금에 대한 선호보다는 인력충원 자체가 어려워 외국인 연수생을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젊은층 제조업 기피현상 심각 근본적으로는 제조업 자체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지고 있다는 문제를 꼽을 수 있다.
LG경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주력산업이 늙어가고 있다>는 제목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 기준으로 전통 주력산업인 철강, 화학, 섬유, 조선 등의 노동자 평균연령은 37~39살에 이른다.
이에 비해 컴퓨터, 통신장비 관련 제조업과 정보처리 서비스업, 소매업 관련 서비스업의 평균연령은 30~31살로 나타나 차이가 크다.
제조업에 대한 젊은 연령층의 기피현상이 심화하고 있고, 이는 학생들의 이공계 기피현상과도 맥락이 닿아 있다.
사상 최악이라는 중소기업의 인력난은 결과적으로 비정규직 양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중소기협 조사에 따르면 비정규직을 1명 이상 두고 있는 업체의 비중은 54.1%이고, 전체 생산직 인력 가운데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중은 12.6%다.
이러한 비중은 앞으로도 늘어날 전망이다.
외국인 산업연수생이나 산업기능요원을 비롯해 일용노동자, 시간제, 계약제, 파견 노동자들로 생산현장이 채워지면 기술축적이 어렵기 때문에 생산성 향상에서도 치명적이다.

편견 없애고 실질적 지원책 절실

사상 최악의 중소기업 인력난을 맞아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노동연구원 안주엽 동향분석실장은 “고실업에서는 고용창출이 우선이었지만 저실업에서는 괜찮은 일자리(decent job)를 만드는 데 주안점을 두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일차적 문제는 중소제조업의 임금과 복지수준에 비해 구직자들의 희망 임금이 높은 데서 비롯하고 있다.
그러나 사정이 뻔한 중소기업이 자체적으로 개선책을 마련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정부 차원의 지원책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중소기협 관계자는 “중소기업에 취업할 수 있도록 정부가 각종 유인책을 마련해줘야 한다”며 “또 단기적으로는 외국인 연수생이나 산업기능요원 제도를 좀더 탄력적으로 운용해 급한 불을 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노동부는 열악한 작업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보조금을 무료로 지원하는 ‘Clean 3D 사업’, 중소기업에 대한 근로복지제도 확충, 인력 부족 직종에 대한 훈련 확대 등을 실시하고 있다.
중소기업청도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중소기업 체험활동(중활)을 실시해 중소 제조업체들이 적극적 구인에 나서도록 돕고 있다.
외국인 산업연수생에 대한 쿼터 확대 등도 추진중이다.
그러나 한 중소업체 관계자는 “정부에서는 말로만 떠들지 실질적 육성책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지원책이 쏟아져나오고 있긴 하지만 근본 해결책이 되긴 힘들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연구원 류재원 동향분석실장은 “단기적으로는 파격적 조세지원과 외국인 산업연수생 확대 등 종합적 지원이 필요하다”며 “그러나 좀더 근본적으로는 비전이 없는 국내 사양산업은 과감히 정리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불식시키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를테면 중학교 도덕교과서에는 중소기업체 사장이 공장폐수를 하천에 버리도록 지시하는 대목이 실려 있다.
이를 두고 ‘기업’이나 ‘회사’로 해도 되는데 굳이 ‘중소기업체’로 인용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높다.
중소기업청 정책총괄과 김장희 사무관은 “중소기업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내용을 개정하도록 교육인적자원부에 요청해놓은 상태”라며 “중소기업의 의미나 중요성을 담은 교재를 만들어 일반고등학교에서 부교재로 활용할 수 있도록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정확한 개념 정의 없이 중소제조업 전반을 폄하하는 ‘3D’라는 용어를 쓰지 말자는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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