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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은행권 주5일근무 파장
[초점] 은행권 주5일근무 파장
  • 황보연 기자
  • 승인 2002.07.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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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1일부터 시중은행들이 주5일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첫 토요휴무가 실시된 6일 대체로 큰 혼란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은행권 바깥에서는 주5일 근무제를 둘러싼 노사간 기세싸움이 다시 불을 지피고 있다.
중앙 차원의 노사정 협상이 교착상태에 머물러 있지만, 주5일 근무제 도입이 민간기업으로까지 확산될 조짐을 보이면서 재계와 노동계의 공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주5일 근무제가 사회 전반적으로 공감대를 얻어가면서 도입 자체에 대한 논란은 잦아들고 있다.
따라서 공방의 핵심은 어떤 방식의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할 것이냐에 있다.
또 법 개정을 염두에 둔 중앙 차원의 공방은 이제 개별 사업장별 노사간 힘겨루기로 옮겨가고 있다.



“거래은행 변경” “시대착오적 발상” 맞불


은행권의 주5일 근무에 대해 최근 재계는 초강경 입장을 드러냈다.
전경련, 경총,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등 경제5단체는 불만의 표시로 우체국이나 외국은행 등으로 거래 금융기관을 옮기도록 회원사들을 독려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다.
이미 노사합의에 따라 은행들의 주5일 근무는 기정 사실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재계가 이처럼 반발하는 이유는 뭘까? 우선 은행의 토요휴무로 기업의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는 것을 들고 있다.
특히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의 경우 월말이 토요일인 경우 수금이 어렵고 당좌결제를 미리 해야 하는 등 자금관리에 불편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 중기협이 중소제조업체 301개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95.6%의 업체가 은행권 주5일 근무제로 인해 불편하다고 응답했다.
또 이들은 무엇보다 은행권의 주5일 근무제가 다른 기업으로까지 빠르게 파급효과를 발생시키고 있다는 데서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실은 재계가 속을 태우고 있는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중소기협 이성희 홍보실장은 “주5일 근무 자체를 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라며 “중소기업의 경우 당장 시행하게 되면 임금인상이 20% 정도 예상되는 만큼 충분한 준비기간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월차 축소 등의 제도개선 없이 개별적으로 주5일제를 시행하면 임금인상만 유발시킬 것이라는 우려다.


그러나 경제5단체는 애초 은행권의 주5일 근무제에 대한 초강경 입장을 밝히기 위해 7월10일 열기로 했던 기자간담회를 돌연 취소했다.
따라서 이날 공식적 입장표명을 하기로 했던 ‘거래 금융기관의 변경 독려’ 방침도 일단 보류된 상태다.
경제단체들은 “기자간담회에 모이기로 한 각 단체 상근부회장들의 일정이 맞지 않았다”고 해명했으나, 노동계가 강력 반발하는 등 여론이 좋지 않은데다 재계내 의견 불일치, 정부의 자제압력 등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특히 재계내 의견조율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데는 기업 규모에 따라 주5일 근무제를 바라보는 시각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5일 근무제가 기업 전반에 확산되는 것을 우려하는 재계의 태도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니어서 초강경 조치에 대한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같은 재계의 태도에 대해 노동계는 대세를 거스르는 무책임한 행동이라며 항의하고 있다.
전국금융산업노조는 9일 성명을 통해 “이제 막 주5일 근무제가 시작된 시점에서 원점으로 되돌리려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한국노총도 “주5일 근무를 공공부문과 금융, 대기업에 우선 실시하자는 데 공감했던 기존 합의정신을 무시한 처사”라며 각종 항의시위 등으로 맞설 계획이다.
또 한국노총은 53개 소속노조(26개은행 포함)에서 이미 노사 자율협상을 통해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재계가 시대착오적 행동을 일삼고 있다”고 반발했다.



실제 산업현장에서는 법개정 없이도 주5일 근무를 도입하고 있는 업체들이 속속 늘고 있다.
노동부가 지난 2월 전국의 100인 이상 업체 5027개소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모두 191개소가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완전한 주5일은 아니지만 월1회 이상 토요휴무를 실시하고 있는 곳도 1131개(22.5%)나 된다.
이밖에 일부 대기업들이 주5일 근무제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고, 관련한 노사협상이 진행되거나 진행될 예정인 곳도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은행권의 주5일 근무 실시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에 따라 앞으로의 관심은 주5일 근무제 확산 여부와 함께 어떤 방식으로 도입할 것이냐에 쏠리고 있다.
현재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한 업체들은 은행권의 도입방식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은행권의 방식이란 법정 노동시간인 주 44시간은 그대로 놔둔 채 연차와 월차, 특별휴가 등을 사용해서 토요휴무를 실시하는 것을 뜻한다.
경총이 비공식적으로 실시한 6월 기준 조사에 따르면 LG전자, LG화학, LG석유화학, 나우콤, 동양생명, 삼천당제약, 신풍제약, 한아제약, 대우캐리어, 한국오므론 등은 모두 연월차 휴가를 활용해서 주5일 근무제를 도입했다.
이에 비해 일부 제조업체를 중심으로 기존 휴일 휴가의 축소없이 노동시간을 주 40시간으로 단축해 주5일 근무를 실시하는 곳도 있다.
천안에 있는 자동차부품업체 대한공조 안동덕 총무과장은 “최근 금속노조와 교섭을 통해 휴가일 축소없이 주 40시간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하기로 했다”며 “원청회사에 납품이 끊기면 안 되기 때문에 파업을 벌이기 전에 노조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기존 임금수준을 유지한 채 노동시간을 단축한 경우라 회사로서는 내키지 않는 선택이었다.






제2금융 도입 성공여부 최대 관심


결국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하는 데 임금보전 문제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경총은 회원사를 대상으로 법개정 없이 주5일 근무를 받아들이지 않되, 불가피한 경우에는 월차휴가를 활용해 격주토요 휴무로 하고 기준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경우에도 이에 상응하는 임금분을 감액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따라서 기존 노동조건의 저하를 반대하는 노조와 협상이 순탄할 리 없다.
한국노총 이정식 기획조정본부장은 “재계가 긴장하는 것은 은행이 주5일 근무를 실시하면서 임금보전을 상당부분 받았기 때문”이라며 “아직까지는 연월차 휴가를 활용하는 방식이 많을 텐데 비용부담을 누가 할 것인지가 최대 쟁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중에서도 은행권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제2금융권의 주5일 근무제 도입이 최대 관심이다.
증권, 생보, 손보노조 등을 포괄하고 있는 민주노총 산하 사무금융연맹은 8월부터 토요휴무를 실시하는 것을 목표로 업종별 공동교섭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상호저축은행 정도가 노사간 의견을 가장 많이 조율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연맹이 은행권과 달리 ‘기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주5일 근무’를 요구하고 있어 공동교섭은 쉽지 않은 상태다.
해당 기업들은 ‘눈치보기’에 급급한 형편이고 노조가 제기하는 교섭방식이나 요구내용 둘다 부담스워하고 있다.
특히 증권사의 경우 사용자단체인 경총에 교섭권을 위임해 증권노조와의 교섭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사무금융연맹의 한 실무자는 “공동교섭 요구만 고집할 경우 교섭이 계속 안 풀릴 수 있어 개별 노사교섭으로 전환할지 여부를 고민하게 될 것”이라며 “이미 개별기업별로는 교섭 실무자들끼리 물밑 논의가 활발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내부적으로는 개별교섭으로 전환할 경우에 대비해 주 40시간으로 단축이 어렵다면 1~2시간이라도 기준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월차휴가를 활용할 시에도 임금보전은 반드시 받는 식의 가이드라인을 검토중에 있다.


한국노총과 경총, 노동부, 노사정위 등의 최고위 관계자들의 접촉이 다시 재개됐다.
그러나 팽팽한 신경전을 벌여왔던 노사가 이른 시일 안에 법 개정에 이르는 의견 조율을 하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개별 기업별 주5일 근무제 협상은 앞으로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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