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7:03 (금)
[비즈니스] 금호그룹 “캐시카우를 찾아라”
[비즈니스] 금호그룹 “캐시카우를 찾아라”
  • 장승규 기자
  • 승인 2002.07.2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정구(65) 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에도 불구하고 호남의 대표기업인 금호그룹의 후계구도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박 회장은 생전에 “형에게서 내가 경영권을 물려받았듯이 동생에게도 경영권을 가질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차기 경영권을 동생에게 넘겨줄 생각”이라고 말해왔다.
2001년 2월 폐암 진단을 받고 치료차 미국으로 떠나면서 동생인 박삼구(57) 부회장에게 그룹 운영을 맡기는 등 ‘형제 상속’ 원칙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해놓기도 했다.
재계에서는 박삼구 부회장의 그룹 회장직 승계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금호그룹 관계자는 “빠른 시일 안에 승계 작업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지만 박 부회장이 서두르는 걸 원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반복된 위기와 구조조정


금호그룹에서는 창업주인 박인천 전 회장의 5남3녀 중 장남인 박성용(70) 명예회장과 2남인 박정구 회장, 3남인 박삼구 부회장, 4남인 박찬구(54) 금호석유화학 사장 등 4형제가 경영에 참여해왔다.
박성용 명예회장은 미국 예일대 경제학박사이며, 대통령 경제비서관과 서강대 교수를 거쳐 1984년부터 금호그룹을 이끌었다.
박 명예회장은 96년 4월 동생에게 경영권을 넘기고 지금은 교육, 문화 사업에 전념하고 있다.
박정구 회장은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곧바로 기업 경영에 뛰어들었으며 박성용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그룹을 이끌어왔다.
건강이 나빠진 이후에는 동생인 박삼구 부회장에게 그룹 경영권을 맡겼으며, 미국에서 돌아온 뒤에도 그룹 일에 크게 관여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삼구 부회장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금호석유화학의 전신인 한국합성고무 전무에서 시작해 91년부터 아시아나항공을 맡고 있다.
미 아이오와대 통계학과를 졸업한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사장은 금호그룹의 구조조정본부에 해당하는 비전경영실 사장을 겸하고 있다.
그룹의 중요한 의사결정이 이들의 ‘가족모임’에서 이루어진다.
금호그룹의 ‘형제 공동경영’은 창업주가 죽거나 은퇴한 후 자식들간에 경영권 분쟁을 겪거나 각자 자기 몫의 회사를 챙겨 나가는 다른 대기업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금호그룹의 지분 구조에도 공동경영의 정신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금호석유화학이 금호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
금호석유화학은 금호산업 지분을 45.1% 갖고 있으며, 금호산업은 아시아나항공 지분을 29.8% 갖고 있다.
다시 아시아나항공은 금호생명 지분을 31.3% 소유하고 있다.
금호석유화학을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박성용 명예회장과 박정구 회장은 금호석유화학 지분은 3.62%씩 갖고 있으며, 박삼구 부회장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사장은 3.56%씩 갖고 있다.
이들 4형제는 각각 아들을 1명씩 두고 있으며 이들도 금호석유화학의 지분을 갖고 있다.
지난 3월말 지분 조정을 통해 박성용 명예회장의 아들인 박재영씨와 박정구 회장의 아들인 박철완씨가 1.33%, 박삼구 부회장의 아들 박세창씨와 박찬구 사장의 아들 박준영씨가 1.39% 소유하고 있다.
부자간의 지분을 합하면 4형제가 4.95%씩 동일한 지분을 갖게 된다.
3세들은 대부분 학업중이며 20대로 나이가 어려 아직은 그룹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창업주의 5남인 박종구 기획예산처 공공관리단장과 장녀 박경애씨(배영환 삼화고속회장 부인), 2녀 박강자씨(금호미술관장), 3녀 박현주씨(임창욱 대상 명예회장 부인)도 그룹 경영에는 욕심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금호그룹은 4형제간의 남다른 우애와는 무관하게 외환위기 이후 만성적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박삼구 부회장이 풀어야 할 최대과제도 자산매각 등 강력한 구조조정을 통해 유동성 위기를 뛰어넘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것이다.
대규모 구조조정이 금호그룹 역사에서 처음은 아니다.


박인천 창업주는 1946년 광주에서 택시 2대로 운수 사업을 시작했다.
그후 광주고속(현 금호산업 고속사업부)은 전국 최대 버스회사로 성장했으며, 60년에는 타이어 자체 조달을 위해 삼양타이어공업(현 금호산업 타이어사업부)을 설립했다.
70년에는 타이어 제조원료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한국합성고무(현 금호석유화학)를 설립했다.
그후 금호실업, 금호전자, 금호섬유, 금호건설 등을 잇따라 설립해 계열사를 14개로 늘렸다.
그러나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 석유파동과 해외건설 부진으로 위기를 맞게 되자 계열사를 4개로 줄이는 강력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에 힘입어 금호그룹은 85~88년 대규모 흑자를 냈고, 이를 발판으로 아시아나항공을 설립할 수 있었다.
금호그룹은 일찍부터 중국으로 눈을 돌려 96년과 97년에 중국 난징과 텐진에 연산 300만톤 규모의 타이어 공장을 지었고, 96년 우한, 선친을 시작으로 중국 6개성에서 고속버스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순탄하게 진행되던 사업확장이 IMF 구제금융 사태를 맞으면서 큰 위기에 빠졌다.
덩치가 큰 아시아나항공을 운영하면서 재정난을 겪기 시작했고 턱없이 불어나는 외채부담으로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된 것이다.
금호그룹은 그룹 사옥이던 아시아나빌딩을 500억원에 싱가포르 투자청에 팔았고, 금호석유화학 사옥이던 종로의 광은빌딩도 380억원에 외국계 자본에 넘겼다.
텐진의 타이어공장은 일본 브리지스톤사에 1억4천만달러에 팔았다.
32개였던 계열사도 15개로 대폭 줄였다.
금호생명은 동아생명과, 금호종금은 금호캐피털과, 금호타이어는 금호건설과 인수·합병됐다.



타이어 사업부 매각에 큰 기대


가까스로 외환위기 충격에서 벗어나던 2001년 미국 9·11 테러사건과 경기침체로 아시아나항공이 휘청이면서 다시 위기를 맞았다.
지난해 금호그룹은 6조5700억원 매출에 11억원 적자였다.
그룹 주력사인 아시아나항공이 1180억원의 경상적자를 기록했다.
한때 유동성 위기에 따른 금호그룹의 위기설이 나돌기도 했다.
현재 진행중인 금호그룹 구조조정의 가장 큰 현안은 금호산업의 타이어 사업부 매각 문제다.
금호그룹은 지난 2월 칼라인-JP모건 컨소시엄과 매각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으며, 지분 80%를 12억~15억달러에 팔되 경영권은 그대로 유지하는 조건으로 협상을 벌이고 있다.
금호그룹은 이 협상이 타결되면 만성적 유동성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아시아나 항공 자회사인 아시아나공항서비스(AAS)의 지분 85%를 아시아지역 비상장 주식투자 전문 펀드인 러셀AIF 컨소시엄에 매각하기 위해 지난 4월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세부 실사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대규모 매각을 통해 유동성을 확보한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알짜기업인 금호산업 타이어 사업부를 팔고 난 후 현금을 창출할 수 있는 확실한 계열사가 없다는 것이다.
박삼구 부회장은 얼마 전 “금호그룹은 항공, 콘도, 렌터카 등 레저관련 부문에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사업들이 있기 때문에 종합레저그룹으로 발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금호의 미래를 종합레저그룹에서 찾고 있는지, 박 부회장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진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